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여의도공원. 미지근한 열기가 초여름 하늘의 옅은 구름, 그 사이 생채기처럼 보이는 비행기 흔적 그 아래 고르지 못한 시멘트 산책로 곳곳을 채우고 있다. 이 모습이 증권타운 바깥에 있는 프로이센 증권의 건물 유리창에 신기루처럼 비치고 있다. 이곳 10층에 고만해 팀장이 근무하는 사무실이 있다. 여의도공원의 전경이 가득 보이는 그의 사무실은 나름 성과를 인정받는 직원에게만 회사가 배려하는 곳이며, 34세의 고만해 팀장에게는 이른 나이의 성공을 상징하는 깃발과도 같다. 점심 식사 직전인 11시 50분, 고만해는 야속하리만치 단단하게 고정된 고층 건물 창문 너머로 여의도공원을 바라본다.
(여의도 점심) 일러스트-조수연
그의 책상 위에는 점심 식사로 먹을 오리엔탈 소스가 뿌려진 파랗고 노란 채소 샐러드가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있다. 오전 주식 시장 거래를 하면서 한바탕 소란을 떤 후라서 그런지 그는 오늘 지금 속이 개운하지 않다. 점심으로 탄수화물이나 지방을 먹으면 오후 근무 시간 내내 속이 부대낄 것이다. 고만해는 들큼한 채소를 한입 가득 물고 창밖을 응시한다. 군청색 안전 필름으로 덮은 유리창은 아무리 맑은 날도 햇빛을 푸르뎅뎅하게 투과할 뿐이다. 붙박이 창문 하단부에 작은 공기 소통구가 있지만, 창문은 그를 건물 밖 세상과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다. 이놈의 창문은 여의도공원 벤치에 앉아 하늘하늘 잡담을 나누는 사람들과 나를 정확히 유리창을 경계로 나를 격리한다. 그에게는 정말 끔찍한 고립감이다.
어렸을 적 고만해는 삼양동 언덕배기 달동네에 살았다. 그곳은 앞뒷집이 붙어있어 그의 방은 몹시 답답했다. 그의 방에는 니스 칠 벗겨지고 흠이 많았던 나왕 나무 창문이 있었는데, 불쌍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 창문은 그에게 시원하고 서늘한 바깥바람을 전해주며 늘 위안을 주었다. 그러나 그때 불쌍한 창문보다 지금 이 최첨단 창문은 열 배는 더 클 텐데도 조그만 위안도 허락하지 않고 답답한 것이 신기할 뿐이다. 창문의 목적이라면 폐쇄된 공간을 외부와 소통하게 하는 기능일 것인데, 반대로 격리감을 강화하는 이 창문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고만해는 아마 이 창문에 붙은 최첨단 기능들은 그를 위한 것은 아니고, 고개를 반드시 책상머리에 두고 딴짓이나 공상을 하지 못 하게 하려는 목적일 거로 추측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우리 주변의 사물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은 사물의 본래 기능보다는 그 사물을 사용하는 사람이 생성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사람들은 혼자 삭혀야만 하는 사연이 뇌리에 무성해지면 사물과 대화를 시작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그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창문과의 논쟁이 쓸데없다는 생각이 들자, 고만해는 마지막 양상추 샐러드를 포크로 찍어 입 안에 밀어 넣는다. 오늘따라 채소들이 그의 혀끝에서 전하는 질감이 유난히 거칠다. 그래도 동양의 드레싱 맛을 애써 기억에 되새기며, 그는 그저 그런 점심 식사를 마무리한다. 샐러드 용기를 치운 후 비릿한 우유 향을 뱉어내는 카페라테를 손에 들고, 잠깐 멍하니 유리창 밖 허공과 한 판 눈씨름을 하다가 고만해는 그의 책상을 향해 빙글 의자를 돌린다.
