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침 일곱 시 전에 눈이 떠졌다. 이른 시간인데도 서울에 있을 때와 달리 뭉그적대지 않고 개운하게 일어나진다.
방문을 반쯤 열고 말굽으로 고정시킨 뒤, 창문을 열고 미니 청소기로 방을 한번 훑었다. 처음엔 머리카락이나 먼지 정도만 치우면 깨끗한 건 줄 알았는데 여기 편백나무가 많아서 아주 작은 연두색 나무 가루가 보이지 않게 사방에 많다. 열어둔 창문 옆에 핸드폰을 놔두면 금세 액정 위로 초록 가루가 촘촘히 올라와 있을 정도다. 지금 남색 배낭도 면 사이사이로 초록 가루가 침투해 묘한 초록색을 띠고 있다. 옆방 언니는 매일 이불도 털고 방도 닦던데, 나는 그저 하루 한 번 열심히 청소기를 돌릴 뿐이다.
환기하고, 청소도 하고, 한결 더 개운해진 상태로 재즈 음악을 틀고 팬케이크를 구우니, 요즘 말로 극락이었다. 작은 방이 팬케이크의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로 채워졌다. 요리를 못 하지만 요리라는 행위 자체는 좋아하는 나는 팬케이크를 자주 굽는다. 요리라기보다 섞고 굽는 게 전부인데 웬만해서는 실패하지 않으니 기분 내기 좋다. 팬케이크를 빵처럼 완성품으로 팔았을 때는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섞고 굽는 과정을 직접 하게 하니 인기가 폭발했다는데, 설명을 듣지 않아도 이유를 알 것 같다.
팬케이크를 들고 테라스에 나가자 새로 온 투숙객분이 지난번에 우리가 갯벌에서 캔 바지락으로 바지락 국을 끓었다며 한 그릇 주었다. 감자에 수제비까지 들어간, 제대로 된 한 그릇이었다.
여기 오고 많이도 얻어먹고 있다. 온 지 며칠 안 되었을 때 숙소 사장님이 파김치를 주셨고, 그 며칠 뒤에는 수산시장에서 전복을 싸게 샀다며 전복죽을 쑤어 나눠주셨다. 그리고 오늘 바지락 국을 주신 분은, 여기 오고 다음 날인가, 고기를 넣은 바삭한 김치전을 방마다 돌렸다. 옆방 언니는 밭일을 도와주고 받은 마늘종을 숙소 사장님께 드렸고, 사장님은 그걸로 마늘종 어묵볶음을 해서 우리한테 다시 나눠주셨다. 그때마다 요리 솜씨가 없는 나는 초콜릿이나 과자로 답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