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 오클랜드의 여유 - 스카이 시티 타워
뉴질랜드 마지막 여행인 오늘은 오클랜드라는 마침표로 귀결된다.
초록의 평원과 양 떼,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숲을 지나 도심의 콘크리트 숲으로 들어설 때, 가장 먼저 시야를 압도하며 다가오는 것은 하늘을 찌르듯 솟은 스카이 타워(Sky Tower)였다.
지상 328m. 남반구에서 가장 높은 이 마천루는 이 나라, 이 도시의 자부심 같은 존재로 보였다.
타워 내부로 발을 들이는 순간, 묘한 이질감이 밀려왔다. 뉴질랜드의 청정 자연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붉은색 등기구의 강렬함, 벽면을 채운 황금빛 인테리어, 곳곳에 선명하게 새겨진 한자 표기와 분주히 움직이는 중국인 직원들.'
이곳이 지금까지의 뉴질랜드인지, 중국의 어느 도시인지 잠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거대 중국자본이 만들어낸 화려한 공간은 현재 뉴질랜드를 상징하는 듯했다.
중국의 자본이 국경을 넘고, 문화는 섞이며, 우리는 그 혼종의 공간 안에서 새로운 세계의 질서를 목격한다.
엘리베이터가 귀가 먹먹해질 만큼 빠르게 상승하자 유리창 밖 풍경이 미끄러지듯 아래로 떨어졌다. 전망대 바닥의 투명 유리 위에 서니 발밑으로 도로와 자동차가 장난감처럼 작게 보였다.
360도로 펼쳐진 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옥색 하늘 아래로 하얗고 붉은 페리들이 모여 있는 항구가 반짝였고, 바다 위에는 손바닥만 한 섬들이 흩어져 있었다. 빌딩 사이사이의 공원과 나무들은 쉼표처럼 끼어 있어 도시의 숨을 고르게 했다.
지상 192m의 높이. 인간이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끼는 그 지점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확인하고 있었다.
'스카이 점프(Sky Jump)'를 기다리는 이들의 얼굴엔 팽팽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시속 85km의 속도로 11초간 수직 하강하는 그 짧은 시간, 그들은 중력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나는 일찍이 패러글라이딩의 완만한 활공은 경험해 보았지만, 중력에 정면으로 맞서는 번지점프나 스카이 점프 앞에서는 매번 발을 멈추고 만다. 그것은 단순한 고소공포증이라기보다, 내 삶의 통제권을 오로지 가느다란 와이어 하나에 맡겨야 한다는 불안 때문일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풍경은 타워 외벽을 걷는 '스카이 워크(Sky Walk)'에서 펼쳐졌다.
헤드폰을 끼고 경쾌한 음악에 맞춰 허공 위를 걷는 젊은 여성들의 도전하는 모습은 당당하고 자유로웠다. 반면, 안에서는 그녀들의 가방을 품에 안고 안절부절못하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남성들이 보였다.
도전하는 여성과 겁내는 남성, 혹은 즐기는 자와 걱정하는 자. 그 역할의 전복은 고정관념이라는 낡은 외투를 벗어던지게 만드는 유쾌한 장면이었다.
용기란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그 순간을 얼마나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느냐의 문제임을 알게한다.
메인 전망대를 지나 엘리베이터로 한 번 더 고도를 높이면, 마침내 도심의 최상층 전망대에 닿는다.
층고가 높아진 만큼 시야는 더 깊고 넓어진다. 발아래 펼쳐진 풍경은 경이로웠다. 빌딩 숲 너머로 펼쳐진 옥색 바다, 그 위를 수놓은 하얗고 빨간 페리들은 마치 정교하게 그려진 정물화 같았다.
오밀조밀하게 이어진 섬들과 유려한 다리들, 그리고 건물들 사이사이로 뻗어 나간 초록의 공원들. 그 푸른 나무들은 빽빽한 도시의 문장들 사이사이에 찍힌 '쉼표' 같았다.
쉼표가 있어야 문장이 숨을 쉬듯, 도시도 나무가 있어야 비로소 삶의 리듬을 회복한다.
이곳에서는 지구에서 가장 먼저 새해의 불꽃이 터진다고 했다. 오클랜드는 매년 12월 31일~그다음 해 1월 1일마다 스카이 타워를 배경으로 화려한 불꽃놀이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직 보지 못한 그 불꽃을 떠올리며 난간에 기대 서 있었다.
스카이 시티 타워가 의미에 따라 색깔이 변한다고 하는데 컬러 스토리가 참 재미있다.
Purple - International Women's Day 보라색 - 국제 여성의 날 /매년 3월 8일
White - White Ribbon Awareness 하얀색 - 하얀 리본 의식( 비폭력 사회를 위한 침묵의 날)
Red and white - Māori Language Week 빨강과 흰색 - 마오리 주간
Green base and yellow top - Daffodil Day. 초록색과 노란 탑 - 수선화의 날(암 환자들을 위한 기금 모금의 날)
Orange at the base fading to yellow at the top-Celebrating Matariki. 오렌지와 노란 탑 - 마타리키날 축하 (마타리키는 한겨울에 하늘에 떠오르는 별자리를 지칭하는 마오리어로 원주민의 새해를 알리는 날)
Rainbow 무지개색- Pride Festival and other major events for New Zealand's Rainbow community
Pink - Mother's Day, New Zealand Breast Cancer Awareness Week, or Pink October 핑크색-어머니의 날, 유방암 주간
Blue - SKYCITY Breakers or Blue September 파란색 - 전립선암 주간
Red top with Poppy emblem projection - ANZAC Day and Poppy Appeal 빨간 탑과 양귀비 모형의 빔 -안작 데이와 참전용사를 기리는 날 기념
Red and green - Christmas 빨강과 초록색 - 크리스마스
Red and gold - Chinese New Year 빨강과 금색 - 새해맞이
Green - St Patrick's Day 초록색 - 세인트 패트릭의 날(아일랜드 수호성인으로 세계적 축제의 날)
Red top - Cure Kids Red Nose Day 빨강탑 - 키즈 네드 노즈 데이(아픈 아이들을 위한 기금 모금의 날)
Red - Valentine's Day 빨간색 - 밸런타인데이
Lights off - Earth Hour 조명 끄기 - 지구의 시간 날(3월 마지막 날 토요일, 환경을 위한 조명 끄기 행사)
12월 25일 크리스마스는 레드 그린으로 변한다.
'내 인생은 어떤 색들로 완성될까?'
그 풍경을 바라보며 문득 화가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이 1950년대에 쓴 시 **<그림>**의 구절을 떠올렸다. 샤갈에게 색채는 구원이었고 평온이었다.
"나의 태양이 밤에도 빛날 수 있다면 나는 색채에 물들어 잠을 자겠네… 내 그림은 완성된 걸까? 모든 것이 빛나고 흐르고 넘친다. 저기에는 검은색, 여기에는 붉은색, 파란색을 뿌리고 나는 평온해진다."
오클랜드의 전경 또한 수많은 색채의 조합이었다. 바다의 파란색, 페리의 붉은색, 공원의 초록색, 그리고 노을이 지기 시작하면 찾아올 오렌지색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새해를 맞이하며 불꽃놀이의 찬란한 빛으로 밤하늘을 수놓는 이 도시처럼, 우리의 인생 또한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림에 저마다의 색깔을 뿌리며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 아닐까.
아직 채워 넣을 여백들이 남아 있다고 믿으면서 마음을 평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