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길 28 , 호주

시드니 3 - 시간

by 지구 소풍 이정희

1. 반성과 공존의 시간 시드니 박물관

시드니에 첫 도착 범선 모형들

시드니 박물관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초대 총독인 필립 총독의 생가 터에 지어진 박물관으로 호주의 도시를 형성한 사람들과 사건에 대한 역사를 전시한 곳이다.

호주 최초 정부 청사였던 이 건물은 1845년에 철거되었다가 1983년 고고학 발굴 중에 다시 알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호주 건국의 여러 유물이 발견되었다.

호주 식민지 정부의 첫 57년 동안의 진원지로서, 이 땅의 주인인 원주민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 박물관은 그 운명적인 발굴 중에 발견된 역사적 물품을 보관하고 있으며, 거의 200년 전 시드니에서 일어난 호주 개척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1788년 바다에서 8개월 항해를 거듭하던 영국 1함대가 영국을 위한 새로운 식민지를 세우기 위해 약 1,500명을 수송하여 상륙했고 이때의 함선모형을 축소하여 전시하고 있었다.


규모는 작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원주민의 시각을 담은 영상 전시였다. 검은 화면 위로 바다, 숲, 얼굴, 그리고 불꽃이 교차했다. 한 여성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은 우리 조상의 땅이었다. 그들이 오기 전에도 우리는 이곳에서 노래하고, 아이를 낳고, 불을 피웠다.”

기록이 남기지 못한 진실, 혹은 지워진 목소리의 울림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여느 식민자 중심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원주민이 겪은 변화, 상실, 저항, 정체성 회복 등이 어느 정도 반영 되어 많이 놀랐다.

그간 시드니 원주민들의 역사적 진실과 그들의 목소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아 놀랐다.


박물관 한편에는 ‘History Reflected’라는 코너가 있었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신문, 행정 문서, 여성 노동자의 사진 등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처음엔 건조한 자료로 보였지만, 들여다볼수록 그 속에는 인간의 삶이 있었다. 정착민의 일기 속에 스며 있는 향수, 그리고 여전히 언어를 빼앗긴 채 살아가야 했던 원주민의 침묵.
모두가 이 땅의 역사였고, 그 역사는 승리의 서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한 바퀴를 돌아 나올 즈음, 다시 투명한 바닥 아래의 유적이 눈에 들어왔다. 돌담과 벽의 흔적, 건물의 기초만 남은 공간이었지만, 그 위로는 현대의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과거의 총독 관저였던 폐허 위에서 현재가 서 있는 그 장면은 강렬했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오늘이라는 시간도 결국, 누군가의 기억과 희생 위에 세워진 건 아닐까. 한강의 소설들이 생각났다.

호주의 과거와 현재에도 주인인 원주민들의 문화적 힘이 있었기에 지금의 호주가 있음을 고백하고, 이제라도 그들과의 공존을 회복하려는 솔직한 시드니 시민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호주 정부 깃발 옆에 나란히 걸린 원주민 깃발을 여러 곳에서 보았다. 원주민을 탄압한 백호주의의 폐습을 인정하는 데 걸린 인내의 몇 백 년, 참 길었던 시간을 생각했다.


'사라진 원주민들은 말이 없지만, 역사는 기록되고 감출 수 없는 진실의 힘!'


오늘 낮 박물관 옆 공원에서 열린 팔레스타인을 위한 집회와 여러 가지 비교되었다. 호주의 짧고도 긴 역사와 비교되는 정말 오래되고 심각한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하여.


'팔레스타인의 주인은 누구인가?' 아니 함께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2. 상상이 현실인 오페라하우스

시드니는 하늘이 푸르고 공기가 맑은 데다 청량한 바닷바람이 부는 날이 대부분이어서 사진에서 보아온 상쾌함을 매일 느낄 수 있다.

오페라하우스가 위치한 위치는 원주민들이 만남의 장소라 부르던 곳이다.

멀리서는 잘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 보면 보는 각도에 따라 제각각 달라 보이는 것이 오페라하우스이다. 낮과 밤의 모습도 더 확연하다. 보면 볼수록 느끼는 그 임팩트가 대단하다.


조개껍질처럼 생긴 이 건물의 모양은 국제 디자인 공모전의 우승 작가인 덴마크의 건축가 비외른 우촌이 오렌지 껍질을 벗기던 도중에 떠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분적으로 원형의 모양인 바깥 표면은 신대륙 시드니를 항해하는 범선의 소함대를 떠올리게 한다.


1959년 착공하여 1973년에 완공되었다. 완공이 될 때까지 4년이 걸릴 거라고 예상했지만, 실제로 14년이 걸렸다고 한다.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는 오페라 하우스의 건축이 처음 해보는 공법이기 때문이다.