(트레이딩과 성배) 일러스트-조수연
고만해는 글로벌 다국적 투자은행 “프로이센”의 한국 계열회사인 프로이센 증권에 근무하고 있다. 35세인 그는 이른 나이에 상무 명함을 받은 것이 늘 자랑스럽다. 그는 기관투자가 대상의 증권 브로커리지(broke-rage) 서비스 전문가다. 대규모로 주식에 투자하는 자산운용사나 연금과 기금, 은행, 보험회사 등 기관투자가에게 전문적인 주식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그의 업무다. 증권업계에 종사하는 직원의 회사 내 평가 서열은 그들이 담당하는 직무에 따라 순위가 정해진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그가 맡은 직무가 회사의 이익에 얼마나 기여하는가에 따라 서열이 정해진다. 한편 증권업계 직무는 운용과 영업 그리고 관리로 크게 나누어진다. 돈을 벌어주는 가치사슬 상단에 운용과 영업직무 군이 자리하고 있다.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고 관리하는 운용 직무 군의 가치사슬 맨 위에는 펀드 매니저(운용역)가 있고, 영업직무의 가치사슬 최상단에는 법인 브로커가 각각 차지한다. 즉, 고만해는 증권 영업의 가치사슬 최상단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펀드 매니저는 증권 투자의 최첨단 기법, 기술을 활용해 변동하는 가격의 시간, 공간, 상품 간 벌어진 틈새를 이용한 투자로 증권 시장에서‘차익’을 만들어낸다. 펀드 매니저가 촌각을 다투는 투자 과정에서 시장정보를 제공하고 증권거래 주문을 차질 없이 처리하는 것이 법인 브로커의 역할이다.
기관투자가의 증권거래는 주문 양도 많고 복잡한 만큼 전문적인 증권거래 전산시스템과 주문 처리 능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직무 특성을 반영해서 그의 업무용 책상 위를 장식하는 설비는 화려하다. 상단에 운용 정보 조회용 모니터 3개, 하단에 주식과 파생상품 거래용 모니터 2개와 회사 업무용 포탈 모니터까지 6개 모니터가 고만해를 중심으로 시시각각 숫자와 그래프를 쏟아 내고 있다. 고만해는 가끔 우주왕복선의 조종실에 앉아있다는 착각을 한다. 그 덕분에 가끔 졸음에 빠질 때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불덩이 속에 산산이 공중분해되던 컬럼비아호 꿈을 꾸고는 한다. 어쩌면 끝없이 변하는 가격들 틈바구니에서 온종일 근무하는 것은 우주왕복선에 올라타는 것만큼 스트레스가 심할지 모른다. 그의 책상 위에 배치된 검은 모니터들에는 적색, 청색, 백색 가격들이 시시각각 색을 바꾸며 끊임없이 변하고 꿈틀거린다. 고만해는 가끔 빼곡한 가격표에 둘러싸여 있다 보면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존스 박사가 쫓기다 추락한 땅굴 함정 속에서 실타래처럼 뱀들이 엉켜 꿈틀거리는 모습이다. 증권 시장은 금융상품의 가격들이 만드는 함정과 위기를 피해야만 성배(聖杯)에 가까워질 수 있는 곳이다. 고만해는 성배를 찾아 정글과 사막을 종일 헤매는 인디아나 존스다. 다만 인디아나 존스와 다른 점은 성배를 찾아도 그가 차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가 획득한 성배는 회사가 전리품으로 차지한다. 성배를 찾은 대가로 그에게는 회사가 늘 공정하다고 설득하는 보수와 유인책, 무엇보다 책상과 명패를 받는다.
