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AI 간파하는 ‘문과생의 AI리터러시’
자라, 미쏘, 스파오 등 유명 패션 브랜드들이 '그린워싱'으로 경고 조치를 받았죠. 인조가죽 제품에 '에코 레더', '지속가능한' 같은 친환경 표현을 써서 소비자를 기만했다는 이유입니다.
바로 AI 워싱(AI Washing)입니다.
그린워싱이 친환경이 아닌데 친환경인 척하는 것이라면,
AI 워싱은 AI가 아닌데 AI인 척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여러분의 회사, 여러분의 부서에서도 일어나고 있을 수 있습니다.
AI워싱은 어떤 형태로 일어날까요? 몇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1. 마케팅 부서의 함정
"우리 회사도 AI 마케팅 솔루션을 도입했습니다!" 마케팅 팀장이 자랑스럽게 발표합니다. 월 수백만 원을 지불하는 '고객 행동 예측 AI 플랫폼'을 구매했다고요.
하지만 3개월 후, 성과는 기대에 못 미칩니다. 알고보니 이 '혁신적인 AI'는 단순한 규칙 기반 자동화 시스템이었습니다. if-then 조건문의 복잡한 조합일 뿐, 진정한 의미의 머신러닝이나 딥러닝은 없었죠.
2. 인사 부서의 착각
"AI가 최적의 인재를 찾아드립니다!" HR 부서는 AI 채용 시스템에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이력서를 업로드하면 AI가 자동으로 최적의 후보자를 추천한다는 거죠.
실상은? 키워드 매칭과 점수 계산 알고리즘일 뿐입니다. '리더십', '팀워크', '혁신' 같은 단어가 몇 번 나오는지 세는 수준이죠. 이걸 AI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3. 재무 부서의 오판
"AI 기반 재무 예측 시스템으로 정확도 99% 달성!" CFO는 비싼 돈을 들여 도입한 AI 시스템의 성과에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시스템은 과거 데이터의 단순 회귀분석에 불과했고, 시장 변동성이 커지자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기업 내부에서도 ‘AI 워싱’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먼저 기술 부서조차 AI의 실체를 명확히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생각보다 놀랍게도 IT 부서나 개발팀 역시 ‘AI 워싱’에 쉽게 혼란을 느낍니다. 이는 ‘AI’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광범위하고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수많은 솔루션 업체들은 ‘머신러닝 기반’, ‘AI 엔진 탑재’, ‘딥러닝 알고리즘 적용’ 같은 매력적인 기술 용어를 교묘히 혼합해 사용하면서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합니다. 하지만 실제 구현된 내용을 뜯어보면 수준은 천차만별입니다. 예를 들어, 겉으로는 첨단 AI 챗봇이라고 홍보하지만 실제로는 단순히 사전에 설정된 규칙 기반 시나리오로 작동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기술 부서조차도 ‘진짜 AI’와 ‘가짜 AI’를 명확히 판별하기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기업 내부에서 기술팀과 현업 부서 사이의 도메인 지식 부족 문제도 큽니다. 기술 부서는 AI 기술 자체에는 능숙하지만, 특정 업무 분야에서 실제 해결해야 할 업무상의 문제나 요구사항을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반면에 현업 부서는 자신들의 업무는 잘 알지만, AI 기술의 구현 가능성이나 한계에 대해서는 무지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처럼 기술과 업무의 단절이 심각한 상황에서 외부 솔루션 업체들은 양측의 정보 비대칭성을 이용해 과장된 기술을 판매할 여지를 얻습니다. 예를 들어, HR 부서가 AI 기반 채용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실제로는 단순 키워드 매칭 시스템에 불과해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얻지 못한 사례가 빈번히 발생합니다.
마지막으로, 조직 내에서 성과 압박과 트렌드 추종 심리가 AI 워싱을 부추깁니다. 경영진들은 “경쟁사도 이미 AI를 도입했다”라거나, “이사회에서 AI 전략을 요구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곤 합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충분한 시간과 역량을 들여 실제 AI 솔루션을 검증하지 않고도 급히 ‘AI라고 불리는 것’을 무비판적으로 도입하게 됩니다. 이는 결국 실제 효용성보다 ‘보고를 위한’, ‘형식적인’ 도입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AI 워싱에 속아 넘어가면 기업은 생각보다 훨씬 큰 손실을 입게 됩니다. 단순히 돈을 낭비하는 것을 넘어, 기업의 미래 경쟁력까지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우선 직접적인 재무 손실부터 생각해보겠습니다. 한 중견기업의 실제 사례를 들어보죠. 이 회사는 'AI 기반 고객 응대 시스템'에 연간 5억 원의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여기에 시스템 구축 비용 3억 원, 직원 교육 비용 1억 원, 그리고 6개월간의 시행착오 기간 동안 발생한 업무 효율성 저하까지 합치면 총 10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1년 후 성과를 평가해보니 기존의 규칙 기반 챗봇과 성능 차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결국 이 시스템은 2년 만에 폐기되었고, 그동안 축적된 데이터는 다른 시스템과 호환되지 않아 모두 버려야 했습니다. 20억 원이 그냥 공중으로 사라진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기회비용입니다. 이 회사가 가짜 AI에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는 동안, 경쟁사는 진짜 AI 솔루션을 도입해 고객 만족도를 30% 향상시켰습니다. 시장 점유율은 역전되었고, 한번 벌어진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AI 워싱 때문에 디지털 전환의 골든타임을 놓친 것입니다.
