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5 - 안목
시드니 대학에 위치한 차우 차트 윙 박물관을 방문했다. 호주의 최고 명문 시드니 대학도, 미라가 전시되어 있는 차우 차트 윙 박물관도 함께 보기 위해서이다.
호주 시드니 대학교(The University of Sydney)는 1850년에 세워진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학생 수가 66,000명이나 되는 규모가 큰 대학이다.
넓은 잔디 위로 고딕풍의 석조 건물이 늘어서 있고, 정문을 지나면 오래된 벽돌 냄새와 젊은 학문이 뒤섞인 공기가 맞아준다. 캠퍼스 안쪽, 정문 옆에 자리한 차우 차트 윙 박물관(Chau Chak Wing Museum)은 그 분위기에 현대적인 숨결을 더한다.
2015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중국계 호주 사업가 차우 차트 윙이 기부해 세워졌고, 그의 이름을 그대로 따랐다.
유리와 금속이 교차하는 외관은 마치 지식의 상자처럼 단단하고 투명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 중에 오래된 흙냄새와 전시 조명의 따뜻한 빛이 어우러졌다. 이곳에는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자연사 표본부터, 시드니 대학이 직접 발굴에 참여한 고대 로마와 그리스, 이집트, 키프로스의 유물들이 빼곡히 전시되어 있다. 마치 인류의 기억을 한데 모아 시간의 지도 위에 펼쳐놓은 듯했다.
입구 한편에는 호주 원주민의 시선으로 국가의 역사를 다시 바라보는 전시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호주 어디를 가도 원주민의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그들의 상처와 전통을 잊지 않으려는 이 나라의 의지가 박물관의 공기 속에도 묻어 있었다. 유물의 빛보다 더 깊게 남는 건, 그들의 이야기였다.
전시실을 돌아보며 눈에 띈 건 아시아 문화의 비중이었다. 기증자의 영향인지, 중국의 도자기와 서화, 불교 조각들이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설명문을 읽으며 천천히 걸어가자, 주변은 이미 중국어가 자연스러운 공간이 되어 있었다.
영어 해설을 들으며 필기하는 중국 학생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집중한 표정 속에는 배움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다. 언뜻 내 주변의 한국 학부모들과 지인들이 떠올랐다. 자녀를 위해 명문대 투어를 다니는 풍경 — 그 열망의 결이 나라를 달리해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시드니 대학 교정 안에서는 정작 호주 학생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시험 기간이라 그런지, 강의실 창가에만 가끔 머리를 숙인 뒷모습이 비쳤다. 대신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이곳저곳을 돌며 사진을 찍고, 아이들은 잔디밭을 뛰어다녔다. 학문의 전당이자 또 하나의 명소로서, 시드니 대학은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호주를 여행하다 보면 곳곳에서 중국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시드니의 세련된 지하철 노선 역시 중국 기업이 건설에 참여했다고 들었다. 거리의 표지판에도, 음식점의 간판에도 붉은 흔적이 스며 있다. 세계 곳곳에서 자국의 존재를 새겨가는 그들의 확장력 앞에서, 세계의 균형이라는 것이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박물관 안으로 시선을 돌리면, 과학 전시관에서는 시드니 대학의 연구 성과들이 소개되고 있었다. 실험 도구의 변천사, 인체 모형, 지질 구조를 보여주는 입체적 전시가 흥미롭게 이어졌다. 단순히 지식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탐구의 과정 자체’를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아이들이 모형 앞에서 질문을 던지고, 해설사가 웃으며 대답하는 모습이 따뜻했다.
시드니의 박물관들은 멜버른처럼 자연사 중심의 전시를 유지하면서도, 원주민과 현대인의 시각을 함께 엮어내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과거와 현재, 서구와 비서구, 과학과 예술이 교차하는 장소. 차우 차트 윙 박물관은 그 경계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돌아 나오는 길, 오후 햇살이 박물관 유리벽에 비쳐 내 얼굴을 비췄다. 그 유리 속에는 낯선 도시를 걷는 여행자 한 사람이 있었다.
아마 이곳을 떠나도 오래도록 기억날 것이다. 인간이 만든 모든 유물보다, ‘배움과 기억의 태도’가 가장 오래 남는 유산임을 이 박물관이 조용히 일러주었기 때문이다. 이 박물관은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자연사 표본과, 호주가 발굴에 참여한 고대 로마, 그리스, 중국, 키프로스의 발자취, 고대 이집트의 무덤 등 유물들과 시드니 대학의 자랑을 체계적으로 전시해 놓았다.
1826년에 설립된 이곳은 방대한 양의 서적, 원고, 미술품, 역사적 문서를 보유하고 있다. 200년 전에 지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그 건물은 조금도 낡아 보이지 않았다.
세월의 풍화를 견디며 여전히 품위를 잃지 않은 모습, 오히려 시간이 그 위에 고운 결을 더해준 듯했다. 처음 마주한 순간, 나는 숨을 잠시 멈췄다. 이토록 아름답고 견고한 도서관이라니. 이번 호주 여행에서 멜버른 도서관과 함께 가장 놀라웠고, 솔직히 가장 부러웠던 공간이었다.
