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멀지 않은 곳에 기다리던 신설 도서관이 개관했다. 이사 올 때부터 5년 넘게 기다렸는데 드디어 오픈을 해서 한달음에 달려갔다.
새것이니까 시설이 좋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 도서관 입구에 들어섰다. 내가 사는 곳은 30년도 넘은 구도심에 자리 잡고 있다. 기존 도서관들도 도시의 나이만큼 같이 나이를 먹어서인지, 신설 도서관과의 대비가 더 크게 느껴진다.
일단 화이트톤의 밝은 열람실과 개별 스탠드, 쿠션 좋은 의자까지. 오랫동안 앉아 있어도 나의 엉덩이가 즐거워할 예정이라고 생각하니 궁뎅이 춤이 절로 나온다.
야외 공간에는 커다란 빈백들과 캠핑존처럼 꾸며놓은 자리가 있다. 비스듬히 앉아 바깥 경치를 즐기며 담요를 덮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실내에는 요즘 트렌드인 계단식 공간도 있어서 누워서도, 다리를 쭉 펴고 앉아서도 자유롭게 책을 볼 수 있다. 마치 캠퍼스의 한 장면 같다. 도서관 내 카페도 스타벅스 오마주처럼 깔끔하게 꾸며서 근사하다.
문제는 책이다. 책! 도서관인데 책이 별로 없다. 이건 너무 큰 약점이다. 드넓은 책꽂이에 책이 빈약하게 꽂혀 있어 북엔드로 고정해놔야 할 판이니, 이곳을 다 채우려면 몇 년은 족히 걸릴 것 같다.
얼핏 보면 책꽂이가 비어 있어서 창문 같아 보이기도 하다. 읽고 싶어지는 책이 없는 곳이라니. 시설은 나의 도서관 선택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몇 번 지나지 않아 바로 깨달았다.
깨끗하고 시설 좋은 새 도서관을 뒤로하고 예전 다니던 서른 살 먹은 도서관으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렇지, 바로 이거지. 입구 색깔부터 다르다. 새로 지은 도서관의 세련된 아이보리빛이 아니라 초록이 테마다. 눈의 피로를 덜어주려는 배려일 거라는 생각이 드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 난간은 투박한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10cm 간격으로 촘촘히 박혀 있는 차가운 스테인리스 난간살을 따뜻하게 감싸주려는 듯, 나무 난간을 만져보면 온기가 느껴진다. 30년 동안 계단을 오르내리며 무심코 닿았던 사람들의 손길도 같이 느껴진다. 모난 부분 하나 없이 매끈하고 따스해서, 넘어지지 말라고 계단이 손을 내밀어준 기분이 든다.
계단의 손을 잡고 서가에 들어서면 마침내 시상식이 펼쳐진다. 시상식의 주인공은 바로 책. 내 눈은 주인공들을 놓치지 않고 찍어야 하는 기자의 카메라가 되어 셔터를 연속으로 눌러댄다. 수많은 책들이 나를 반기며 어서 오라고 환영해 준다. 오늘은 어떤 셀럽을 찍을까, 행복한 고민에 빠지며 눈을 연신 깜빡이며 오늘의 셀럽 책을 찾아 헤맨다. 욕심 많고 호기심 넘치는 나는 최신간 셀럽을 선호한다. 바로 핫북 코너다.
핫북 코너는 인기 많은 베스트셀러 신간을 진열해 두는 곳으로, 열람만 되고 대출은 안 된다. 덕분에 다른 곳에서 이미 대출돼 사라진 최신 신간을 여기서 만날 수 있다.
오늘의 셀럽 책을 골라 앉을자리를 찾아본다. 다행히 핫북 코너 앞에는 푹신한 소파가 놓여 있다. 왼쪽에만 팔걸이가 있는 오픈 형태라, 엉덩이를 쭉 빼고 왼쪽으로 기대어 깊게 파고들어 앉아서 책 속으로도 파고들기 딱 좋은 자리다. 사람 심리가 다 비슷한지, 유독 왼쪽 끝 소파만 엉덩이 모양으로 스프링이 꺼져 있다. 바로 직전에 앉은 사람의 엉덩이 모양을 상상하는 재미도 있다.
재미있는 책을 만나면 나 또한 그곳에 나의 엉덩이 화석을 남기는 영광을 얻을 수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오래된 도서관 소파에는 엉덩이를 남긴다. 나는 새로 생긴 도서관 말고 여기가 내 자리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