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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아 Apr 22. 2022

억울하게 사라진 방게의 영혼

어제 같은 숙소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있는 사람 셋이서 해루질을 하러 바다에 나갔다. 각자 사이즈가 맞는 장화를 골라 신고, 플라스틱 양동이 하나씩 들고, 사장님이 챙겨주신 목장갑까지 끼고서, 우리는 잡힐지 안 잡힐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한번 나가보자며 호기롭게 갯벌로 나섰다. 왔다 갔다 하면서 지켜보니 요즘 바다는 오후 3시부터 물이 서서히 빠지는 듯했다. 우리가 나갔을 때는 오후 5시였다.


갯벌 체험이 처음이라 눈에 보이는 게 고동뿐이라서 고동만 집어 담았는데, 계속 보다 보니 작은 소라도 보이고 작은 게도 보였다. 움직이지 않는 애들은 그렇다고 쳐도, 돌을 뒤집었을 때 옆걸음으로 빠르게 도망치는 방게를 우악스럽게 잡아서 양동이에 넣을 때, 쾌감이라기보다는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잡고 싶은 경쟁심과 먹거리를 구하겠다는 집념 같은 마음으로 열심히도 잡아넣었다. 우리 셋은 한 시간 반 동안 뿔뿔이 흩어져 거의 대화도 나누지 않고 보물 뒤지듯 호미로 갯벌을 팠다.


허리가 아프다, 벌써 6시가 넘었다, 하면서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고, 장화와 양동이에 묻은 진흙을 씻어낸 뒤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고동과 소라는 넓은 스덴 그릇으로 옮겨 물을 붓고 소금을 타서 해감을 해두었고, 방게는 페트병으로 옮겨 여러 번 물을 갈아 씻었다. 페트병에도 물과 소금을 넣어두었다. 페트병 아래에 켜켜이 쌓인 게들이 탈출하려고 벽을 타고 올랐지만 충분히 높게 오르지는 못했다. 끝까지 올라갔다고 해도 비스듬히 닫아둔 뚜껑 때문에 밖으로 나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순간, 저들에게 이게 무슨 지옥과 같은 상황인가 싶었다. 자려고 불을 끄고 침대에 눕자 게가 움직이는 소리가 딱딱딱딱 하고 희미하게 들렸다. 불행하고 억울한 영혼들과 같은 방 안에 있다니, 오늘 밤 꿈자리는 사나울 예정이었다.


오늘 아침, 나는 울면서 일어났다. 슬픈 꿈을 꾸었다. 어느 왜소한 여자아이가 냇가의 작은 철망에 들어가서 잠을 잔다는 이야기였다. 새장처럼 작은 철망에 사람이 들어갈 수나 있나 싶었는데, 혼자서도 아니고 다른 아이도 같이 들어가서 잔다고 했다. 옆에는 그 아이들의 보호자인 할머니가 있었다. 몸이 불편하고 옷이 허름하고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다. 그녀 역시 약자였는데, 절대 약해 보이지 않으려는 독기 같은 게 몸에 배어 있었다. 나는 할머니 옆에 앉아서 술을 따라드렸다. 그때 갑자기 그녀의 외로움과 슬픔이 훅 내 안에 들어왔다. 헤엄을 치다가 마주오는 파도에 바닷물을 한입 가득 마셨을 때처럼  갑작스러웠다. 나는 울면서 잠에서 깼다. 페트병 속의 게들은 죽었는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물은 옅고 탁한 연두색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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