돌아보면, 이곳에는 과거와 현재가 한 자리에 공존하고 있었다. 작가 한강이 말한 것처럼 과거가 현재를 살린다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호주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지금의 선진국 호주를 만든 것은 아마 이런 장기적인 안목과 문화에 대한 투자였을 것이다. 200년 전, 사람들은 도서관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을까. 그 마음이 건축의 단단한 숨결로 남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중후한 현관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세상이 바뀌었다. 웅장한 로비가 한눈에 들어오고, 겹겹의 시간을 통과해 온 듯한 기둥과 천장이 나를 압도했다. 그 중앙에는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고요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빛이 유리 천장을 통해 쏟아지고, 그 빛 아랫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책과 씨름하고 있었다. 낮은 웅성거림조차 지식의 숨결처럼 느껴졌다.
도서실 중앙에는 오래된 시계가 서 있었다. 그 시계는 이 도서관의 심장처럼 고요히, 그러나 묵묵히 흐르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그 안의 사람들은 마치 멈춘 듯 집중해 있었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 펜촉이 종이를 긋는 소리, 그리고 가끔 들려오는 페이지를 덮는 작은 숨결들. 그 모든 소리가 모여 하나의 음악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그 흐름 속에 녹아들었다.
손때가 묻은 나무 책상 앞에 앉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단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도서관 곳곳에는 호주의 풍경화와 역사적 인물의 초상화, 그리고 대학의 수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책과 예술, 연구와 일상이 자연스럽게 섞인 공간. 지식이 단지 머리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삶의 일부로 녹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새로 증축된 신관 건물로 이어지는 복도는 또 다른 세상을 연다.
현대적인 전시 공간과 카페, 서점, 쉼터가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책을 읽다가 잠시 커피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하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이곳은 단순한 도서관이 아니라, 도시의 지적이고 따뜻한 심장이었다.
요즘의 세련된 현대식 도서관들과 비교해도 이곳의 매력은 압도적이다. 화려한 기술이나 장식이 아니라, 세월이 만든 깊이와 온기가 그 안에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 바로 ‘배움의 품격’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문밖으로 나오며 다시 한번 도서관을 돌아봤다. 햇살이 벽돌 벽에 부딪혀 부드럽게 번지고, 유리 천장 아래의 사람들은 여전히 책 속 세상을 여행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참 부럽다.”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호주는 단지 자연의 나라가 아니라, 지식과 시간을 존중할 줄 아는 나라라는 것을.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여행은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
도심 속의 공원을 지나 언덕길을 오르자, 고전적인 기둥과 대리석 벽이 위엄 있게 서 있었다. 아트 갤러리 뉴사우스웨일스(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이다.
1871년에 문을 연 이 미술관은 호주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르네상스 양식의 외관은 단단하고 고요했다. 그 앞에 서면 세월이 멈춘 듯한 기분이 든다.
건물 외벽에는 피카소, 반 고흐, 모네 같은 세계적 거장들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 이름들이 이곳의 역사를 대변하는 듯했다. 하지만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면, 그 이름들 너머에 더 깊은 호주의 숨결이 깃들어 있었다. 전시는 놀랍도록 다양했다.
화려한 서양 미술 사이에서 그들의 작품은 조용했지만 묵직한 울림을 품고 있었다. 전시 공간이 워낙 넓어 무료 전시만 둘러보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유료 특별전은 아쉽게도 포기해야 했다. 매주 금요일에 열린다는 한국어 무료 투어도 이용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조금은 아쉬웠다.
그러나 그 아쉬움마저도 여행의 일부였다. 시간의 여백 속에서 만나는 우연한 감정들 — 그것이 여행을 풍요롭게 만든다.
동양 예술가들의 작품을 모아놓은 전시관에서는 뜻밖의 반가움을 느꼈다. 입구 중앙에 한국 작가 이후판의 작품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다소 난해했지만, 한참을 바라보다 보니 보는 각도에 따라 작품이 전혀 다른 인상을 주었다. 가까이 다가서면 선들이 부딪히고, 멀리서 보면 조화롭게 이어졌다.
“사람과 사물 사이의 긴장과 조화” — 작가의 의도를 설명한 문장을 곱씹으며 다시 작품을 바라보았다.
그 말처럼, 인생도 결국 그렇게 조화와 긴장 사이를 오가며 완성되는 건 아닐까.
미술관을 나와서야 하루가 저물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침부터 시드니 대학의 기증 박물관, 주립 도서관, 그리고 이곳 주립 미술관까지 —
오늘 하루는 마치 호주의 문화적 심장부를 따라 걸은 시간이었다. 길게 이어진 잔디와 나무, 고전 건물과 현대 건축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그 풍경 속에서 호주 사람들의 여유로움과 밝은 미소가 겹쳐졌다.
그들은 삶을 급하게 밀어붙이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을 존중하며, 오래 두고 바라보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 태도 속에서 이 나라가 지닌 문화의 깊이가 느껴졌다.
돌아오는 길, 공원의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나무 그늘 아랫사람들이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좋고, 멋진 것들이 점점 많아지는 나라이다. 그 부러움은 단순한 풍요의 부러움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좋은 것을 오래 지켜내려는 마음이 쌓여 만든 결과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