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 손등이 눈에 잡힐 때마다 흠칫 놀란다. 이게 내 손인가? 싶다. 남해에 오고 노릇노릇 잘 타서 피부 톤이 어두워진 것이다. 이렇게 태양이 강할 줄 알았으면 오히려 얇은 긴팔 위주로 옷을 챙겨오는 건데, 발리라도 가는 양 마음이 설레서 반팔을 많이 챙겨왔다. 그 바람에 팔이 햇볕에 꽤 탔고, 특히 오른팔은 피부가 살짝 벗겨지기까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날마다 햇살 온천 즐긴다고 카페나 식당 가면 늘 테라스 자리에 앉고, 걷기도 많이 걸었다.
어제 이미 21,216보를 걸었는데도 오늘 또 이른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섰다. 오늘은 창선면소재지에서 추도까지 가보기로 했다. 추도는 여기 창선도 오른쪽 아래에 붙은 아주 아주 작은 섬인데, 걸어서 들어갈 수 있게 길이 나 있다. 가는 길에 일부러 어제 본 노란 장미꽃이 있는 곳에 들렀다. 사진 한 장 안 남기면 아쉬울 장관이라 친구한테 빌려온 삼각대를 주섬주섬 꺼내 셀카를 찍었다. 맞은편 짜장면집에서는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지만, 얼굴에 꽃받침을 하고 환히 웃어보았다.
창선면소재지는 어제도 왔던 곳인데, 여긴 참 주말이나 평일이나 쥐 죽은 듯 조용한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월요일이라 학교에 학생들이 있었다. 학생들이 남색 체육복을 입고 삼삼오오 운동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창선고등학교와 창선중학교는 서로 마주 보고 같은 운동장을 공유하고 있었다. 운동장에도 푸른 잔디가 쫙 깔려 있는데 그 뒤로 가까이 산이 있어서, 교정이 무척 아름다웠다. 이런 곳에서 6년 동안 학창 시절을 보내면, 나중에 도시에서 괜찮을까? 하는 괜한 염려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 운동장을 걷는 학생 중 몇몇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긋지긋한 촌구석, 공부 열심히 해서 벗어나야지.’ 나도 고등학생 때 어찌나 서울에 가고 싶었던지.
추도는 생각보다 더 작았다. 섬이라기보다는 바다가 감싸고 있는 작은 공원 같았다. 남해에는 ‘남파랑길’ 또는 ‘바래길’이라고 부르는 길들이 많은데, 추도의 한 표지판에서 바래길의 의미를 알려주고 있었다. “‘바래’는 옛날 남해 어머니들이 바다를 생명으로 여기고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바다가 열리는 물때에 맞추어 갯벌에 나가 파래나 미역, 고동 등 해산물을 손수 채취하는 작업을 말하며, 그때 다니던 길을 ‘바래길’이라고 합니다.” 의미를 알고 나니, 더 정감이 갔다. 지금 걷고 있는 추도도 남해바래길 5코스인 말발굽길의 일부였다.
생각보다 빠르게 추도를 둘러보고, 근처 식당 ‘배말칼국수김밥’에서 톳김밥을 먹고 돌아왔다. 오늘은 18,600보를 걸었다. 샤워하면서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톡톡 눌러보니 남해 오기 전보다 확실히 단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