고만해는 달동네라는 수식어로 유명한 삼양동에서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보냈다. 삼양동은 삼각산 남쪽 햇볕이 잘 드는 동네라는 뜻인 데도 어린 시절 고만해에게 그 동네가 따스했다는 기억은 없다.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맞은편 산동네를 보면, 울퉁불퉁한 시멘트 부스럼으로 장식한 회색 벽들이 겨우 한 걸음 보폭으로 나란히 서서 온 산을 가득 메웠다. 이들 구불구불 골목길은 간혹 불규칙한 높이의 계단을 만나면 산허리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각자 소실점을 찾아 사라진다. 눅눅한 여름이면 알싸한 시멘트 냄새가 열기와 섞여 골목을 메웠고, 겨울이면 매서운 바람이 골목 굽이를 돌 때마다 옷깃을 파고들었다. 그는 늘 달동네 골목을 벗어나 신분 상승을 하는 꿈을 꾸며 성장했다. 살림이 어려운 동네에서는 골목을 벗어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삶의 목표이자 공유가치가 됐다. 항상 피로가 묻어있는 옷차림으로 출근하는 뒷집 아저씨도, 짜증스러운 가난을 저녁마다 상차림에 담는 사글세 문간방 아주머니도, 그들 앞에서 덩달아 주눅 들어 있는 아이들도 모두 바람은 언젠가 이 골목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달동네) 일러스트- 조수연
“슈퍼 집 아들이 이번에 은행에 들어갔단다. 그 집 얼마나 좋을까. 아들 덕에 동네 벗어나면 좋겠다. 나도 살아서 그럴 날이 있으려나?”
그의 어머니가 가끔 다른 집 얘기를 독백처럼 꺼낼 때면 그녀가 감정을 이입하는 드라마의 헤피 엔딩은 대개 동네를 떠나는 장면으로 마무리했다. 고만해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달동네 탈출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달동네의 가치관이 작동한 덕에 고만해는 이 악물고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공부 머리가 수재 수준도 아니었고, 부모의 재산이 있어 학습력 부족을 메워줄 과외를 받을 수도 없었기에 애초부터 갈 수 있는 학교는 제한되어 있었다. 고만해 뿐 아니라 고등학교 무렵의 달동네 아이들은 모두가 본능적으로 운명의 금(禁) 줄이 있다는 것을 안다. 초딩, 중딩 시절 다른 친구들의 고급 신발과 도시락 그리고 선생님의 특별 대우 등을 달동네 아이들은 목격하고 그 차이에 관해 의문을 품지만, 커 가면서 서서히 자기 한계에 익숙해진다. 그들 삶이 이해할 수 없는 힘으로 격리되고 뒤처지게 된다는 것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된다. 어린 나이에 보고 듣는 경험의 위력은 무섭다. 외부적 강제력이 없이도 스스로 심리적 계층의 담을 쌓기 시작한다. 그러나 인간은 넘어야 할 장애물을 보고 체념하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넘고 싶어 몸부림치기도 한다.
달동네의 고만해는 오랫동안 한계를 경험한 후 비자발적 사회적 격차가 너무 싫었다. 그 혐오가 준 자극 덕에 고만해는 성장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수치(羞恥)를 참을 만큼 꿈을 가질 수 있었고, 이것이 그의 삶을 바꾸는 기회를 가져왔다. 살림 형편에 과외는 꿈도 꿀 수 없었지만, 그에게는 S 대 경제학과를 나와 일찌감치 과외를 통해 돈맛을 안 이모부가 있었다. 고만해는 이모부가 가르치던 팀에 끼어 허드렛일을 담당하고, 그들 공부하는 구석에서 교습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평생 잊지 못할 생생한 교훈을 얻는다. 어린 나이의 그에게 과외 현장은 생물학적으로는 평등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차별되는 인간 세상의 생생한 경험이었다. 같은 동년배 학생이었지만 고만해를 일하는 사람처럼 부리는 것을 그들은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미 사전에 통지가 되어 있었던 것처럼 첫인사 후 그들은 과제 프린트 등 학습물 준비, 칠판 정리, 야식 사 오기 등을 자연스럽게 요구했고, 그는 대가를 지급하는 심정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과외가 끝난 후 헤어질 때는 고생했어’라는 문장이 덧붙기는 했지만, 언제 하대했느냐는 듯 친구처럼 인사를 했다. 고등학교 2학년 1학기에 시작해서 약 1년 동안 계속된 그 과외 시간 덕분에 고만해는 학교 성적이 많이 좋아졌다. 이전까지 경제 형편에 단과 학원 몇 번 다닌 것이 다였고, 그저 그런 공부 머리를 가졌다고 자포자기한 고만해는 사적 교육 시스템의 위력을 톡톡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과 친해졌다는 착각 속에 친구처럼 행동한 것이 원인이었던지 마지막 3학년 2학기에는 과외 수업을 더 참가 못 하고 그 과외에서 하차했지만, 차이를 인정하고 순응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생생한 처세를 배울 수 있었던 기회로 그는 기억한다.
