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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스런 후후작가 Oct 12. 2024

원래 글씨체보다 이쁘게 쓸려고 노력했어요.

글씨체보다 마음체가 예쁜 너를 평생 기억할게.

오랜 숙원 사업이었던 퇴직을 하고 공교롭게도 내가 다시 재취업한 곳은 결국 학교이다. 24살에 신규 발령을 받아 지금까지 정교사로 살아왔으니 애들 가르치는 일 말고는 자신 있는 일을 찾기가 힘들었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자 퇴직을 결정했건만 다시 스트레스 속으로 뛰어들다니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다. 암수술을 하고 항암을 하며 학교를 6년간 떠나 있으며 모든 휴직들을 영끌해서 쓰고 이제는 이렇게 연명하는 게 지긋지긋해서 퇴직을 내질러 버렸다. 사실, 올해 초에 몸의 컨디션이 정상 수준까지 올라와서 복직을 시도해 봤지만 장기휴직자에게 학교는 매몰차게 대했다. 제일 무겁고 힘든 업무와 학년이 배정되자 겁이 덜컥 났다. 암이 재발할까 겁부터 났다. 더 아프면 안 된다. 몸을 사리려면 지금의 학교는 나에게 최악의 상황이다.


그런 내가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시간강사로. 시간강사 최쌤의 하루는 다이내믹하다. 일용직 노동자처럼 언제 어느 학교에서 전화가 올지 몰라 스탠바이로 하루를 시작한다. 값싼 노동력이지만 나에게는 일자리를 선택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이 생겼다. 골라잡아 잡아.


"안녕하세요? 최쌤, 교육청 구직란 보고 연락드립니다. 사시는 곳과 먼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워낙에 사정이 급해서 혹시 와주실 수 있나요?"

-차로 1시간 거리다. 패스.


"안녕하세요? 00초 교감입니다. 저희 학교로 말하자면 매우 가족 같은 분위기고 업무도 다 같이 하고 있습니다. 걱정거리가 없어요. 혹시 3학년 담임 기간제 가능하신지요? 아이들도 11명이에요."

-애버랜드 깊은 산속 옆 학교다. 퇴근하는 길에 퍼레이드 볼 수 있어 좋아 뵌다. 하지만 너무 멀고 한 학년에 한 학급이라니. 패스.


"안녕하세요? 혹시 특수아동 협력 교사 가능하실까요?

-난 초등인데... 특수교육샘 아닌데. 패스.


"혹시 당장 와주실 수 있나요? 저희가 너무 급해요. 여기는 부천이에요."

-흠냐 너무 멀다. 패스.


배가 덜 고파서 그런가 가깝고 부담 없는 곳을 골라서 제일 마음에 드는 학교로 출근을 하기로 했다. 일단 오랫동안 쉬었으니 가볍게 3일짜리 시간강사를 해보자. 아이들은 5학년이고 담임선생님께서 코로나에 걸려서 병가 중이시다. 그 말인즉슨 그 반에 코로나가 휩쓰는 중이라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26명 중에 6명이 결석이다. 등교를 한 아이들 중에 상당수도 기침을 했고 두통을 호소해서 2명은 조퇴를 시켰다. 병가에 들어간 담임선생님이 나보고 필히 마스크 쓰고 옥체 보존하라고 연락을 주셨다. 그렇지... 나까지 아파서 못 나오면 이 어린양들은 어찌할꼬. 급하게 마스크를 찾아 끼고 교실창을 활짝 열어 연신 환기를 시켰다. 갱년기가 와서 너무 더웠지만 어쩔 수 없다. 균들아 멀리멀리 나가 제발 저리 가렴.


일단 출석 정리하고 아픈 아이들 상황 살피고 임시담임반 아이들과 첫 수업시간을 시작했다. 6년간의 공백이 우습게 어제 수업했던 것처럼 매우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내 모습이 신기했다.

'아... 나 선생님이었지. 그것도 아이들 매우 사랑했던..'

꽤나 열정적인 교사였던 과거의 내가 그랬듯 임시담임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했다. 산 밑에 자리 잡은 학교라 그런지 아이들이 해맑고 학업 스트레스에 찌든 모습이 아니라 보기 좋았다.


어느 학급에나 있는 우리의 왕건이 vip들이 교실에 들어선 지 5분 만에 파악이 되었다. 제일 앞자리에 앉아있는 현준이는 연신 물건을 떨어뜨리고 뒤돌아보며 뒷자리 친구 책상에 자신의 풀을 문지르며 불쾌감을 선사하고 계셨다.

저분께 나의 약을 팔아야겠다. 마약 아니고 마법의 약. 이 약은 사람을 사로잡는 전설 속의 마법의 약으로.... 는 무슨 개뻥이고. 평소 매우 많이 혼나는 학생들에게 팔면 효과가 좋은 약이 있다.

그건 바로. 뜬금포 칭찬.

딱 보아하니 칭찬할 구석을 찾기가 정말 힘든 아이였다. 그래도 찾아야 한다. 눈에 불을 켜자.


