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는 설거지를 안 해도 된다.
국도 끓이지 않는다.
세탁기도 울지 않는다.
거실대신 서가의 소파가 있고 항상 바닥은 청소된 채로 깨끗하다. 모든 환경이 나의 작가모드 데뷔를 환영하고 있다. 이제 역할 몰입만이 남았다.
생각보다 몰입은 순조로웠다. 통창에 둘러쌓여 빛이 사방에서 들어오는 도서관3층 814번대의 서가에서 앉았다 서다를 반복했다. 완벽한 세팅장에서 작가역할을 맡아서 인지 나도 모르게 책속의 문장들에 빠져버렸다. 두 볼이 뻘게지도록 책 속의 문장들을 눈으로 훔치며 씹어서 삼켰다. 대놓고 훔쳐도 범죄가 되지 않은 도서관에서의 일탈은 주변 사람들이 몇 번은 바뀌고 나서야 멈췄다. 완벽한 문장스틸러 작가모드의 완성이다. '나 참 책읽기를 좋아했구나.' 숏츠로 시간을 보낸후에 오는 피로감과는 비교가 안되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독서는 작가모드에서 받을수 있는 최고의 베네핏이다.
3시간동안 꼼짝하지 않고 책을 읽었더니 제법 많은 책들을 읽었다.
다 읽은 책들을 반납하는 카트에 가서도 좀처럼 손에서 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날이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인 것이다.
"빌리시는 건가요?"
저음의 굵직한 목소리가 내 귓잔등을 때리며 묻자 나는 손에 든 책을 하마터면 떨어뜨릴 뻔했다. 범죄현장에서 체포될까 봐 발뺌하는 용의자처럼 너무 빨리 "아니오."를 외쳤다. 물건을 훔치는 도중에 주인에게 발각된 기분이었다. 황급히 반납카트에 책을 내려놨다. 분명 둘 다 잘못이 없는데 누군가는 혼내고 누군가는 혼나는 상황 같았다.
“더 읽으셔도 상관없어요.”
아… 나는 또 “아니오.”
‘괜찮습니다, 감사해요’ 같은 사회성은 전부 생략하고, 딱 세 글자. 아니오.
더 다정한 “아니요”도 아니고, 왜 하필 “아니오”지.
탈옥한 범죄자처럼 서가를 빠져나오며 다시 두 볼이 뻘게졌다. 열람실에서 내 책상을 함부로 쓴 오른쪽 남자를 마음속으로 범죄자 취급했더니 벌받는 것 같았다.
전부터 도서관에 오면 자주 고장이 난다. 막힘없이 술술 훌륭한 발음으로 수업을 하는 나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특히 오늘같이 훔치고 싶은 책을 만나서 그 안의 문장들로 머리가 꽉 차버리면 더욱 말이 서툴어진다. 할 수만 있다면 문장정도가 아니라 작가의 뇌를 통째로 훔치고 싶은 충동까지 드는걸 보면. 나에게 이곳은 도서관이 아니라 범죄현장이 되어 버린걸까?
아..나 작가모드였지. 범죄스릴러 장르 아닌데 말이다. 역할에 과몰입했더니 부작용이 생긴것 같다. 노트북 열람실에 다시 올라왔더니 양쪽 남자 모두 떠났다. 듣는 사람은 없지만 조용히 '너의 죄를 사하노라.' 읖조리며 다시 역할에 몰입해보자.
도서관은 참 이상한 곳이다.
책을 훔치면 범죄지만, 문장을 훔치면 공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