그 덕인지 고만해는 일류대학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없는 집 출신으로는 과분하다는 평가를 받는 대학에 그가 희망하는 경영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가 경영학을 선택한 것은 가장 단기간에 달동네를 탈출할 가능성을 높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슬픈 눈은 늘 그에게 인생을 밀어내는 강력한 피스톤 역할을 했고, 또 금을 쫓아 미국 서부를 개척한 포티나이너스(Forty-niners)처럼 돈 냄새를 맡고 좇겠다는 신념을 키워주었다. 그는 커 가면서 취직에 유리하고 돈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이 대학에서 비즈니스와 관련된 학과를 공부하는 것이라고 들었고 그중에서도 경영이나 경제가 돈에 더욱 가까워 보였다. 경영학과에 입학하며 1단계 고비를 넘은 고만해는 이 악물고 공부했다. 그리고 대출에 대출을 엎어서 이류 대학이지만 경영학과를 악착같이 졸업했다.
고만해는 대학교 졸업 후 취업 진로를 큰 고민 없이 선택할 수 있었다. 그가 증권업계에 발을 들인 것은 일류대학 경영학과 출신으로 펀드 매니저로 성공한 고등학교 선배 K의 영향이었다. 그가 사는 달동네 앞을 가로지르며 경계 역할을 하는 삼양로 건너편 비교적 중산층 동네에서 살았던 선배는 어느 눈 많이 오던 날 아침 등굣길에 버스 안에서 만났다. 그때 선배는 3학년 졸업반으로 그보다 1년 상급반이었다. 그날 아침 경사도 30%의 눈 덮인 삼양로 빙판 고갯길을 그가 탄 버스는 넘지 못했고, 승객들은 버스에서 내려 고개를 걸어 넘어가야 했다. 버스 타이어가 짓이겨 잿빛으로 눌어붙은 눈길 위에서 사람들은 종종걸음 하면서 하얀 입김을 내뱉고 있었다. 무중력 상태의 눈발 속에 여기저기 투덜거리는 사람들의 소음이 가득했고, 그가 온통 하얗고 산만한 그 길로 내려서자 두어 걸음 앞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인기척을 그는 느꼈다. 같은 학교 교복을 입은 선배는 반가운 표정을 하며 먼저 다가왔다.
“ 매일 아침 같은 버스 타는 걸 봤는데, 몇 학년이지? 난 3학년이야.”
“ 2학년입니다. 선배님”
“아! 그래. 이 동네에서 우리 학교까지 다니는 친구들이 별로 없어서 너무 반갑다.
학교까지 말동무나 하며 가자.”
한눈에 봐도 K 선배는 실력을 갖춘 우등생이었다. 무엇보다 이 동네에 산다는 것이 오랫동안 핸디캡이었던 고만해에게 K 선배의 출현은 등장 그 자체로 이미 긍정적 영향을 주기에 충분했다. K 선배는 실력대로 일류대학인 K 대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그 대학은 고만해도 희망하던 대학이었지만 그가 도전하기에는 문턱이 너무 높았다. 이후 K 선배와 고만해는 진학한 대학교는 달랐지만, 눈길에서 만난 인연으로 가끔 연락을 서로 주고받았다. 그들은 삼양사거리 시장 골목 안 돼지껍질 집에서 가끔 소주 한 잔을 기울이고는 했다. 그때마다 선배는 패기 넘치는 목소리로 본인의 꿈을 설파했고, 그 모습은 마치 외줄 타는 광대가 신명이 나서 부채를 흔들어대는 것 같았다.
