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9. AI도입 기술부채와 프로세스부채

전기선만 교체할 것인가? 건물 골조 자체를 바꿔버릴 것인가?

by 서지삼

Brownfield 방식 AI 도입의 숨겨진 핵심: 기술부채와 프로세스부채 해결하기


기술부채란 무엇인가 : 조직의 숨겨진 비용

기술부채라는 개념을 처음 들어보시나요? 이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Ward Cunningham이 금융 부채에 비유하여 만든 용어로,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에서 빠른 해결책이나 임시방편을 사용함으로써 향후 발생하게 되는 추가 비용을 의미합니다.

마치 신용카드로 급한 구매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당장은 편리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자가 쌓여 원금보다 훨씬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죠. 기술부채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의 납기를 맞추기 위해 "일단 돌아가게만" 만든 시스템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유지보수 비용, 성능 저하, 확장성 문제 등으로 훨씬 큰 비용을 발생시키게 됩니다.

IBM의 정의에 따르면, 기술부채는 여러 형태로 나타납니다. 아키텍처 부채는 시스템의 기반이 확장성이나 유연성이 부족할 때 발생하며, 레거시 시스템과 모놀리식 아키텍처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코드 부채는 급하게 이루어진 개발과 일관성 없는 코딩 관행에서 비롯되며, 인프라 부채는 구식 배포 프로세스나 비효율적인 파이프라인으로 인해 자동화와 확장이 저해될 때 누적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보안 부채입니다. 팀이 암호화, 인증, 취약점 패치를 소홀히 하여 소프트웨어가 사이버 위협에 노출될 때 발생하는데, 최근 급증하는 사이버 공격을 고려할 때 매우 심각한 위험 요소가 됩니다.


프로세스부채 : 기술부채의 조직 버전

기술부채 개념을 이해했다면, 이제 프로세스부채를 소개할 차례입니다. 프로세스부채는 시간이 지나면서 워크플로에 축적된 비효율성, 낭비, 중복성을 의미합니다.

프로세스부채는 기술부채와 매우 유사한 패턴을 보입니다.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시방편적인 해결책을 적용하거나, 지속적인 프로세스 개선에 대한 의지가 부족할 때 발생합니다. 마치 "일단 이렇게 하자"고 시작한 업무 방식이 관성으로 계속 이어지면서 점점 더 복잡하고 비효율적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프로세스부채는 AI 도입의 성공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했습니다. PwC의 2024년 펄스 서베이에서 경영진의 84%가 새로운 기술로부터 측정 가능한 가치를 달성하는 것이 도전과제라고 답했는데, 이는 단순히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프로세스부채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 사례를 살펴보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습니다. 한 Fortune 50 소비재 기업의 경우, 인사, 조달, 공급망, 재무 등 여러 기능과 상업, 영업, 마케팅, 가격 책정 등 여러 사업 영역에서 보고서와 분석 업무가 수동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무려 10만 개 이상의 보고서가 생산되고 있었고, 전체 시간의 70%가 데이터 수집, 분석, 보고서 작성에 소요되었습니다. 각각의 보고서는 고유한 비즈니스 요구를 해결하려는 선의의 노력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기술부채뿐만 아니라 엄청난 프로세스 복잡성을 만들어냈습니다.


핵심 발견: 기술부채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통찰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프런트오피스부터 미들오피스, 백오피스에 이르는 전 영역에서 수백 개 기업과 함께 기술 기반 디지털 혁신을 진행해온 전문가들이 내린 결론이 있습니다. 단순히 기술부채만 관리하려는 접근법은 종종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며, 결과적으로 불완전한 노력에 그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낡은 건물에서 전기 배선만 새로 교체하고 "리모델링을 완료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겉으로는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구조적 문제나 배관, 단열 등의 다른 요소들은 여전히 문제를 일으킬 수 있죠. 마찬가지로 아무리 최신 기술로 시스템을 개선해도, 구식이고 기능적으로 고립되어 있으며 고객과 단절된 업무 방식이라는 프로세스부채를 해결하지 않으면 AI와 같은 혁신 기술의 엄청난 잠재력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발견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수많은 조직이 "AI 도입"에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도 기대했던 성과를 얻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기술적으로는 완벽한 AI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그 시스템이 작동해야 하는 업무 프로세스 자체가 20년 전 방식 그대로라면, 결과는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기존 조직이 AI 도입에 어려움을 겪는 진짜 이유

이제 왜 기존 조직에서 AI 도입이 어려운지 명확해집니다. 구도심 재개발이 어려운 이유와 정확히 같은 구조입니다.

첫째, 기술부채가 AI 통합을 방해합니다. 10년 전에 만든 레거시 시스템과 최신 AI 기술을 연결하려면 복잡한 통합 작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기존 시스템의 구조가 복잡하고 문서화가 부족해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마치 을지로의 오래된 건물에 최신 스마트 기술을 설치하려는데, 건물 내부 배선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과 같습니다.

둘째, 프로세스부채가 AI의 효과를 제한합니다. AI를 도입해도 기존의 비효율적인 업무 프로세스 위에 얹어지기 때문에 기대했던 효과를 얻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승인 단계가 10단계나 되는 비효율적인 결재 시스템에 AI를 도입한다고 해서 갑자기 효율적이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AI가 처리한 결과를 다시 복잡한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더 복잡해질 수도 있죠.

셋째, 부채의 이자 부담이 AI 투자 여력을 줄입니다. 기존 시스템을 유지보수하는 데만 상당한 비용과 인력이 투입되므로, 새로운 AI 기술에 투자할 여유가 부족해집니다. IBM의 분석에 따르면, 기술부채가 많은 조직에서는 전체 개발 시간의 상당 부분이 새로운 개발이 아닌 버그 수정과 재작업에 투입됩니다.


