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어'만 있고 로직이 없는, '망한 기획' 사례
전시기획 사례이다.
‘근대사 박물관’의 전시기본방향을 ‘대한민국 국민자서전’이라고 정했다.
그리고 개개인의 인간사를 감동적인 스토리로 나누는 <구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전략을 제시한다.
다양한 국민 참여 방식을 동원해서 국민이 '열어온 역사'와 '열어갈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
전시 콘텐츠의 구성 방향이다.
<일상 콘텐츠로 대한민국의 근대를 조명하는 '국민자서전'을 만드는 이번 전시는,
대중 참여가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차별화될 것이다>라고 기획의도를 쓴다.
대중의 참여방식인 SNS를 활용하는 운영안을 고안하고,
‘Korea Social Museum’을 슬로건으로 <국민자서전, 근대사 박물관>이라고 포지셔닝한다.
기획이 꽤 잘 진행되는 듯하다.
그러나 전시 주제를 정하려는 순간 문제가 드러난다.
“잠깐, 전시 주제가 <국민자서전> 아닌가?
<국민자서전>을 또 써? 이상한데? “
결국 고민 끝에, 전시주제를
<감동의 인간사, 의지의 긍정사, 희망의 미래사 :근대를 비추는 우리 자서전>이라고 쓴다.
설명을 덧붙여서 주제로 구분하려고 한다.
'좀 지겹게 반복되는데?' 기획자는 석연치 않다.
자서전이 계속 반복되는데, 뭔가 정리가 안 되는 느낌이다.
<국민자서전>은 잘 한 듯한데 뭔가 깔끔하지 않다. 왜일까?
개념어를 층위 구분 없이 흩뿌렸기 때문이다.
‘국민자서전’이 전시기본방향, 기획의도, 포지셔닝, 심지어 주제 자리까지 중복 사용됐다.
결국 평가자와 기획자 모두에게 “도대체 주제가 뭐고, 전략은 뭐며, 포지셔닝은 뭐냐?”라는 혼란을 안긴다. 이 사례는 개념어를 사고의 층위 구분 없이 여기저기 중복해 사용했을 때 생기는 문제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 기획을 수정한다면 핵심은 위계 정립이다.
개념어를 각 층위의 제자리에 박아두는 작업이 필요하다.
1. 먼저, 주제(Theme)는 「국민자서전」이다.
이 단어는 흔들림 없이 전시 전체를 대표하는 최상위 개념어로 자리해야 한다.
2. 그 아래 기획의도(Intent)에서는 “일상의 이야기를 모아 대한민국 근대를 조명하고,
국민이 열어온 역사와 열어갈 역사를 대중 참여로 드러낸다”라는 방향성을 풀어낸다.
3. 핵심가치(Core Value)는 ‘참여 - 공감 - 기록’으로, 전시가 구현하고자 하는 기본 정신을 요약한다.
4. 전략(Strategy)은 구술 프로젝트와 SNS 참여, 현장 참여 프로그램 등으로, 주제를 어떻게 실현할지, 어떻게 참여를 이끌지 구체화한다.
5. 이렇게 설계된 상설전시를 통해, 「근대사 박물관 = 국민자서전의 무대」라는 새로운 포지셔닝(Positioning)을 명확히 한다.
6. 마지막으로 메시지(Slogan)는 「Korea Social Museum」이라는 응축된 카피로 대외에 전달된다.
이렇게 개념을 담은 단어들의 층위를 정리하면
‘국민자서전’은 주제 자리에 단단히 고정되고, 개념어들이 서로 다른 위계로 그 주제를 뒷받침한다.
주제→의도→가치→전략→포지셔닝→메시지라는 일관된 흐름 속에서 문서 전체의 로직이 선명해진다.
기획자는 여러 가지 생각이 종합된 각각의 개념어를 배치하고 엮어가며 기획을 촘촘히 완성하기에 그렇다.
그래서 개념어는 제자리에 놓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층위에 놓이면 서로 뒤엉켜 기획의 줄기가 흐려지기 때문에, 체계적인 정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정리·분류하는 것이 개념어를 ‘옳은 자리’에 놓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다.
같은 ‘전략’이라도 방향 언어로 쓰일 때와 실행 언어로 쓰일 때는 다르다.
만약 내가 지금 쓰는 단어가 어느 갈래에 속하는지 점검하면,
기획의 로직이 훨씬 명확해진다.
기획자는 이 다섯 갈래를 마치 지도처럼 사용해, 언어의 숲에서 길을 잃지 않고 프로젝트의 논리를 한 줄기로 엮어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수많은 개념어를 쓰임을 기준으로 정리한다.
개념어를 정리하는 다섯 갈래 -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