조직 문화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AI 도입에 열정적이었던 직원들이 실망을 거듭하면서 변화에 냉소적이 되었습니다. "또 AI야? 지난번 그 비싼 시스템도 결국 쓸모없었잖아" 이런 분위기가 퍼지면서 진짜 혁신적인 기술이 나와도 조직의 저항에 부딪히게 됩니다. AI에 대한 불신이 조직 전체에 뿌리내리면, 이를 회복하는 데는 몇 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전략적 실패는 더욱 치명적입니다. 한 유통 대기업은 'AI 수요 예측 시스템'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전사적인 재고 관리 정책을 변경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단순한 시계열 분석에 불과했고, 코로나19 같은 예외적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수천억 원의 재고 손실이 발생했고, 일부 제품은 품절로 고객을 잃었습니다. 잘못된 AI에 의존한 의사결정이 기업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인재 유출도 간과할 수 없는 손실입니다. 진짜 AI를 다룰 줄 아는 유능한 개발자나 데이터 과학자들은 가짜 AI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나갑니다. 한 IT 기업은 AI 워싱 제품 개발에 우수 인재를 투입했다가, 6개월 만에 핵심 인력의 40%를 잃었습니다. 이들을 대체하는 데 들어간 채용 비용과 공백 기간의 손실은 수십억 원에 달했습니다.
브랜드 이미지 손상도 심각합니다. 특히 B2B 기업의 경우, 한번 'AI 워싱을 하는 회사'로 낙인찍히면 신뢰 회복이 매우 어렵습니다. 실제로 한 소프트웨어 회사는 과장된 AI 마케팅으로 초기에는 많은 고객을 유치했지만, 실제 성능이 기대에 못 미치자 대량 이탈이 발생했습니다. 소셜 미디어와 업계 커뮤니티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확산되면서, 신규 고객 획득이 80% 이상 감소했습니다.
법적 리스크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AI 워싱으로 인한 집단 소송이 제기되고 있고, SEC는 AI 관련 허위 광고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공정거래위원회가 AI 표시 광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린워싱처럼 AI 워싱도 곧 강력한 규제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https://naver.me/FZ8fi4EG
마지막으로, 사회적 비용도 고려해야 합니다. AI 워싱이 만연하면 진짜 AI 기술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무너집니다. 이는 AI 산업 전체의 발전을 저해하고, 궁극적으로는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킵니다. 개별 기업의 손실을 넘어,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협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도메인 지식과 AI 리터러시의 결합은 진정한 디지털 전환의 필수 조건입니다. 현업 전문가들이 인공지능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충분한 경험과 지식을 축적한 전문가들입니다. 마케팅, 재무, 인사, 영업 등 각 분야에서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깊은 이해와 직관에 AI 리터러시를 결합하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실제 현장에서 어떤 문제가 해결 가능한지, 또 무엇이 AI로 해결하기 어려운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여러분, 재무, 마케팅, 인사 등 현업에서 일하고 있는 문과생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기본적인 AI 기술과 활용법을 이해한다면, 어떤 AI 솔루션이 현실적이고 어떤 솔루션이 단순히 과장된 홍보인지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현업의 전문성과 AI 리터러시가 만나야만, 기업은 벤더의 과장된 약속에 속지 않고 실질적인 혁신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AI는 분명 우리 비즈니스에 혁신을 가져다줄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혁신은 ‘진짜 AI’를 제대로 활용할 때만 가능합니다. 각 부서의 실무자 한 분 한 분에게 당부드립니다. 여러분이 가진 도메인 전문성은 그 자체로 매우 가치 있는 자산입니다. 이제 이 전문성 위에 AI 리터러시를 쌓는다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AI 워싱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대신 여러분의 전문 분야에서 AI가 가져다줄 수 있는 진정한 가능성을 탐색하고 확인하십시오. 공정거래위원회가 그린워싱을 단속하듯이, 이제는 기업 스스로 AI 워싱을 걸러내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그 첫걸음은 바로 여러분과 같은 실무자들이 AI 리터러시를 갖추는 데서 시작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