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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1인당 앱 100개 개발을 요구한 기업의 속내

소프트뱅크 '100개 앱 실험'이 보여준 조직 내 AI 혁신 방식

by 서지삼

한눈에 보기 AI를 제품에 탑재하는 것을 넘어, 조직 구성원 모두가 일상 업무에서 AI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AI 내재화'가 진정한 경쟁력이 되고 있습니다. 소프트뱅크의 '1인당 100개 앱 개발' 의무화는 수요자 중심의 혁신적 접근법으로, 한국 기업들도 조직 차원의 AI 활용 문화 구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새로운 경쟁의 축, 'AI 내재화'

AI 도입의 실질적 효과를 보여주는 글로벌 데이터들이 기업들의 전략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세계적 컨설팅그룹 맥킨지&컴퍼니가 매년 100개국 이상 글로벌 기업 임직원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하는 'The state of AI' 올해 보고서에 따르면, AI를 도입한 기업 중 각 업무 분야별로 최대 61%가 비용 절감 효과를 경험했으며, 최대 47%의 기업이 매출 증가 효과를 체감했습니다. 매출 증가 효과는 마케팅·영업, 서비스 운영, 제품 개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부문에서 두드러졌고, 비용 절감은 공급망 재고·관리, HR 등에서 효과를 거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미국 워싱턴DC에 본부를 둔 국제데이터센터기관(IDCA)이 올해 1분기 글로벌 주요 기업 등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간한 '글로벌 AI 리포트 2025'에서도 기업의 87%가 AI를 사업계획의 최우선 과제로 선정했으며, 이미 78%의 기업이 AI를 실제 업무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업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2%의 전문가가 AI를 디지털 경제의 핵심 게임체인저로 평가했습니다.


이러한 압도적 데이터 속에서 주목할 점은 AI가 단순한 기술 트렌드를 넘어 기업 경영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잡으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AI 도입 전략이 근본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AI를 제품에 단순히 탑재하는 것에 만족했다면, 이제는 조직 내부에서 AI를 일상적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AI 내재화(AI를 조직 문화와 업무 프로세스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것)' 전략이 진정한 경쟁우위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미야카와 준이치 소프트뱅크 사장의 "누가 얼마나 AI를 쓸 수 있는가가 앞으로 기업 격차를 가른다"는 발언은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AI 활용 능력이 곧 기업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위기의식이 전사적 혁신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AI DNA'를 심다 : 한국 기업들의 총력전

한국의 주요 기업들은 AI를 조직 내부에 깊숙이 뿌리내리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사내 전반에 AI 활용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지난 5월 'AI 생산성 혁신그룹'을 신설했습니다. 단순한 교육을 넘어 실행력 강화를 위한 'AI Crew' 제도를 운영하며, 자체 생성형 AI '삼성 가우스2'로 외부 의존도를 줄이고 내부 역량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계열사 이노션은 생성형 AI 기반 자체 솔루션 구축을 위해 'AI솔루션팀'을 신설하여 마케팅 전략 수립과 캠페인 성과 예측에 AI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SK그룹은 AI를 그룹 미래 성장 전략의 중심축으로 설정하고, 그룹 비즈니스 전반에 'AI DNA'를 접목하는 체질 개선에 나섰습니다. 아마존웹서비스(AWS)와 함께 울산에 건립 중인 국내 최대 규모의 AI 전용 데이터센터는 SK텔레콤, SK브로드밴드, SK하이닉스, SK가스, SK멀티유틸리티 등 다양한 계열사가 참여하는 그룹 차원의 AI 생태계 구축 프로젝트입니다.


현대차그룹은 제조 현장에 비전 AI 품질 검사 시스템과 로봇 자동화 공정을 단계적으로 도입하여 품질과 생산성을 동시에 향상시키고 있습니다. 현대제철은 에스투더블유(S2W)와 협력하여 생성형 AI 서비스 사내 지식정보 플랫폼 'HIP(Hyundai-steel Intelligence Platform)'를 도입, 설비, 엔지니어링, 품질 등 9가지 도메인에서 회사 규정과 업무 정보를 신속하게 검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LG그룹은 AI 싱크탱크 LG AI연구원을 중심으로 자체 멀티모달 AI 모델 '엑사원' 시리즈를 개발하며 생성형 AI를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기술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LG디스플레이의 사내 품질 문서를 활용한 생성형 AI 기반 불량 지식 탐색 플랫폼 개발은 기업 내부 데이터를 AI로 활용하는 모범 사례로 평가됩니다.


포스코그룹은 특히 주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포스코는 2023년 9월부터 사내 지식정보와 GPT 언어모델을 결합한 'P-GPT(Private GPT)'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반-GPT, 기업시민-GPT, 공정거래-GPT 등 3가지 유형으로 구성되어 임직원들이 업무용 소프트웨어 사용법, 사내 규정, 해외 현지법인과의 번역 등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포스코 디지털혁신실과 인재창조원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챗GPT 활용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며, 업무 생산성 향상을 위한 구체적인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습니다.


계열사 포스코DX는 2024년 12월부터 전사 직원 2,200여 명을 대상으로 AI3의 '웍스AI'를 활용한 AI 비서 서비스를 도입했습니다. 신입사원이 선임에게 질문하지 않고도 AI 챗봇을 통해 사내 규정을 확인할 수 있으며, 실시간 정보검색과 데이터 시각화까지 가능합니다. 이는 단순히 AI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넘어 조직 내 소통 방식과 업무 프로세스 자체를 혁신하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 기업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AI 문화 구축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일본에서는 더욱 파격적인 접근법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AI 활용을 '선택'이 아닌 '의무'로 규정한 소프트뱅크의 실험입니다.