"1반 친구들 선생님과 오늘부터 3일간 수업하게 되었어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선생님은 인연을 믿어요. 여러분과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은 기적 같은 인연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에 대해서 사전 지식이 없어요. 그동안 어떤 말썽을 피웠는지 어떤 꾸지람을 들었는지 몰라요. 여러분 기회입니다. 선생님을 통해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실험해 보세요. 선생님은 칭찬 폭격기예요. 잘하려고 노력하면 정말 잘해지는 것 잘 알죠? 기적처럼 만난 우리가 3일 동안 기적을 만들어봅시다. 과거의 나는 잊어버리고 발전한 모습의 나를 떠올리며 용기 내보세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면 분명 변화할 거예요. 선생님은 천명도 넘게 학생들 만나면서 변화한 모습을 많이 지켜봤어요. 수업 시작할게요."


vip님이 자기도 변할 수 있냐고 큰 소리로 묻는다. 일단 성공. 과거의 나는 잊고 새 도화지에 새롭게 시작해 보자고 독려한 후 일단 태도를 칭찬한다.


"선생님의 말을 주의 깊게 잘 들었어요. 경청하는 자세가 남다른데 평소에도 이런가요?"

애들 난리다. 얘 전혀 아니에요. 매일 혼나요. 교실이 순식간에 와글거린다.

"숨겨진 재능 발견이네? 엄지 척"

아이가 배시시 웃는다. 좋아서 웃는 모습이 귀엽다. 5학년이면 아직 어리다. 이런 말들이 먹힌다.

하지만 한 번에 변화한다면 그건 기적이지. 곧 자세가 흐트러지고 말문이 홍수처럼 터진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제어하기가 힘들어 보인다. 너 정말 평소에 많이 혼났겠구나 싶다. 3일 동안 사랑 많이 주고 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시간강사의 장점을 하나 더 발견한 순간이다.


국어시간. 이현 작가님의 푸른 사자 와니니의 책을 온 책으로 모두 읽으며 독후활동 하는 시간이다. 1반 친구들은 독서를 매우 좋아했다. 와니니 책을 읽으니 교실이 세상 고요해졌다. 놀랍게도 입이 쉴새없이 움직이며 제어가 안되던 현준이까지 책에 아주 깊이 푹 빠져들었다. 그는 독후 활동이 끝났는데도 쉬는 시간까지 책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다음 수학 시간까지 그러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수학책과 익힘책을 책상 위에 모두 준비하고 수업 시작을 하는데 현준이만 제일 앞자리에서 와니니 책 뒷부분을 달리고 있었다.


"현준이 책 속에 빠져드는 속도가 와니니 사자 같이 빠르다. 책 내용 흥미롭니?"

"너무 재밌어요. 뒷이야기 궁금해요. 저 조금 먼 더 보면 안 돼요? 네네??"

"뒷이야기 궁금하지? 작가님이 아주 킹왕짱이시거든. 알고 보면 7권까지 시리즈야. 알고 있었어?"

"네? 진짜요? 몰랐어요."

"지금은 수학시간이니 교과서 꺼내고 나머지 궁금한 내용은 보물처럼 남겨두자. 그래야 더 재밌어. 아껴보자."


현준이는 수학책이 사라졌다며 사물함에 다녀오고 계속해서 수학책을 찾으러 다녔다. 사자가 먹잇감을 찾는 것 처럼 말이다. 알고 보니 책상서랍에 삐죽 나온 수학책이 보인다.

"현준아 수학책 혹시 책상 서랍은 찾아봤니?"

"네, 없던데요?"

"한번 더 확인해 보세요."

"오오오 여깄 어요."


우리 현준이는 그 이후에 실과시간에 집 만들기 할 때도 목공풀을 쏟아서 뒤에 앉은 친구 책상에 쏟기도 하고 뭐가 잘 안 된다며 괴성을 지르기도 하며 주변을 공사장처럼 지저분하게 만들어놨지만 내 눈엔 귀엽게 보였다. 억지로가 아니라 진짜 귀여워서 사실 그 모습이 우리 아들 같아서 진심으로 현준이에게 잘해줬다. 주변 친구들이 현준이가 수업시간에 잘 참여한다고 신기해했다.


다음날 현준이는 등교하자마자 달려와 와니니 7권 모두 집으로 배송 오고 있다고 말하며 눈을 반짝였다. 약을 팔아야 하는데 내가 책까지 팔았구나. 책 좋아하는 현준이는 필히 지혜롭게 클 것이라고 덕담해 주니 또 배시시 웃는다. 왜 이리 귀엽니 너.


이유가 뭘까? 결코 쉽지 않은 아이인 건 확실한데... 이유를 찾았다.

우리 집 사춘기 지랄병 오지게 걸린 아들 덕분에 그 이하 아이들이 다 귀여워 보인다. 마치 미친 듯이 어렵고 풀리지 않는 심화문제에 단련되어 다른 문제들은 너무 쉽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고맙다. 아들아. 엄마가 니 지랄병을 온몸으로 몸빵 하며 쌓은 기술들이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구나.


코로나가 휩쓸고 간 교실에서 3일간 아이들과 수업을 하고 마지막 날. 작별 인사를 하며 교실정리를 하는데 현준이가 슬금슬금 다가온다.

"선생님 여기요. 제가 편지지가 없어서 공책 뜯었어요."

"어머 이게 모야? 편지야? 와... 감동이다. 이리 와 안아줄께."

6년간 못 만났던 학생들을 만나서 나도 행복한데 마지막날 현준이가 담임도 아니고 임시선생님한테 꼬깃꼬깃 편지까지 써줬다. 아이를 안아주며 눈물이 찔끔 났다.

하지만 여기서 깔끔하게 떠나야 한다. 난 시간 강사니까! 질척대지 말고 씩씩하게 원래 담임 선생님께 보내고 다음 일자리로 떠나보자.

현준아 힘내! 내가 평생 응원할께. 편지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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