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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소풍 May 16. 2024

봄2, 하동에서 새로운 길을 만나다-경남 하동

‘꽃비 흩날리던 쌍계사 벚꽃길’

  

    

 경남 하동은 동쪽으로 진주시와 북쪽으로 산청군·함양군과 전라북도 남원시, 남쪽으로 남해군과 마주하며, 서쪽으로는 섬진강(蟾津江)을 경계로 전라남도 구례군·광양시와 각각 접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수선하던 3월 주말 늦은 밤, 하동 화개 장터에서 화개동 천을 따라 지리산 쌍계사 입구까지 십 리 벚꽃길을 걸었다.


 50년 이상 100년 된 벚나무들이 길 양쪽에 빽빽이 서서 하얀 벚꽃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세월을 담아낸 아름드리나무에 여린 꽃들이 겹겹이 포개져 두덩을 이루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어느 사이 땅거미가 내리면서 너른 화개동 천 물줄기 위로 검붉은 해 꼬리가 밉게 앉는다. 벚꽃잎은 봄비처럼 바람에 흩날리다 살포시 내리며 어두운 밤길을 조명처럼 밝혀주었다.  

    

 하룻밤 사이 십 리 벚꽃길은 너무나 달라져 있어 깜짝 놀랐다. 새벽 비에 흠뻑 젖은 시꺼먼 아스팔트 위에 작은 꽃잎들이 못내 아쉬운 듯 찰싹 달라붙어 하얀 꽃길이 되어 있었다. 하얀 꽃비가 바람 따라 춤을 추며 쌍계사로 가는 새벽길을 곱게 물들였다.


 화개천 따라 끝이 안 보이는 백 년의 벚꽃 터널 마지막, 지리산 자락 아늑한 곳에 천년의 쌍계사가 있었다.     


 찻길 옆 나란히 흐르는 화개동 천에는 천왕봉에서 시작했을 굵은 빗물들이 모여서 커다란 바위들과 부딪혔다. 점점 넓게 흐르는 화개동 천의 끝에는 전라도 구례와 경남 하동 사람들이 사이좋게 만나는 섬진강 화개장터가 있었다. 바로 앞의 섬진강은 화개동 천의 쏟아지는 성난 물줄기들을 고요히 받아내며 천천히 아래로 흘러가고 있었다.     


 소설가 김동리의 소설 ‘역마’가 생각났다. ‘역마’의 시작 문장, '화개장터'의 냇물은 길과 함께 흘러서 세 갈래로 나 있었다. 한 줄기는 전남 구례(求禮) 쪽에서 오고, 한 줄기는 경상도 쪽 화개협(花開峽)에서 흘러내려,

 여기서 합쳐서, 푸른 산과 검은 고목 그림자를 거꾸로 비치인 채, 호수같이 조용히 돌아, 경상 전라 양도의 경계를 그어주며, 다시 남으로 남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섬진강(蟾津江) 본류(本流)였다. ---   

  

 오랫동안 화개 장터 앞에 멈춰 서서 섬진강을 바라보았다. 이 빗속에서 저 거침없는 화개천을 고요히 품어낸 저 섬진강 물줄기는 어디로 흐르는 것인가, 아마 태평양으로 뻗는 넓은 남해 바다일 테지.


 서로 다른 땅에서 흘러나온 가는 물줄기들은 모여 섞이고 저렇게 흘러 흘러 거대한 침묵 속으로 빠져들어 가겠지. 생각해 보니 내 인생 또한 그러했다.


 나는 역할에 애쓰느라 혼자일 때가 많았고, 감정을 견디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만 정신을 집중하며 살았다. 자신도 잘 모르면서 세상을 제일 아는 것처럼.     

 걷기를 참 좋아한다. 자유롭게 걷고 또 걸으며 이렇게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기억한다면, 나 또한 저렇게 거대한 침묵처럼 평화로워질 수 있을까.

 봄비는 주적주적 내리고, 나는 땅으로, 섬진강으로 흐르는 벚꽃잎들을 기억한다.


 고요한 섬진강 물줄기를 뒤로 한 채 화개 장터 다리를 건너 요란한 장터로 들어갔다.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앞으로 은퇴 이후의 삶에서도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삶은 어디에서 뚝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니다. 장터 다리를 건너 새로운 장소에 다다른 것처럼, 나 또한 ’삶의 다리‘를 건너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세상이 두렵기도 하지만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설레는 마음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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