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도는 하니?” 엄마의 질문에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음, 기도는 매일 하는데, 집 정리하면서 엄마랑 통화하는 것처럼 그렇게 해”
라고 말하며 아차 했다.
역시나 그 뒤로 이어지는 당부, 훈계, 야단은 청소가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무사히 전화를 끊고 깨끗해진 집을 둘러봤다.
‘그래, 기도를 다시 해보자.’
거실 중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눈을 감고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끝내지 않은 집안일이 하나씩 떠오른다.
‘아! 거실은 기도하기에 산만한 곳이지’
내 방으로 들어와 다시 기도를 시작했다.
감사로 시작한 기도가 어느 순간, ‘이번 주까지 끝내야 하는데 잘 되게 해주세요. 저 일은 어떻게 할까요? 애들 학원을 정리해야 할까요?’ 등등 오늘의 업무보고가 되고 있었다. 컴퓨터가 있는 작업 공간에 있으니, 뇌가 자동으로 to do list를 정리하는 거 같았다.
내가 무릎 꿇고 온전히 기도를 드린 게 언제였던가? 성경을 읽고 기도를 드리며 QT를 했던 때가 생각났다. 그땐 오로지 집중하는 기도를 드렸는데, ‘그래, 내일부터 묵상기도 시간을 갖자.’ 컴퓨터를 켜고 내일 스케줄러에 ‘묵상기도’를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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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에 잠자리에서 무릎 꿇고 기도드리는 건 부모님께서 만들어 주신 습관이었다. 짧게 끝낼 때도 있고 물론 빼먹을 때도 있었지만, 그 시간만큼은 마음을 열고 기도를 하기로 정해진 시간이었다. 틀이 깨진 건 모유 수유를 하면서 무릎을 꿇지 못해 속으로 기도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아이는 자랐지만, 무릎을 꿇지 않는 기도는 고쳐지지 않았고, 이젠 자연스럽게 바로 누우면서 마음속 기도를 드린다. 피곤한 날은 ‘하나님’하고 부르자마자 나도 모르게 잠든다. 그렇게 10여 년이 지나니 이제는 ‘하나님, 오늘 하루 잘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굿나잇’이 되어 버렸다.
첫째가 태어나고 돌도 안 된 아기를 카시트에 묶어서 운전을 시작했다. 손도 몸도 덜덜 떨리는 정말 간절한 기도였다. 시동을 걸 때 시작한 기도는 시동을 끌 때까지 계속됐고, 무사고를 빌던 초보운전자의 기도는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다. 지금도 운전대를 잡으면 가족이 떠오르고 마음속으로 자녀, 배우자, 부모님, 형제에 대해 기도한다. 장거리 운전에서는 친구들까지 생각하며 하나님께 그들을 보살펴달라고 기도한다.
나는 설거지를 무척 싫어한다. 그래서 최대한 저녁까지 미뤄두고 한 번에 처리하는 나쁜 습관이 있는데, 그 저녁 시간이 아이들의 숙제를 챙기는 육아와 겹쳐 하루 중 가장 성격이 나빠질 때다. 콸콸 물소리를 들으며 말을 안 듣는 아들들을 탓하다가 ‘하나님, 제발 저 아이들을 키워주세요.’로 시작해서, ‘나는 못 해요.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시련을 주신다면서요, 힘들어요. 살려주세요.’ 불평불만과 매달림으로 중얼거리다가 고무장갑을 빼면서 ‘아멘’ 하면 왠지 모르게 개운하다. 지겨운 설거지가 끝난 거처럼 화도 식는 거 같아서 이 또한 일상이 됐다.
이런 신실하지도 성실하지도 못한 조각난 기도를 하나님께서 받으실까?
10여 년을 이렇게 살았는데 주님은 나를 지켜보고 계실까, 벼르고 계실까. 지금껏 정성 들여 계획했던 일은 다 무너졌어도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삶을 이끄시는 주님을 보면 아직 나를 봐주고 계심은 확실하다.
어느 주일, “우리가 드리는 만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은 우리에게 처음 계획하신 대로 주님의 일을 하신다.”라는 설교 말씀이 가슴을 울렸다. ‘그래, 더 이상 반항하지 말고 주의 계획안에 있을 때, 나도 주님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부터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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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온전한 기도이다. 딱 5분이라도 딴생각이 전혀 없는 기도를 드려보자.’
타이머를 키고 기도를 시작한다.
‘……’
너무 고민이 많다.
생각이 너무나 많다. 할 일과 고민으로 가득 찬 중년의 머릿속은 1분도 쉬지 않는다.
딴생각이 안 나게 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플랭크를 하면서 기도한다.
집중은 되지만 결정적으로 1분 이상 하는 게 불가능하다.
머리에서 잡념을 비우는 거만큼 몸에서 지방을 빼내는 행위도 힘들다는 걸 간과했다.
내가 왜 이러지?
아. 일단 인풋이 있어야겠다. 성경책부터 읽자.
며칠간 시간을 내어 말씀을 읽다가 또 딴생각에 고개를 드는 순간,
책상 위 거울에 비친 내가 보였다.
‘너 힘들지?’
‘어,’
속 깊은 문제를 고백하기 시작했다.
기도였다.
마음이 만져지는 걸 느꼈다. 당분간 눈을 뜬 채 거울을 쥐고 기도를 드려야 할 거 같다.
물론 입밖으로 소리를 내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