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우당탕탕 아 의자가 불편하네 쿠션이. 이 의자로 바꿀까?'
여기 도서관 열람실인데 계속 낮게 지껄인다. 혹시 혼자 있다고 착각하는 건가? 이른 아침부터 집을 탈출해 도서관에 도착한 내 뿌듯함을 저격하듯, 뒤늦게 옆자리를 꿰찬 남자가 연신 나만 들리는 소리로 중얼거린다. 오늘 하루 종일 집필하러 왔는데 곤란한 상황이다. 빠르게 정상 범주의 사람인지 파악해야 한다. 계속 저러면 일찌감치 자리를 옮기는 게 낫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려고 이곳에 왔건만 뜻밖의 변수가 생겼다.
아니나 다를까 낮게 음음 음음거리며 주기적으로 목에 가래 낀 것을 걸러내는 소리를 낸다. 음음 나한테 할 말 있는건 아닐테고 나도 같이 음음 거릴까? 복수할까? 화장실가서 가래를 뱉고 오지. 그간 축적된 나의 인생 경험 데이터 분석력을 무시하면 안 된다. 이런 사람들을 나는 '소음인'이라 부른다. 가방을 내려놓는 소리, 의자를 빼는 소리라든지 책장 넘기는 소리, 타이핑하는 소리 등 일부러 효과음을 넣은 것처럼 구는 사람들. 숏폼에 자주 쓰이는 효과음을 온몸에 장착한 사람들이다. 정작 본인은 잘 모르고 있을 확률이 높다. 다른 사람들과 분명 똑같이 숨을 쉬는데 그 사람의 숨소리는 더 크게 들리고, 똑같이 화장실에 가도 발자국 소리가 효과음 넣은 것처럼 들리는 그런 부류. 인간 효과음이다. 조용한 열람실에서는 소음인들의 활약이 도드라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음 모드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니까 말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옛말은 틀린 말이 아님을 살면서 경험한다. 이럴 땐 탈출이 지능순이다. 괜히 고통받으며 감내하느니 내가 도망치면 그만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되니까. 내 촉을 믿고 말이다.
그렇다고 집에서 나 혼자 음악 틀어놓고 다리 올리고 편하게 작업하면 될 텐데, 집에서는 도무지 진도가 안 난다. 모든 물건들과 정이 들어서 눈만 마주치면 와 달라고 손짓하니까. 빨래 끝나면 건조기 돌려야 하고, 그 사이에 설거지·청소기·저녁 준비 등등 두뇌가 집필에만 집중하기에는 과부하가 온다. 수많은 멀티 상황 속에 놓이며 정작 모든 걸 놓치고 있는 좌절감. 그래서 그것들을 외면하려고 도망 나왔다. 안 봐야 해. 그래야 나한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어.
잠시 생각해 본다. 집안일과 언제 만날지 모르는 소음인들 사이에서, 나의 선택은 소음인이다.
가방에서 살포시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꺼내 끼고 브루노 메이저 음악을 들으며 소음인과의 결별을 선언하면 그만이다. 콩나물 모양의 작은 이어폰으로 세상의 불편함과 나 사이에 보호막이 생겼다. 밖은 거센 비가 내리지만 우산 안에서 비를 피하는 기분으로. 완벽하지는 않지만 왠지 모를 안도감. 차가운 이어폰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그가 모르는 나만의 손절 의식이 꽤 흡족하다.
생각해 보면 나의 과거는 끊임없는 도망의 역사와 같다. 아이와 대립이 힘들어 도망치고, 집안일이 손짓하면 도망치고, 소음인이 시끄러우면 이어폰 뒤로 숨고. 이러다가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이 스친다. 이토록 도망을 거듭하며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타인이 함부로 할 수 없게 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나의 두 다리를 움직였고, 나를 지켜냈다.
나도 '좀 조용히 해주실래요?' 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은 하지 않는다. 그 말을 뱉는 순간 상대가 느낄 감정과, 말해 놓고도 편치 않을 내 감정을 뒷수습하는 것이 피곤하다. 이런 선택은 때때로 옳다.
내 옆의 소음인과 조용한 손절 의식을 거행한 후, 이번에는 내가 마른기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텀블러에 담긴 물로 목을 축여 기침을 잠재우려 했지만 한 번 터진 기침은 또 다른 기침을 데려왔다. 이번에는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소음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신입 소음인답게 더 큰 소리로 의자를 끼익 빼고, 우당탕탕 발걸음으로 급하게 열람실을 나왔다. 내 옆의 원조 소음인의 음음음음 가래 소리보다 마른기침은 성대를 타고 나와 확성기처럼 멀리 퍼진다. 이번에는 내 옆의 남자가 나의 기침 소리 후 자리를 떴다. 손절을 직감한다.
서로가 빌런이면서 서로 싫어하는 상황이 계속되다 보면 어느덧 익숙해질 때가 온다. 그때까지 나는 몇 명의 사람들을 손절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