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랑스런 후후작가 Oct 05. 2024

실업자의 하루하루

바닥권리금이 뭐예요? 바닥 더럽잖아요.

8월 말 퇴직이 확정된 후 하루하루 퇴직 준비를 하며 8월을 채웠다. 이른 나이에 명예퇴직을 선택해서 같이 퇴직하는 동료도 없고 모든 절차를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그중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연금! 노후의 삶의 큰 힘이 될 예정인 내 사랑 연금을 어떻게 수령할지 몇 날 며칠 고민했다. 큰 수술을 여러 차례 받아 건강에 자신이 없어서 처음에는 연금을 일시금으로 당겨서 받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주위의 99%가 그 결정을 말렸다. 1%는 동의해 줬지만 그마저 내가 강경하게 일시금을 주장하니 정 그러면 네 마음대로 해라라는 식으로 맞장구 처준느낌이다. 눈부신 발전으로 죽어가는 사람도 계속해서 살리는 현대의학을 믿고 결국 62세 연금수령과 일시금 수령 사이의 절충안을 선택했다. 5년 조기연금수령! 이건 뭐 나를 위한 제도인가 싶다. 80세 이상 오래 살 자신은 없고 그렇다고 일시금으로 받자니 불안하니까 딱 5년 미리 연금개시가 가능하다. 물론! 1년 미리 당길 때마다 5%씩 삭감된다. 그리하여 자그마치 25%나 삭감된 나의 작고 소중한 연금이 57세부터 나온다.


룰루랄라 내가 친구들 중에 연금 제일 빨리 나오니 연금 나오면 친구들한테 한턱 쏴야겠다. 벌써 신난다. 그 외 퇴직금 조금과 명예롭게 퇴직해서 명예퇴직금이 나온다. 그동안 노머니 빈털터리로 살아가다 갑작스레 목돈이 생기니 계속 계속 계속 쓰고 싶어서 상가도 보러 다니고 학원 차리려고 설명회도 듣고 차도 구경 다니고 아주 난리 부르스를 췄다.


대체.



가만히

못살까.


아..... 정말 힘들다. 일 벌이고 싶어서 근질근질하다. 어디 가까운데 사주팔자 풀이해 주는데 가서 물어보고 싶다. 전 대체 왜 이렇게 가만히 살지 못할까요? 성인 ADHD라고 할까 봐 못 가겠다. 사람인, 잡코리아, 훈장마을, 당근알바 다 검색하며 알바자리 알아보고 난생처음 이력서도 써보고 원장님들과 통화도 해봤다. 그 과정 자체가 너무 신나고 재미난다. 초등 정교사로 재직한 경험이 메리트가 있는지 이력서 보내는 족족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는 것도 너무 신난다. 사교육 시장 경험을 쌓고 여력이 되면 나중에 사업을 해보면 좋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지만 자꾸 학원을 차려보고 싶다.


일단은 아주 작게 교습소로 시작하려고 소형평수 상가를 몇 군데 보러 다녔다. 첫 번째 본 상가는 학교 앞 대단지 아파트 입구의 상가이다. 위치가 너무 좋고 월세가 놀랍게 저렴해서 한걸음에 달려갔다. 세상에 버릴 경험은 정말 하나도 없다. 창문이 없네? 백 룸인 줄... 알았다. 게다가 놀랍게 공실인데도 불구하고 바닥권리금? 이 있다며 500만 원을 요구했다. 바닥? 뭐요? 바닥 더럽던데요? 부동산 실장님이 어이없어하셨다. 너무 몰라서 빙구 같다고 생각한 것 같다. 아.. 흠... 네... 생각해 보고 올게요. 정말 생각 많이 했는데 별로다.


다음은 무인 아이스크림전문점 상가로 이동했다. 오! 이곳은 창문이 있다. 바깥으로 통창이 나있어서 환하고 첫 번째 상가보다 2배는 넓어서 공간 분리 구성도 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학교가 멀다. 상가 자체가 관리가 잘 안돼서 화장실에서 귀신 나오게 생겼다. 권리금 물어봤더니 사장님께서 원래 권리금은 없는데 한 돈백정도 챙겨주면 된단다. 어느 나라 말일까? 원래 없는데 백만 원 정도를 챙겨주라는 말이 이해가 안돼서 재차 물었는데 어물쩍 기법으로 계속 같은 말을 하셔서 그냥 넘어갔다. 무인 아이스크림 상가가 마음에 걸려 학교까지 얼마나 먼가 직접 걸어서 가봤더니 왜 그 상가가 저렴한지 알게 되었다. 세상에 쉬운 게 하나도 없다.


그렇게 틈틈이 난생처음 상가를 보러 다니고 학원 시스템을 파악하려고 설명회를 듣다 보니 대충 예산안이 잡혔다. 프랜차이즈 유무에 따라서도 차이가 크고 시스템을 돌리면 내가 편한데 대신 초기 비용이 몇천 단위로 들었다. 이런 무모한 도전을 해보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대체 난 왜 이모양이지? 너무 무모하잖아. 힘들어서 학교 그만둬놓고 다시 힘든 일 하고 싶어서 이리저리 찾아보는 내가 이상하다. 이렇게 무모하지만 결단력 있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라 매번 이사 갈 아파트 살 때도 그렇고 뭔가 결정할 때 앞뒤 안 보고 확 질러서 남편이 무서워한다. 그때는 젊었으니 괜찮은데 이제 나이 먹고 중년이니 좀 더 신중하게 결정해야겠다. 참자. 참어.


이전 02화 퇴직 후 은퇴설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