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아 Apr 19. 2022

편백나무 아래서 책 읽는 즐거움

아침, 유난히 햇빛이 강했다. 더우려나, 하고 일기예보를 보니 최고기온 21도로 그리 더운 날씨는 아니었다. 아침 일찍 세탁기를 돌리고 사과, 커피, 토스트로 가볍게 아침을 먹은 뒤, 노트북 앞에 앉아 힘차게 리포트를 적어 내려갔다. 작년 3월에 시작한 한국어교원 2급 자격증 과정이 드디어 끝이 보이고 있다. 이번 학기가 마지막으로 4과목을 듣고 있다. 중간, 기말고사나 쪽지시험은 할 만한데, 3장 이상 분량을 채워야 하는 리포트가 늘 어렵다. 빨리 털어버리자는 마음으로 요 며칠 집중해서 쓰고 있다.


마지막 과목 리포트의 분량이 반 정도 채워질 즘 배가 고파왔다. 점심시간이었다. 수고한 데에 대한 보상으로, 마침 어제 외주 비용이 한 건 들어온 기쁨으로 서울해물찜에서 해물짬뽕라면을 먹기로 했다. 나가는 길에 건조대에 널어둔 빨래를 살짝 만져보니, 벌써 거의 다 말라 바삭했다. 밥 먹고 돌아올 즈음에는 살균까지 되어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맑고 깨끗한 햇빛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해물짬뽕라면 대신 해산물파스타를 먹고 돌아왔다. 서울해물찜이 휴무였던 것. 그래서 근처 마샹스로 갔다. 어쩌면 내가 지내고 있는 창선면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천연기념물 299호 왕후박나무를 누르고 마샹스인 것 같다. 사천에 분점도 냈다던데, 역시 너무 맛있었다. 추천!


남은 절반의 리포트는 저녁에 쓰기로 하고, 숙소 뒤 편백나무숲으로 들어갔다. 어제 숲 안에 평상 하나가 놓여 있는 걸 발견하고 사장님께 저긴 어떻게 들어가냐고 여쭤봤더니, 길을 알려주셨다. 문 열고 걸으면 3분이나 걸리려나. 무척 가까운 거리인데도 소풍 가는 사람처럼 배낭에 물, 모자, 책, 간식까지 챙겨서 올라갔다. 사람 다니는 길이 나 있지 않은 산속에 들어온 건 태어나 처음이지 싶었다. 편백나무 기둥에 등을 지대고 평상에 앉았다. 사방은 편백나무뿐이었다. 가끔 새가 날아다닐 뿐, 인간의 흔적이 이 정도로 없는 공간은 처음이라 그저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생경했다. 나무가 주인인 집에 초대도 받지 않고 들어온 손님처럼 조심스러운 기분마저 들었다.


읽고 읽는 책 위로 힘이 다한 나뭇잎 끝이 타닥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바람이 세게 불 때는 장대비가 내리듯 후드득 소리를 내며 떨어져다. 옷, 모자, 가방, 책장 위로 길고 짧은 나뭇잎이 떨어졌다. 책장을 넘기기 전 한 번씩 책을 뒤집어 털어냈다. 혹은 입으로 후우 바람을 불어 날렸다. 그러다가 주섬주섬 배낭을 열어 녹차 브라우니를 꺼냈다. 지난번 지족리에 나갔을 때 홀리데이 카페에서 사 온 것이다. 사서 바로 냉동실에 넣어뒀는데, 지금쯤 녹지 않았을까 싶었다. 한 입 베어 무니 약간 시원할 정도로 알맞게 녹았다. 냠냠 맛있게 먹으면서 해의 이동을 가늠했다. 아까는 내 오른쪽에 있었는데 지금은 왼쪽에 있다. 드르르. 문자가 왔다. 옆방 언니가 이따가 바닷가 쪽으로 산책을 나가자고 한다. “좋아요”라고 답장을 보냈다. 



이전 14화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