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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소풍 May 16. 2024

봄3,‘ 페즈의 올드 메디나’-모로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천년의 골목길에서 인연을 떠올리다

 아프리카 서북쪽 모로코는 사하라사막과 세계적인 도시 카사블랑카로 유명한 이슬람 국가이다.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스페인과 겨우 14km 떨어져 있어 스페인에서 배를 타고 여행을 오는 사람들도 아주 많다.

 

모로코의 도시 중 가장 오래된 페즈는 수천 년의 역사를 지녔다. 페즈의 구시가지 메디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중세도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옛 도시를 뜻하는 메디나 안에는 모스크와 학교, 공중목욕탕, 공장, 시장, 호텔 등, 도시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 오랜 세월을 버틴 흙벽으로 된 9,000여 개의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다.     

 수천 년 세월의 흔적이 완연한 골목은 북아프리카 5월의 작열하는 태양과 끈적거리는 더위를 모두 삼키고 있어 시원했다. 골목마다 들리는 기도 소리에 걸음을 멈추는 사람들을 보며 이곳이 이슬람 국가임을 알게 한다.


 집들이 모두 똑같이 생긴 창문과 출입문, 단순한 벽인 이유가 있었다. 이슬람 왕국을 세운 이드리시 1세가 ‘평등’을 강조하여 겉으로 보이는 부자와 가난한 집의 구분을 없앴다고 한다. 그래서 부자의 집은 대문을 열고 들어갈수록 넓고 화려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빈부 차이가 현격히 드러나는 주거 형태와 비교가 많이 되었다. 언젠가 시선을 끌었던 대기업의 아파트 광고가 생각났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길은 주민들과 여행 온 사람들, 짐을 실은 당나귀가 쉴 새 없이 지나간다.

 온통 검은 옷으로 눈만 남긴 여자들과 흰색 옷의 건장한 남자들의 눈이 마주친다.

 

 동양 여자를 흩어보는 눈길과 좁은 골목의 삶에 지친 표정이 느껴진다. 그럴수록 안보는 척 그들을 살펴본다. 그들의 삶을 알고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어디선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 발걸음을 멈춘다.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Hello” 하며 말을 시키니 정말 반가웠다. 나를 따라오며 노래하고 손짓하더니 골목 가운데 있는 가죽 염색 우물 위에 있는 가죽 상점 시디모우새테너리로 안내했다.  

    

  말은 안 통해도 여행객들의 이동 경로를 알고 있는 듯했다. 계단 입구에서 갑자기 달려드는 동물 썩는 냄새에 인상을 쓰며 코를 가렸다. 아이들은 옷 주머니에서 작은 잎사귀를 꺼내 코에 대라는 동작을 보인다. 향긋한 민트 잎 몇 개를 주었는데 가죽 염료의 악취와 피로를 잊게 해 주었다.


 아이들에게 웃으며 1달러를 주니 연신 고맙다고 하며 어느 사이 좁은 골목길 속으로 사라진다. 아마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에게 번 돈을 주려고 빨리 달려간 것 같다.


 저 돈으로 가족들의 생계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과 이런 돈벌이 때문에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은 아닌지 하며 걱정도 하였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의 반짝이는 눈과 커다란 입꼬리 모습을 오래오래 간직하기로 했다.     

페즈의 염색공장

 ‘빨강, 파랑, 노랑 등 여러 가지 원색의 염료가 갈색 우물에 담겨 있네.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팔레트 같다더니 맞네!     


 “저기 정성을 다하여 일하는 기술자들의 모습을 자세히 보세요. 모로코에만 있는 천년의 전통 염색 방식이지요. 이곳 수제 가죽 물건들 모두 최고의 장인들이 저렇게 만들고 있어요.”     


 마치 남자들의 일하는 모습은 가게 물건을 비싸게 팔기 위한 이벤트 같았다. 깜짝 놀랄 만큼 비싼 가격을 부르더니 돌아서는 사람들에게 흥정했다. 물건 가격의 어느 정도나 저 노동자들의 임금으로 지급될지 생각했다.

 거만하고 돈이 많아 보이는 사장에게 거부감이 생겼다. 저들이 최저 임금을 받는 삶에 찌든 노동자가 아니라 모로코 최고 염색 장인의 대우를 받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뜨거운 해도 들지 않고 구글 지도도 통하지 않는 구부러지고 어두운 골목길 세상. 처음에는 길눈이 밝으니 헤매지 않으려면 잘 기억해야지 생각하였다.

 분명 큰 지도를 펼쳐 확인하며 걸었는데 계속 연결되어 내가 새로운 곳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그래 길은 많이 있어. 조금 더 걷다 보면 익숙해질 거고, 언젠가는 출구가 나올 거야!’


 불안하지 않았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며 사람들의 동선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인생의 위기마다 바둥거리며 길을 찾으려 애썼다. 결국 제자리에 멈추어 힘을 빼고 호흡을 다듬고 생각을 모으면 길이 있었다. 쉬울 때보다 어려운 적이 더 많았지만 결국 앞으로 나아갔다.   

  

 모로코 올드 메디나의 구불구불 미로 같은 골목길이 참 좋았다. 골목길에서 천 년 전에, 백 년 전에도 살았을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그려졌다.

 

 아무리 걸어도 멈추지 않는 미로 같은 길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진지한 표정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조상 때부터 살았을 그 미로 골목길을 운명처럼 지키며 열심히 살고 있을 것이다.


 그 입구이자 출구인 블루 게이트를 나오며 서로 다른 길을 걸어도 언젠가는 다시 만나는 사람들의 인연이 떠올랐다.

 삶의 여러 갈래의 길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들이 있었다. 어떤 인연은 지금도 이어지고, 어떤 인연은 불같이 뜨거웠지만 지금은 차갑게 식어있다. 아무리 애써도 억지로 되지 않는 것이 사람과의 인연인 것 같다.

 

 앞으로 맺어갈 인연은 전보다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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