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을 부른 자들

철부지들이 부른 재앙

by 방덕붕

1

새벽 서리가 내린 궁궐 뜰을 거닐며, 왕 아르테온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즉위한 지 불과 석 달. 전임 왕 발드윈이 남긴 빈 국고, 무너진 관료 체계, 그리고 백성들의 불신을 메우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전하, 또 밤을 새우셨습니까?"

측근 신하 세바스찬 경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자리에 누우면 더 잠이 오지 않소. 해야 할 일들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아르테온은 쓴웃음을 지었다. 발드윈 왕은 스스로의 향락과 측근들의 탐욕을 채우느라 엘도리아 왕국의 근간을 좀먹었다. 백성들이 들고일어나 궁궐을 에워쌌을 때, 발드윈은 도망치려다 붙잡혀 지금은 서쪽 끝 검은탑 감옥에 갇혀 있었다.

아르테온은 원하지 않았던 왕위였다. 하지만 민심이 그를 지목했고, 왕국이 무너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다.


2

같은 시각, 수도 루미나스의 뒷골목에 있는 허름한 주막에서는 수상한 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이대로 둘 수는 없소. 새 왕 놈이 개혁이니 뭐니 하면서 우리를 죄다 몰아내려 하지 않소?"

전 재무장관 가렌 경이 술잔을 내려치며 말했다. 발드윈 왕 시절, 그는 국고의 절반을 사복을 채우는 데 썼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나저나 검은탑에 계신 전하를 어찌 구해낼 것이오?"

"그게 문제지. 궁궐 경비가 삼엄하고, 민심도 아직은 새 왕 편이니..."

침묵이 흘렀다. 그때 구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북쪽의 드라켄 제국에 사신을 보내면 어떻겠소?"

전 군사령관 마르쿠스 경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드라켄 제국은 우리보다 열 배는 큰 나라요. 그들의 군사력을 빌린다면..."

"하지만 제국이 왜 우리를 도와주겠소?"

"아르테온 놈이 왕위에 오른 것이 불법이라 하면 되지 않소? 정통성 있는 발드윈 전하를 복위시켜야 한다고. 그리고..."

마르쿠스가 목소리를 낮췄다.

"그 대가로 북쪽 은빛산맥 지역의 영지 몇 개를 내주겠다고 약속하는 거요."

"영지를 내준다고?"

"어차피 아르테온 놈 손에 들어갈 바엔, 우리가 다시 권력을 잡는 게 낫지 않소? 땅이야 나중에 다시 찾으면 되지."

탐욕에 눈이 먼 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3

한 달 후, 드라켄 제국의 황제 발레리우스의 서재에 은밀한 보고가 올라왔다.

"폐하, 남쪽 소국 엘도리아에서 흥미로운 제안이 왔습니다."

"음? 그 작은 왕국이?"

황제는 비웃음을 머금었다. 드라켄 제국은 오래전부터 남쪽의 비옥한 땅을 노려왔다. 하지만 함부로 침략하면 주변국들의 반발이 두려웠다.

"그들 중 일부가 우리에게 군사 지원을 요청하며, 은빛산맥 영지를 바치겠다 합니다."

"재미있군. 스스로 용의 아가리로 걸어 들어오다니."

황제의 눈이 빛났다.

"군대를 보내라. 하지만 발드윈이라는 전 왕을 복위시키겠다는 명분을 내세워라. 우리는 정의를 위해 움직이는 것이니까."

"폐하, 그 후에는?"

"그 후?" 황제가 차갑게 웃었다. "일단 들어가면, 나올 이유가 없지 않겠나?"


4

석 달 후, 드라켄 제국의 대군이 국경을 넘었다.

아르테온은 급히 군사를 모았지만, 오랜 부패로 약해진 군대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무너졌다. 그는 최후까지 저항했지만, 결국 루미나스 궁궐이 포위되었다.

가렌과 마르쿠스는 의기양양하게 드라켄 제국의 장군 카시우스를 맞이했다.

"우리의 약속대로, 발드윈 전하를 복위시켜주시오. 그러면 우리가 약속한 은빛산맥 영지를..."

카시우스 장군이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약속? 무슨 약속 말이오?"

"아니, 우리가 분명히..."

"발레리우스 황제폐하께서는 엘도리아의 혼란을 보시고 직접 다스리기로 하셨소. 검은탑에 있는 전 왕이고, 새 왕이고 모두 역적이니 처형하라 하셨소."

"뭐, 뭐라고?"

가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리고 당신들도 마찬가지요. 왕국을 팔아먹으려 한 역적들."

제국 병사들이 그들을 둘러쌌다.


5

일 년 후, 엘도리아 왕국은 드라켄 제국의 한 개 속주가 되어 있었다.

아르테온은 비밀리에 탈출하여 남쪽 깊은 숲속에 숨어 지냈고, 발드윈은 검은탑에서 끝내 죽었다. 가렌과 마르쿠스를 비롯한 옛 권력자들은 모두 반역죄로 처형당했다.

백성들은 한탄했다.

"탐욕에 눈먼 자들이 용을 불러들였구나."

"왕국을 되찾으려던 왕은 쫓겨나고, 왕국을 팔아먹으려던 자들도 죽고, 결국 우리만 제국의 백성이 되었구나."

깊은 숲속 움막에서 이 소식을 들은 아르테온은 무너진 왕국의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는 권력을 지키려 애쓴 것이 아니었다. 왕국을 바로 세우려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았고, 탐욕에 눈먼 자들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들은 권력을 되찾으려 용을 불러들였다. 하지만 용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았다. 용은 그저 모든 것을 삼켰을 뿐이다.

엘도리아는 사라졌다. 왕도, 역적도, 백성도 모두 제국의 것이 되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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