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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아 May 18. 2022

우울할 땐 밖으로 나가자

어제의 여파인지 우울해하며 잠에서 깼다. 잠결에 습관적으로 핸드폰 화면을 톡톡 쳐서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한 친구가 아이스라떼 사진과 함께 “모든 것이 헛되다는 이 기분이랑 평생 싸워서 이겨야 해!”라고 적어 올렸다. 그렇지, 나도 오늘을 잘 살아내야지. 아무거나 나오는 페이지에서 웃긴 게시물을 하나 보고 피식 웃자 몸에 힘이 돌았다. 일어나서 이불을 한쪽으로 치워놓고 여느 날처럼 뜨거운 물과 상온 물을 섞어 한 컵 크게 마신 뒤 방문을 열어 환기를 했다. 그리고 국민체조를 했다. 오늘은 나가야지. 어제 일한다고 하루 종일 방에만 있었던 게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어제 저녁을 일찍 먹었더니 일어나자마자 배가 고팠다. 어젯밤 옆방 언니가 준 오돌뼈제육볶음과 밥솥에서 펀 뜨끈한 밥에 계란 프라이를 반숙으로 구어서 비벼 먹었다. 침대 프레임에 등을 지대고 바닥에 앉아서 와구와구 먹었다. 옆방 언니는 여기 할머니들 밭일 도와주는 것도 그렇고, 나한테 음식을 해주는 것도 그렇고, 남한테 잘 베푸는 스타일인 것 같다. 할머니들이 일봉은커녕 고사리 한 줌도 안 주는데 본인은 덕 쌓는 거라 생각해서 괜찮단다. 보는 우리만 속이 터진다. 보리암 같은 사찰에서나, 추석날 보름달 아래서나, 소원 빌 일이 생기면 그녀는 웰다잉을 빈다고 한다. 그녀가 덕을 쌓아 웰다잉을 한다고 치면, 그녀를 등 처먹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려나. 언제부턴가 옆방 언니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일을 시키는 동네 할머니들이 얄밉다.


어제 업무 진도를 많이 빼지 못해서 오늘은 삼천포 스타벅스에서 일하기로 했다. 스타벅스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넘어선 자기만의 독특한 영역을 구축한 듯하다. 그래서 삼천포에서든 프라하에서든 타이베이에서든, 스타벅스에 가면 그냥 스타벅스에 있다는 느낌만 든다. 스타벅스로 들어가는 순간 내가 예전에 왔던 어느 스타벅스로 연결되고, 그 덕분에 처음 와본 낯선 도시에서도 익숙하다, 자연스럽다, 편안하다, 반갑다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호주에서 지내는 한 친구가 스타벅스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고 했는데, 그게 뭔지 나도 안다. 요즘 카페인 덜 마시기 운동 중인 나는 디카페인 아이스라떼를 시키고 창가 바 자리에 앉았다.


눈앞의 창밖으로 중고등학생들이 계속해서 지나갔다. 오늘은 주말이기 때문에 멋을 부린 사복 차림이었다. 그들의 체형은 어중간했다. 아이라기에는 크고, 성인이라기엔 작다. 키도, 어깨너비도, 얼굴 윤곽도 다 그러하다. 나는 그들의 머릿속을 열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어서 그때의 나를 생각했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지. 다시 저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고 싶은 게 있는가? 하나도 없었다. 나는 학창 시절의 추억담이나 <응답하라 1988> 같은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공부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던, 얇고 날카로운 영혼에게 추억은 없다. 다시 돌아간다면 그때만큼 치열하게 살 자신도 없고, 그렇다고 영혼을 살찌우겠다고 에헤라디야 할 자신은 더더욱 없다. 그때 모습 그대로가 최선이다. 아무것도 바꾸고 싶지 않다.


스타벅스 치트키 효과로 일을 많이 했다. 삼천포에서 숙소로 들어가는 버스는 한 시간이나 두 시간에 한 대씩 있다. 버스 시간을 역으로 계산해서 늦지 않게 스타벅스에서 나와 근처 타코야키집에서 타코야키를 12알을 포장해 숙소로 돌아왔다. ‘후후타코’라는 집이었는데, 타코야키 12알이 단돈 4천 원, 아이스크림이 올라가는 크림소다가 겨우 2,500원이었다! 시간상 아쉽게도 음료는 못 마셨지만, 방에 와서 후후 불어먹는 타코는 맛있었다. 오늘 나가서 돈도 쓰고 일도 열심히 해서인지 아침과 비교하면 기분이 훨씬 나았다.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사는 게 뭐 있나. 매일 즐거움을 찾으면 되지. 하루키 에세이 제목처럼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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