Brownfield 방식 AI 도입 : 부채 청산의 절호의 기회

하지만 여기서 관점을 바꿔보면, AI 도입이 오히려 이런 부채를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도심 재개발이 기존 도심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처럼, Brownfield 방식의 AI 도입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기술부채 해결의 기회부터 살펴보겠습니다. AI 도입을 위해서는 데이터 통합과 시스템 연동이 필수적입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레거시 시스템의 구조를 파악하고 개선할 기회가 생깁니다. IBM이 제시하는 생성형 AI 코드 어시스턴트를 활용하면 중복 코드를 식별하고 가독성을 개선하며 고품질 초기 코드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이는 기존 코드의 리팩토링 과정에서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됩니다.

또한 AI 도입을 위해서는 데이터 품질 개선이 필수입니다.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는 AI의 기본 원칙 때문에, 기존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하고 표준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오래된 데이터 구조의 문제점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AI가 선사하는 근본적 기회

그런데 여기서 희망적인 소식이 있습니다. AI의 등장은 조직이 구식 프로세스부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기존 업무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수준을 넘어선 이야기입니다.

AI는 우리가 고객 및 파트너와의 관계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를 촉진합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고객 문의를 어떻게 더 빨리 처리할 것인가"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고객이 문의할 필요 자체를 어떻게 없앨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AI가 고객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서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면, 기존의 "문의 접수 → 분류 → 담당자 배정 → 답변 → 고객 확인"이라는 복잡한 프로세스 자체가 불필요해지는 것이죠.

더 나은 점은 이제 AI를 비롯한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여 이러한 근본적인 프로세스를 완전히 재설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기존 프로세스에 AI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AI의 가능성을 전제로 업무 방식 자체를 '혁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Brownfield 방식 AI 도입은 단순히 "기존 건물에 새로운 시설을 추가하는" 수준을 넘어서 "건물의 용도와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기회가 됩니다. 기술부채와 프로세스부채를 동시에 해결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조직 역량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부채를 자산으로 바꾸는 3단계 전략

이제 구체적으로 어떻게 Brownfield 방식 AI 도입을 통해 부채를 해결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단계 : 부채 현황 파악하기

AI 도입에 앞서 우리 조직의 기술부채와 프로세스부채 현황을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이는 마치 구도심 재개발 전에 기존 건물과 인프라의 상태를 정밀 진단하는 것과 같습니다.

기술부채 진단에서는 레거시 시스템의 구조, 중복된 기능, 보안 취약점, 성능 병목 지점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합니다.

프로세스부채 진단에서는 현재의 업무 프로세스를 전체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중복된 업무, 불필요한 승인 단계, 비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경로 등을 식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프로세스가 생겨났는지 그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2단계 : AI 도입과 부채 해결을 동시에 진행하기

부채 현황을 파악했다면, AI 도입 계획과 부채 해결 계획을 통합적으로 수립해야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AI 도입을 위한 작업이 자연스럽게 부채 해결로 이어지도록 설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고객 서비스 AI를 도입한다면 기존의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하고 통합하는 과정에서 데이터 중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또한 AI 챗봇이 처리할 수 있는 업무와 인간이 처리해야 할 업무를 구분하면서 자연스럽게 업무 프로세스를 최적화할 수 있죠.

Shopify의 사례처럼 개발 사이클의 25%를 기술부채 해결에 할당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AI 도입 프로젝트에서도 전체 시간의 일정 비율을 부채 해결에 할당한다면, 지속 가능한 AI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3단계 : 새로운 부채 발생 방지하기

AI 시스템을 도입한 후에는 새로운 형태의 부채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AI도 결국 소프트웨어이므로 적절한 관리 없이는 새로운 기술부채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IBM이 경고하는 것처럼, AI 코드 어시스턴트의 출력물이 적절한 검토 없이 수용될 경우 오히려 기술부채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AI가 생성한 코드가 불일치를 초래하거나 불필요한 의존성을 만들어 나중에 리팩토링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개선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기적인 AI 시스템 성능 검토, 사용자 피드백 수집, 프로세스 효율성 측정 등을 통해 새로운 부채가 쌓이지 않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문과생 관리자를 위한 실무 조언

마지막으로, 기술적 배경이 없는 관리자분들을 위한 실무 조언을 드리겠습니다.

기술부채와 프로세스부채라는 개념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핵심은 간단합니다. 우리 조직에 쌓인 "비효율성"을 AI 도입 과정에서 함께 해결하자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적 전문성보다는 현업에 대한 깊은 이해가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가진 업무 경험과 조직에 대한 이해가 바로 부채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핵심 역량입니다. "왜 이 업무가 이렇게 복잡한가?", "이 과정이 정말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통찰력이야말로 Brownfield 방식 AI 도입의 성공을 좌우하는 요소입니다.

특히 프로세스부채의 경우, 현업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경험이 있는 분들이 오히려 더 잘 식별할 수 있습니다.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그냥 넘어갔던 것들", "항상 불편했지만 바꾸기 어려워 보였던 것들"이 바로 프로세스부채의 징후입니다.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본 AI 도입

결국 Brownfield 방식의 AI 도입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추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직에 쌓인 오래된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동시에 미래를 준비하는 종합적인 혁신 과정입니다.

구도심 재개발이 기존 도심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것처럼, AI 도입도 기존 조직의 부채를 해결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받아들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기술부채와 프로세스부채를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는 관점에서 AI 도입을 바라본다면, 여러분의 조직도 성공적인 AI 전환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그 변화를 우리 조직의 발전 동력으로 만들어나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8. AI신도시 건설 vs AI구도심 재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