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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소풍 이정희 May 16. 2024

봄1, 욕지도-경남 통영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욕지도의 청춘 할매 커피집

 

 4월 중순은 남해를 여행하기 정말 좋은 날씨였다. 육지는 온통 꽃 세상이고 반도 끝자락 통영은 따뜻하고 봄 햇살이 가득했다. 어제 한산도에 이어 섬 투어 2일 차 오늘은 통영을 대표하는 욕지도로 출발하는 날이다.


 이른 아침 통영항 여객터미널을 출발한 욕지도행 배는 트로트 경음악 소리에 맞춰 흔들거렸다. 점점 작아지는 통영 항구와 요트장, 신선대 전망대를 멀리멀리 밀어내고 있었다.


 욕지도는 지혜를 추구한다는 섬 이름처럼 한려수도의 39개의 섬을 아우르는 맏형이다. 남쪽 끝 먼바다에서 오는 거친 풍랑을 온몸으로 막아내어 바다 앞은 호수처럼 늘 잔잔했다.     


 섬을 한 바퀴 도는 일주도로(17km) 아래로 긴 세월 동안 깎여 내린 아찔한 해안 단애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일주도로 북쪽엔 가두리 양식장인 듯 보이는 부표 군락들이 꽤 많이 보였다. 모두 고등어 양식장인데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대 규모라고 한다.


 서울 사람들 먹는 고등어회는 거의 욕지도 산이고 요리용은 노르웨이에서 수입한 냉동이라 비린내가 많다고 한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남해 최대의 어업 기지였다.

 전성기에는 인구 2만 3천 명의 인구가 번창했는데 지금은 2천 명의 사람들이 살 뿐이다.


바닷길 따라 한나절 만에 섬 한 바퀴를 걸었다. 욕지도는 거의 산비탈이어서 논이 없고 거의 고구마밭이다.


 꽤 큰 섬인 매물도와 연화도가 한눈에 보이는 새천년 전망대가 있다. 마침 그곳에 정차해 있던 욕지도 하나뿐인 마을버스   기사님이      


 “욕지도에서 경치가 제일 좋은 곳이니 길 건너 달 모양의 조형물 앞에 서봐요. 아지 매는 혼자 왔고 평일 사람도 없으니 특별히 직접 사진을 찍어줄게요. ”   

  

 버스 운전석에서 큰 목소리로 서너 개의 멋진 포즈를 지시하였다. 버스 안에서 기다리던 몇 명의 할매들은 열린 창문 사이로 고개를 내밀며   

 

 “어디서 왔소, 왜 혼자 왔는기요?”

 “아지매는 젊어서 좋겠소. 지금이 제일 좋을 때니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이소"

 “제 나이 환갑이에요!”

 “세월이 뚝딱 흘러 이렇게 늙은이가 금방 되부러!”     


 해안 도로인 욕지일주로를 한참 걷다 보니 “욕지도 할매 바리스타” 가게가 보였다. 평균 나이 75세 할매들이 공동 운영하는 곳이다.


 할매들은 예쁜 앞치마를 두르고 이름표를 보이며 진한 사투리로 주문을 받았다. 주름이 확연한 어르신이 커피 메뉴를 줄줄 외우며 주문을 받아 재미있었다.      


 “내가 여그서 68세 제일 젊은 막내야. 그래서 반장이지!”

 “여자 혼자 여기까지 혼자 온 것 보니 씩씩한 사람이네?”

 “KBS 인간극장에도 출연하였는데 본 적 있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여기저기 많이 다니고, 하고 싶은 것 쬐다하고 사이소?”     


 할매들은 손님은 나 혼자인데 부지런히 움직였다. 흥얼거리며 어찌나 즐겁게 이야기하는지 나도 저렇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푸른 바다에서 밀려오는 진한 고등어 비린내와 아이스 아메리카노 향기는 서로 누가 냄새가 강한가 경쟁하듯 독특한 향내를 내며 바람에 섞였다. 바로 옆 느티나무 밑에서 욕지도 할매들의 욕설 섞인 구수한 이야기를 엿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4월의 푸른 하늘이 내린 쪽빛 바다 욕지도는 내가 가본 세계적인 휴양 섬 이태리 카프리섬보다 아름다운 곳이다.

 썰물처럼 젊은 사람들이 빠져나간 한적한 섬 욕지도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푸른 바다 반짝이며 뛰어노는 은빛 고등어들과 예쁜 앞치마를 두르고 즐겁게 일하는 청춘의 바리스타 할매들이다.


 ‘누가 감히 그녀들을 썰렁한 섬의 할매들이라 말하려는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소녀같던 할매들에게 꼭, 붙여드리고 싶다.

 나 또한 그런 마음으로 더 마음껏 꿈꾸고 마음껏 누리며 살아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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