특히 상상 속의 디자인인 지붕의 건축구조 공법이 까다롭고, 실제 제작을 해보지 않았던 힘든 구조라고 한다. 거대한 콘크리트 골조를 부드럽게 갈아 그대로 노출시키고 사방이 외부에 개방되어 있어 시야가 넓어지고 웅장해 보였다.


곡선의 외벽을 특수 타일로 만드는 데만 3년이 걸렸는데,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라고 한다. 건축비와 제작 시간이 엄청 많이 들며 논란이 있었지만 호주인들은 세계 최고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완성시켰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호주의 문화적 자부심이 되어주는 수준 높은 공연장인 동시에, 호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시드니 최고 관광지로 공연이 없을 때에는 건물 내부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인기가 아주 많아 엄청난 수입을 올리고 있다.

가이드 투어는 주요 나라 언어로 5분마다 시작할 정도로 사람이 많은데 한국어 안내원 투어는 30분마다 40~50명씩, 30분 동안 진행하였다.

호주 교포 2세인 전문 안내인에게 공연장 내부 구조 설명을 들으며 시대를 앞서간 엄청난 스케일에 모두들 놀라워했다.


오래전 오페라 하우스의 ‘건축 투어(Architectural Tour)’에 예약했다. 세상의 가장 독특한 건축물 속을 직접 걸어보는 일은, 마치 거대한 미로 속을 걷는 듯한 경험이었다. 한국인 가이드는 우리를 맞으며 친절하고 단호하게 여러 설명을 했다.

“이곳은 단지 공연장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꿈의 껍질입니다.”


우리가 처음 들어선 곳은 거대한 콘크리트 껍질 아래의 구조 공간이었다. 바깥에서 볼 때는 가볍게 떠 있는 조개 같았지만, 그 내부는 엄청난 철근과 콘크리트의 숲이었다. 곡선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수천 개의 삼각형 조각이 이어졌고, 각 조각은 1970년대 기술로는 거의 불가능한 방식으로 맞물려 있다고 한다.


계단을 올라가며 손끝으로 부드러운 벽을 쓸었다. 타일 하나하나가 햇살을 반사하며 미세한 반짝임을 냈다. 그 하얀 타일들은 단순한 흰색이 아니었다.

멀리서 보면 새하얗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아이보리와 크림색이 섞여 있었다. 그 섬세한 차이가 시드니의 강한 햇빛 속에서도 눈부시지 않게, 오히려 부드럽게 빛나도록 계산된 색감이었다. 햇살 아래의 오페라 하우스가 날마다 다른 빛으로 보이는 이유가 바로 그 미묘한 조화 때문이다.


공연장 내부 객석에 앉아 360도 무대 관람이 가능한 구조를 처음 보았다.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과는 전혀 다른 형태라 그저 대단하고 신기하기만 했다. 오페라하우스 콘서트홀 정면 가운데 10,000개의 파이프 오르간의 소리가 궁금하다.

언젠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멋진 공연을 감상하는 나를 상상해 보았다.


가이드는 우리를 공연장 뒤편, 일반인은 들어가기 힘든 구조층으로 안내했다. 그곳은 마치 거대한 심장의 내부 같았다. 음향을 조절하는 벽면의 패널들, 무대 아래로 이어진 리프트 시스템, 수십 미터 높이의 천장 지붕 틈. 그 모든 것이 완벽한 소리를 위해 만들어진 기계적 예술이었다.

“이 건물은 처음엔 불가능한 꿈이라 불렸습니다. 하지만 결국, 사람들의 신념이 이 불가능을 완성했죠.”


햇살이 바다에 부서지고, 그 위로 오페라 하우스의 하얀 곡선이 겹겹이 빛났다. 나는 그 곡선을 바라보다 문득, 한 인간의 인생도 이런 구조로 이루어져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무수한 실패와 계산, 포기와 시작이 맞물려 결국 하나의 형태를 이루는 것이 인생이다.


웃손이 완성하지 못하고 떠난 건축이 시간을 지나 세계적 상징이 되었듯, 우리의 삶 또한 끝내 누군가의 시간 속에서 완성되는 건 아닐까.

펑 뚫린 건물 사이로 더운 바람달려드는 것이 숨을 쉬는 소리 같았다.


매일 일몰 시간이 되면 원주민 예술가들을 기념하는 단편 영화가 외벽에 상영된다고 한다. 50년 전, 새로움에 도전한 오페라 하우스 건축 비화 관한 동영상을 보았다. 지금 생각해도 어려운 선택인데 당시 호주 지도자들의 선구안적 결정이 대단하다.

공연을 보고 나오는 시드니 시민들

땅이 넓고

대자연이 좋아 보였던 호주,

오늘은

공존과 기다림,

새로운 시대를 여는 안목이 대단해서

너무나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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