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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AI폭탄선언 "그거 진짜 우리 기술 맞아?"

기술 독립과 글로벌 협력 사이에서 찾는 소버린 AI의 길

by 서지삼

소버린 AI를 둘러싼 한국 기업들의 치열한 논쟁

한국의 인공지능 업계에 예상치 못한 뜨거운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네이버클라우드 김유원 대표가 "외국 기술을 가져와 한국 브랜드만 붙인다고 소버린 AI(인공지능 주권)가 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며,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고 속도를 올리는 KT의 전략에 강력한 의문을 제기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두 기업 간의 자존심 대결이 아니었습니다. 그 뒤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우리가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반드시 답해야 하는 중요한 질문이 숨어 있었습니다. 즉, 독자적인 기술력과 주권 확보가 최우선 목표라면 글로벌 기업과 협력하며 달성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반드시 모든 것을 우리 힘으로 구축해야 하는 것인지 하는 근본적 고민이었습니다. https://www.mk.co.kr/economy/view.php?sc=50000001&year=2025&no=284772


소버린 AI의 기본 개념과 각국의 다양한 추진 전략

'소버린 AI'라는 개념은 바로 여기서 출발합니다. 인공지능 기술의 필수 자원인 데이터부터 막대한 연산력을 감당할 인프라,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전문 인력, 그리고 국가가 직접 주도하는 기술혁신까지 모든 핵심 요소를 자국의 통제 아래 두고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입니다. 유럽연합(EU)이 강력한 데이터 규제인 GDPR을 통해 데이터 주권을 확보하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AI 전용 GPU 수만 대를 확보하며 인프라 자립을 추구하는 모습이 대표적입니다. 한국 역시 AI 전문가 1만 명 육성이라는 국가적 인재 프로젝트와 더불어, 100조 원 규모의 투자를 통해 독자적 파운데이션 모델 구축에 나서고 있는 것도 이러한 흐름의 일환입니다. 이와 더불어 AI가 국방, 금융 등 핵심 분야로 확대되면서, AI 기술에 대한 국가적 안보 관리의 중요성 역시 빠르게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의 상반된 소버린 AI 전략

각 기업의 전략도 제각각입니다. 네이버는 자체 기술인 HyperCLOVA X를 오픈소스로 공개하며 독자적이면서도 개방적인 '개방형 소버린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반면 KT는 글로벌 기술기업 마이크로소프트의 Azure 인프라를 활용해 MI-X 모델을 빠르게 시장에 선보이면서 글로벌 생태계와의 긴밀한 연결을 택했습니다. SK텔레콤은 AI 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과 협력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통합 생태계를 구축하는 새로운 접근을 시도 중입니다. 결국 이는 한국 사회가 AI 주권과 글로벌 협력이라는 두 가치 사이에서 어디에 더 큰 비중을 둘지에 대한 중대한 국가적 고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합의되지 않은 소버린 AI의 정의와 기준

국내 AI 업계에서 벌어진 논쟁을 보면 '소버린 AI'라는 용어 자체에 명확하고 합의된 정의가 없다는 점도 드러납니다. 네이버와 KT가 각자의 전략을 놓고 벌인 설전은 단지 기술적 접근의 차이를 넘어, '소버린'이라는 개념에 대한 근본적 시각차를 보여줍니다. 네이버는 소버린 AI의 핵심을 기술의 내재화와 독자적 개발 역량에 두는 반면, KT는 기술 출처와 상관없이 국내 데이터 상주와 법적 통제력을 강조하며 현실적 주권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즉, 누구도 소버린 AI에 대한 단일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기업과 정부가 처한 입장과 맥락에 따라 각기 다른 해석과 활용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소버린 AI가 여전히 유동적이고 진화 중인 개념이며, 국가적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정의를 정립해 나가야 할 과제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글로벌 사례가 보여주는 소버린 AI의 모호한 경계

이와 관련하여 소버린 AI를 둘러싼 글로벌 시장의 논쟁도 치열합니다. UAE는 국가 차원에서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팔콘(Falcon)'이라는 AI 모델을 성공적으로 개발했지만, 실제 학습 과정에서는 미국 기업 엔비디아의 GPU와 아마존웹서비스(AWS)의 클라우드 인프라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프랑스 역시 엔비디아의 기술과 투자를 받아 자국 문화와 언어에 특화된 AI 모델 '르 챗(Le Chat)'을 개발했습니다. 이에 대해 AI 업계에서는 "과연 이러한 모델들이 진정한 의미의 소버린 AI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기술의 원산지가 외국이라고 하더라도, 운영 및 데이터 통제권이 국가에 있다면 주권은 충분히 확보되었다는 주장과, 핵심 기술이 외국에 의존하는 한 진정한 기술적 독립과 주권 확보는 어렵다는 의견이 여전히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소버린 AI 전략 수립 과정에서 기술적 독립과 글로벌 협력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일이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AI 주권 문제는 '기술의 원산지'냐, '데이터의 통제권'이냐는 이분법적 논쟁을 넘어서, 기획 단계부터 다층적이고 균형 있는 전략 설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형 소버린 AI가 나아가야 할 방향

결국 한국에게 필요한 것은 극단적인 폐쇄적 독립주의나 무비판적인 글로벌 기술 종속 중 어느 한쪽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독립성과 개방성을 균형 있게 조화시킨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일입니다. 소버린 AI의 개념이 아직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현 시점에서, 한국은 자신만의 독특한 AI 주권 모델을 설계하고 실행해나갈 기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 개발의 문제를 넘어, 국가 전략과 산업 정책, 그리고 글로벌 협력의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할 과제입니다. 바로 이 지점이 한국이 AI 시대를 주도적으로 열어갈 수 있는 진정한 출발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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