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 규범, 규율, 지침... 지키라는 [제한] 루틴, 정기적, 일정, 계속... 끝이 없는 [반복] 가만히 서 있기, 일단 기다리라는 [대기] 두 번 손 가는 일, 번거로움, 굼뜬 [지체] 영역, 벽, 좁은 공간... 여기 까지라는 [경계]
읽으신 분들,
느낌 오신다는 거 안다.
그렇다. 난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렇다고 이것들을 아예 못 하는 건 아니니
그렇게까지 망나니는 아니다.
그렇지만, 단 한 가지 고쳐지지 않는 게 있는데
그것에 대해 요즘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여기저기 치여서 손해 보고 혼나고 욕먹으면서
다른 것들은 대충 잘 참으며 적응하고 살지만,
한 가지, 경계, 바운더리는
감춘다 쳐도 도저히 참아지지는 않는다.
쉽게 말해, 엘리베이터에서 숨 막히고, 사람이 많은 강의실에서는 맨 앞자리가 아니면 못 앉아 있는다. 빽빽한 사람들의 뒤통수와 2면 이상의 벽이 한눈에 보이면 피가 멈추는 거 같다. 카페나 식당에서는 출구가 보이는 방향으로 구석을 피해 복판에 자리 잡는다.
폐소공포증이라고 말하기엔 좀 다른 양상도 있다.
일시와 장소를 처음부터 정해진 약속은 듣는 순간부터 딱 가기 싫은 거? 조선시대 12간지의 시간개념을 버리지 못하는 나다. 일단 오전쯤으로 잡고 그때 서로의 상황에 맞춰 만나는 게 좋다. 장소도 대충 정해놓고 서로 이동 중에 크로스하며 만나는 게 재미있고 반갑다.
또 관계에서도 그렇다. 여중여고시절 7 공주같이 무리가 지어지는 거 같으면 모든 사회적 지능을 동원해 티 안 나게 발 하나는 뺀다. 그리고 뺀 발은 다른 무리에 슬쩍 걸쳐둔다. 내 일과에 대해 매번 묻는친구, 연인과는 꼭 싸우게 된다.
업무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과하게 융통성(?)이 있다. 일과 역량은 고무줄이라 생각한다.
제한된 행동의 바운더리
정해진 시간의 바운더리
구속된 관계의 바운더리
가두는 공간의 바운더리
이런 게 미치게 싫다는 거다.
바운더리 회피증?
둘 중 어느 곳에서 당신은 행복한가요?
저는요, 무조건 1번이요. 진창에서 구르더라도 2번은 절대 싫어요.
자라면서 나는 가족들에게 망아지로 불렸다.
왜 나만 사람이 아니고 망아지냐고?
왠지 모를 답답함을 가슴 한 구석에 품고 사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세상에 여럿 있다는 사실은 꽤 자라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살면서 만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경계를 지켰기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을 지키고 모임에 참여하며 계획된 곳에 속하는 것이 당연한 사람들. 그들 사이에서 나는 나를 최대한 숨겨야 했다. 물론 호주머니 속에 송곳이 삐죽삐죽 드러나듯 경계를 넘나드는 나의 행태는 '부적응'이라는 행적을 남겼다. 잦은 이직, 잦은 이사같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