(대폿집) 일러스트 조수연
그들의 돈독한 선후배 우정은 두 사람이 군대를 다녀온 이후에도 계속됐다. 제대 이후 K 선배의 대학 졸업이 가까워지던 어느 날 저녁, K 선배는 영어 원서 한 권을 겨드랑이에 끼고 나타나 돼지 껍질 식당의 드럼통 테이블에 펼치고는 한바탕 가르침을 주겠다고 흥분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유명한 투자론 책이었다. 그날 처음 들었지만, K 선배는 대학 2학년부터 펀드 매니저를 꿈꾸고 있었다고 얘기했다. 펀드 매니저가 돈을 조(兆) 단위로 기금을 모집하고 맘껏 투자하는 자본주의의 꽃 중의 꽃이라는 얘기도 했다. 금융 선진국의 헤지펀드를 맡아 투자하는 펀드 매니저는 일 년 보수로 수백억 원이 넘는 돈을 버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에게는 정말 놀라운 얘기였다. 고만해는 콜럼버스가 어린 시절 금으로 치장한 집이 있다는 지팡구(재팬의 고어) 얘기를 들었을 때가 이런 기분이었을 거로 추측했다. 그때까지 삼양동 탈출이 목적이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또는 무엇을 해야 할지 구체적인 탈출 방법을 고만해는 몰랐다. 그러던 그에게 K 선배가 던진 얘기는 단순한 정보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고만해가 존경하는 K 선배의 인생과 꿈은 더는 K 선배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고만해는 자연스럽게 투자와 리스크 세계를 운명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투자에 대한 여러 가지 복잡하고 장황한 정의가 있겠지만 군더더기 설명 다 빼고 말하면 ‘투자 포지션을 가지는 것(to take a position)’이 가장 정리된 정의이다. 여기서 투자 포지션이란 주식처럼 가격이 변화하는 금융투자상품을 시장에서 사거나(Buy) 팔거나(Sell) 가만히 보유하고 있어서(Hold) 가격 변화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이다. 한편 어떻게 보면 인간도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투자 포지션을 가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만해는 삼양동 달동네라는 투자 포지션을 좋건 싫건 보유했다. 세상이라는 곳의 기본 역학 구조가 바로 시장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타고난 투자 포지션은 고정적인 것은 아니고 변화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개선을 항상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투자 포지션을 잘못 건드리면 오히려 인생을 개악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장을 탐색하고 잘 이용하여 각자의 투자 포지션을 개선할 수 있는 노력과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유의할 것은 시장에는 가격을 설정하는 자(price maker)와 가격을 받아들여야 하는 자(price taker)가 있다는 것이다. 전자는 강한 시장 장악력으로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가격을 조정하는 자이고 후자는 전자에게 지배를 당하는 자이다. 시장에서 대부분 사람은 가격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순응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한편 20%가 80%를 지배한다는 파레토 법칙은 이 시장에서도 관찰된다고 하겠다. 가격 순응자는 불가항력으로 시장 가격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생존의 규정(rule)이기 때문에 시장을 조정할 수 없는 처지에서는 예기치 않는 방향으로 시장 가격이 변화하는 것은 곧 리스크다. 고만해의 선택은 그의 인생에서 어떠한 투자 포지션 변화의 결과를 가져올까? 그는 리스크가 가득한 튤립 광기의 화원에서 살게 될까? 그는 가격 조정자 지위에 오를 수 있을까? 그러나 고만해가 그가 했던 선택의 의미를 미리 알기에는 시장은 너무 복잡하다. 그래도 고만해는 그저 낯선 무언가를 아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고 스스로 도취하기에 충분한 젊은 나이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