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길 29, 호주

시드니 4 - 해변

by 지구 소풍 이정희

파도 위의 고요 ― 은퇴 후, 본다이비치에서

24년 8월 말 은퇴 후. 두 달 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 프랑스길 마지막 도착인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끝내지 않고 대서양과 만나는 묵시아와 피스테라까지 걸었다. 그리고 25년 2월 5일 이제 태평양 제대로 바다를 만났다.

시내에서 지하철을 타고 20분 정도 달리자, 창밖으로 본다이역이 보인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5분 정도 달리자 절벽아래로 푸른 수평선이 열렸다.

연중 어느 때나 초승달 모양의 백사장에 파도가 꾸준히 쳐서 수영과 서핑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장소여서 사람들로 붐빈다. 돌고래들도 사람만큼 본다이의 파도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운이 좋으면 함께 서핑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본다이’는 원주민어로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름처럼 파도는 쉼 없이 부딪히며 하얀 포말을 토해냈다. 그 반복의 리듬이 어쩐지 인생의 호흡과 닮아 있었다.

'부서지지만, 또 밀려오고, 사라지는 듯 다시 되돌아오는 것이.'


백사장 중심에 양산을 펴고 앉았다. 햇빛은 눈부시게 쏟아졌고, 바람은 소금기를 머금어 상쾌했다. 해변엔 국적도 언어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누군가는 책을 읽고, 누군가는 잠을 자고, 또 다른 누군가는 파도를 기다렸다. 나는 그저 오랫동안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사람을 바라보며 상상하는 일도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일 중 하나야.’


서핑 강습을 받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수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보드 위에 오른다. 물에 빠져도, 파도에 휩쓸려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의 엉성한 몸짓에 보는 나는 너무 웃기고 재미있었지만, 배우려는 진지함과 집중이 대단하게 보였다. 갓난아기가 처음 걸음을 배우듯, 그들은 파도 위에서 균형을 배워가고 있었다.


그 장면에서 내 은퇴 이후의 모습을 보았다. 직장을 떠나고 이제 6개월, 하루의 리듬을 다시 세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동안 40여 년 학교라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흘러왔는데, 이젠 스스로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서핑 보드 위에서 균형을 잡는 저들처럼, 나 또한 인생의 새로운 물결에서 중심을 배우고 있다.


일이라는 파도가 사라진 자리에서 나는 새로운 삶의 지도와 나침반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파도가 발목을 적시자 자연스레 바다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차가운 물결이 피부에 닿자 온몸이 깜짝 놀랐다.

'아, 맑은 바닷물이 보기보다 참 차고 짜다. 몰골이 말이 아니다. 뭐 어때 아는 사람도 없는데--'


입고 있던 원피스가 금세 젖어 몸에 달라붙었지만, 이상하게 불쾌하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마음껏 젖을 수 있었다.

옷을 입을 채 몸이 흠뻑 젖는다는 건, 어쩌면 다시 살아났다는 신호 같이 묘한 기분이 들었다.

뜨거운 모래 위를 맨발로 걸으며 언덕으로 올랐다. 그곳에는 본다이비치의 상징, 아이스버그 수영장(Icebergs Pool) 이 있었다.

1929년에 지어진 이 해수풀장은 파도와 바다의 경계선에 붙어 있었다.

파도가 높게 칠 때면 바닷물이 수영장 안으로 넘실대며 들어와, 수영하는 사람들은 파도와 함께 흔들린다.


‘얼음처럼 차가운 바다에서 1년 내내 수영한다니, 아이스버거라는 이름이 딱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명소로 유명한 이곳은 이제는 수영하는 사람보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더 많았다. 바다 쪽 난간에서 셀카를 찍고는, 금세 돌아서는 관광객들 모습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몇몇 현지인은 여전히 수영복 차림으로 파도 속을 헤엄쳤다.

그들의 어깨와 팔에는 햇살이 닿아 반짝였고, 그 물결은 마치 삶의 단단한 근육처럼 느껴졌다.


한참을 난간에 기대 서 있었다. 파도에 부딪히는 물소리와 함성을 지르는 사람들, 수영장 벽에 부서지는 물보라,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갈매기 울음소리가 겹쳐졌다.

앞으로의 삶은 끊임없이 부딪히는 세상 속에서도 내가 머물 수 있는 영역을 찾는 일이다. 그게 나에게 남은 인생의 과제이다.


수영장 안으로 들어가 보려 했지만, 발걸음을 멈췄다. 샤워장과 수영장 입장료도 비쌌다.

젖은 머리칼로 웃으며 물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이대로 충분하다고 느꼈다.


젊을 땐 늘 안으로 들어가야만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바깥에서 지켜보는 일에도 충분한 온기가 있다는 걸 안다.

삶이란 중심이 아니어도, 바라보는 시선만으로도 깊어질 수 있다는 걸 알아간다.


바람이 불어와 내 원피스 자락을 살짝 들어 올렸다. 모자가 들썩인다. 바다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멀리서 커피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본다이의 새벽엔 많은 서퍼들이 일출을 마주하며 커피를 마신다고 했다.


“그 차가운 바다의 붉은 기운을 마신 후,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기분은 어떤 걸까?”


그 상상만으로도 본다이 비치의 사람들이 건강하고 멋지게 보여 부러워졌다. 언덕 밑 모래밭에 다시 앉았다.

에메랄드빛 바다, 하얀 포말, 솜사탕 같은 구름이 수 놓인 파란 하늘이 눈부시게 빛났다. 바다과 하늘의 색이 닮았다.


정말 많이 미소를 지었다. 실성한 사람처럼. 세상 한복판에서, 아무도 모르는 바닷가의 한 점으로 앉아 아무 계획도, 의무도 없이 그저 ‘지금’을 살아보고 있다. 그것이 이렇게 벅차고 좋을 줄이야.

“호주가 좋다. 시드니가 참 좋다. 본다이 비치가 정말 좋다.”

혼잣말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본다이비치의 파도는 오후가 되자 더 세게 몰려들고 부서지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가서 살아내는 일처럼. 하지만 부서지는 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시 돌아올 준비를 하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나의 시간도 그렇다. 퇴직으로 멈춘 듯 보였던 삶이, 어쩌면 새로운 물결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인생도, 다시 시작되고 있는 거야!”


오랫동안 눈을 감고 뜨고 싶지 않았다. 햇살과 바람과 소금기가 한데 섞여 나를 감쌌다.

그 순간, 나는 세상 어느 곳보다 깊은 고요 속에 백사장에 앉아있어도 창공을 나는 듯 자유로웠다. 그렇게 또 한 번 나를 배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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