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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길 17, 세월아 네월아 산티아고길 17.

- 나바레터에서 나헤라까지(17.1km)

by 지구 소풍 이정희

어제는 로그로뇨에서 나바레터까지 12.5km, 오늘은 나바레터에서 나헤라까지 17km, 한 구간 29km를 나누어 천천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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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발


로그로뇨에서 연박을 하며 쉬어서인지 그리 긴 거리도 아닌데 배낭 메고 걷는 것이 힘들었다. 남들처럼 물집도 안 생기고 발목, 무릎도 괜찮아서 좋았는데 서서히 발바닥이 아프다. 굳은살이 박이려고 그러는지 속도를 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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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


끝없는 포도밭 사이 자갈길을 걸으며 사람들과 인사를 하며 살펴보게 된다.


밝게 미소 짓는 사람에게는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몇 살인지, 어디까지 걸을 것인지, 간단한 질문을 하고 사진을 찍어줄까 하며 묻는다.


1726679776342.jpg?type=w773 동갑내기들


어제부터 앞뒤로 만나는 두 외국 여인이 있다. 우리는 쉬거나 만날 때마다 반갑게 눈인사를 하였다. 서로 패턴이 비슷하여 어제는 포도를 따먹다가, 오늘은 무화과를 맛있게 먹다가 눈이 마주쳐서 드디어 대화를 시작했다.


1726675115867%EF%BC%8D5.jpg?type=w773 맛있는 무화과


뒷모습은 민소매에 짧은 치마바지를 입고 씩씩하게 걸어서 학생들 같지만 얼굴을 보니 나이가 있어 보여 신상을 물어보았다.


미국에서 왔고 62세 나와 동갑이라고 하는데 깜짝 놀랐다. 주름이 아주 많아 70대로 보였기 때문이다. 예의상 에너지가 많아 보인다고 했더니 무척 좋아한다. 우리는 함께 사진을 찍으며 이름을 말했다. 스스로 모습을 모르고 살다 거울을 보는 듯했다.


'나도 저렇게 나이 들어 보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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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걸으며 사진도 열심히 찍고 뒤도 많이 돌아본다. 그래서 앞사람의 뒷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뒷사람의 앞모습도 살피게 된다.


가끔 한국 사람이 보이면 멈추어 먼저 인사를 하곤 한다. 내가 여유 있게 9시쯤 출발하니 새벽에 출발하는 한국 사람들을 자주 못 만나는 것이다.


11시쯤, 새벽 6시에 12km 전인 로그로뇨에서 출발했다는 한국인 아저씨 두 사람을 만났다. 제주도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 정년퇴직을 하고 왔다고 한다. 60세와 59세면 나보다 더 어린데 왜 이리 나이가 많아 보이는지 또 깜짝 놀랐다.


'또 나의 거울이구나!'


'오늘은 주제 파악하는 날이구나!'


1726675115867%EF%BC%8D4.jpg?type=w773 앞에 걷는 제주도 아저씨들


포도밭 저 너머 산등성이에 하얀 구름들이 설산같이 보인다. 그 너머 붉은 바위 아래 아담한 마을이 보인다.

드디어 '나헤라'이다. 금방 도착할 것 같은데 구글 지도에서는 5.8km, 1시간 반 걸어야 도착 예정이다.


20240918%EF%BC%BF125128.jpg?type=w773 마을 입구 무인 판매대


마을 입구에 무인 판매대와 의자가 있다. 냉장고에 차가운 음료가 있다고 안내 그림이 보인다. 고양이가 주인인 듯 지키고 있다. 그리고 순례자들을 위한 기부통이 있다.


"순례자들을 위한 신선한 물, 다른 사람들이 계속 마실 수 있도록 기부 바랍니다.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나는 길이요 생명이니, 요한 14절 11장."


'저 돈 통에 모두 물건값을 넣을까?'


20240918%EF%BC%BF151356.jpg?type=w773 나헤라 다리


나헤라는 중세의 모습을 지닌 곳으로 아랍어로 바위 사이의 도시라는 뜻이란다. 한때 나바라왕국의 수도로 이슬람 문화와 기독교 문화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다고 한다.

도시 곳곳을 산책해 보니 이슬람 복장을 한 여인들과 여자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나헤라 시내를 가로지르는 작은 강 건너는 구시가지라 과거, 순례길 입구는 현대식 건물이어서 현재가 공존하는 곳 같다.


'어디든 과거가 없는 현재는 없고, 현재가 없이 미래를 꿈꿀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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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6680511050.jpg?type=w773 오늘의 13유로 알베르게


이제 14일간 8구간을 걸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34개의 전 구간을 마라톤 하듯 30일에 걸은 지인이 나의 행보를 보고는 문자를 보냈다.


20240918%EF%BC%BF085009.jpg?type=w773 이제 777km 중 557km 남았다!


"멋집니다! "


천천히 쉬엄쉬엄


페이스 조절해 가며 전진하시면


어느새 콤포스텔라 성당이 ⛪️ ㅎㅎ "


그래,


62년 열심히 달렸는데


이제 산티아고에서의 두 달은 거북이처럼 세월아 네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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