'AI는 의무다' : 소프트뱅크의 파격 실험

소프트뱅크그룹 산하 라인야후와 소프트뱅크가 전 직원을 대상으로 AI 활용을 의무화한 것은 일본 기업에서 AI 활용을 전사적 의무로 규정한 이례적인 사례입니다. 이는 AI 에이전트 시대에 대비해 사내 활용 모델과 운영 노하우를 조기에 축적하려는 전략적 판단에서 비롯되었습니다.https://www.sedaily.com/NewsView/2GVC2EHTD6


라인야후는 조사·검색, 자료 작성, 사내 회의 등 전체 업무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3가지 분야에 AI를 우선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AI를 통한 시장 분석과 사내 문의 응답을 원칙적으로 자동화하고, 회의 전에는 AI가 이전 회의록을 기반으로 의제를 정리하도록 하며, 회의록 작성 역시 AI로 대체합니다. AI 없이 직접 회의록을 작성하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이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


활용 플랫폼으로는 미국 오픈AI의 '챗GPT'(법인용) 등 3종의 주요 AI가 도입되며, 라인야후는 2027년까지 사내 업무 생산성을 2024년 대비 2배로 끌어올린다는 구체적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반복적·정형화된 업무에 투입되는 시간을 줄이고, 대면 영업이나 AI 개발 등 창의성을 요하는 업무에 집중하겠다는 구상입니다.


이러한 AI 의무화 정책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소프트뱅크가 전 직원에게 부여한 '1인당 100개 AI 앱 개발' 과제입니다. 이는 단순한 생산성 향상을 넘어 조직 혁신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어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합니다.


'1인당 100개 앱' : 소프트뱅크 혁신의 4차원 방정식

소프트뱅크가 전 직원에게 1인당 AI 애플리케이션 100개 개발을 요구한 것은 기업 내 소프트웨어 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신적 접근법입니다. 이 방식은 4개 차원에서 체계적인 혁신 메커니즘을 작동시킵니다.


1차원 : 즉시 효과 (Direct Impact)

수요자 중심의 직접적 혜택입니다.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당사자가 직접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내는 상향식 방식으로 실무진의 진짜 니즈를 반영한 실용적 애플리케이션이 개발됩니다. 기업 내부에서만 사용되므로 외부 유출이나 보안 침해 우려도 현저히 낮습니다. 실제 업무에서 효과가 입증된 앱은 자연스럽게 동료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조직 전체로 확산됩니다.


2차원 : 전략적 가치 (Strategic Value)

벤처캐피털의 포트폴리오 투자 이론이 적용됩니다. 100개 앱은 모두 저비용의 '미래 옵션'으로 작동하며, 개별 앱 개발 비용은 낮지만 100개 중 단 1-2개만 대박이 나도 전체 투자 대비 압도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이 실패하더라도 소수의 성공작이 전체 ROI를 견인하는 구조로, 위험은 분산시키고 혁신 잠재력은 극대화합니다.


3차원 : 조직 변화 (Organizational Transformation)

강력한 실험 문화와 지식 전이 혁신이 일어납니다. 100개 중 90개가 '빠른 실패'를 해도 문제없다는 전제는 조직에 안전한 실험 환경을 조성하고, 직원들이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길 수 있게 합니다. 개발된 앱들은 '코딩된 업무 매뉴얼' 역할을 하여 신입 직원의 온보딩 기간을 크게 단축시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이 IT 부서의 전유물에서 모든 직원이 참여하는 민주화된 활동으로 전환됩니다.


4차원 : 경제적 효과 (Economic Impact)

무형자산 축적과 비용 구조 혁신입니다. 직원들이 만든 수백 개의 미니앱은 회사의 지식 자본으로 축적되어 장부상 가치는 물론 M&A 시 프리미엄 요소로도 작용합니다. 외부 SaaS 구매 대신 직접 개발함으로써 라이선스 비용을 절감하고 100% 맞춤화된 솔루션을 얻습니다. 내부에서 검증된 유용한 앱은 향후 시장 출시 가능성으로 이어져 새로운 수익원이 될 수 있습니다.


이 4차원이 상호 작용하면서 단순한 생산성 도구 개발을 넘어 조직 전체의 혁신 역량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체계적 메커니즘이 완성됩니다.


AI를 쓰는 조직이 살아남는다

성공적인 AI 전략의 핵심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조직 내에서 AI를 얼마나 자연스럽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제품에 AI를 탑재하는 것은 시작일 뿐, 진정한 경쟁력은 조직 구성원들이 AI를 일상적인 업무 도구로 활용하여 지속적인 혁신을 만들어낼 때 생겨납니다.


소프트뱅크의 '1인당 100개 앱 개발' 정책은 이러한 AI 내재화의 극단적이지만 효과적인 사례로, 다른 기업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중요한 것은 AI 도입의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며, 기술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AI 활용 전략이 결국 지속가능한 경쟁우위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AI 혁명의 성패는 결국 기업이 얼마나 빠르게 '모든 직원이 AI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조직'으로 변화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 각 기업들은 자신만의 AI 내재화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길 때가 왔습니다.


하지만 이론적 이해를 넘어 실제 실행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더 구체적인 질문들에 답을 찾아야 합니다. '실패를 용인하고 빠른 실험을 장려하는 문화는 어떻게 만들 것인가?', '우리 조직의 가장 시급한 문제를 해결해 줄 AI 앱은 무엇인가?', '직원들이 AI 도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동기부여 체계는 무엇인가?', '1년 후 우리 조직의 AI 역량을 어떤 지표로 측정할 것인가?' 같은 실질적인 문제들 말입니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각 기업만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진정한 AI 내재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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