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글에서도 말한 적이 있지만, 나는 디지털 노마드가 꿈이었다. 내 기술을 가지고 프리랜서 형식으로 일하면서 공간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이동하며 사는 게 꿈이었다. 그리고 그 꿈은 삼 년 전, 대만 워킹홀리데이 중에 예전 회사 선배가 교정교열 일감을 주면서 얼렁뚱땅 실현되어버렸다. 나는 번역을 해야 하나, 출판 기획 외주를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우연히 잡아당긴 실 하나로 엉킨 실 뭉치가 후루룩 풀리듯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교정교열 일로 프리랜서 데뷔를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여행하며 일하기’라는 오랜 꿈을 처음으로 실현하고 있는 곳이 바로 지금 남해이다.
같은 펜션에 묵고 있는 옆방 언니는 내가 프리랜서라는 것을 굉장히 부러워한다. 본인은 시골에 내려와 사는 게 꿈인데, 집은 어찌어찌 구한다고 해도 밥벌이 문제에서 머리가 콱 막힌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농사일을 할 자신은 없고, 베이커리 자격증이 있어서 작은 빵집 겸 카페를 열어야 하나 고민이라고 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많은 일을 해봤지만, 나처럼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지는 못한 탓에 모든 기술이 다 어정쩡한 수준이라고, 진심으로 나를 부러워했다. 나는 그런 언니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네, 정말 좋아요. 이렇게 여행도 다닐 수 있고요”라고 자랑하는 것도 실례 같고, “아니에요, 알고 보면 벌이가 시원치 않아요”라며 나를 깎아내리고 싶지도 않았다.
나중에 옆방 언니와 나 그리고 다른 장기 투숙객분 셋이서 우리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알고 보니 옆방 언니는 월세를 받는 집주인이었는데 우리가 “와!” 하고 부러워하자 언니는 서둘러 그것만으로 생활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나마도 도배장판 갈아주고 세금 내고 부동산에 돈 주고 하면 별로 남는 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자기 집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안정감인지, 나는 진심으로 부러웠다. 다른 투숙객은 재택근무자였다. 평일 9시부터 6시까지는 회사 메신저에 접속해 있어야 해서 주말에만 여행을 다닐 수 있었지만, 그래도 안정적인 수입이 매달 들어온다는 게 부러웠다. 결국 우리는 서로를 부러워하는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부러움과 내 삶에 대한 만족도를 저울질해보면 만족도 쪽이 훨씬 무겁다. 교정교열 일은 점점 익숙해지고 있고, 일이 없는 시간엔 자기계발을 할 수 있어서 좋다. 물론 프리랜서 생활엔 늘 불안감은 따라오지만, 그럴 때면, 남들보다 일찍 정년퇴직했다 치기로 한다. 누구든 평생 회사를 다닐 순 없고, 언젠간 지금의 내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될 테니까. 그리고 이런 유별난 나를 세상이 품어줄 수 있을 정도로 다양화되고 있다는 데에 고마워한다.
이날 낮에 옆방 언니가 두릅, 오이무침과 김치찌개를 해서 줬다.
나는 냉동실에서 얼려둔 팥 파이를 두 조각 꺼내서 드렸다. (남해 팥파이스 팥 파이 진짜 맛있다! 한 판 사서 야금야금 먹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