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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길 19, 세월아 네월아 산티아고 순례길 19.

산토도밍고에서 벨로라도까지(22.2km)

by 지구 소풍 이정희

첫날 난이도가 제일 높은 피레네산맥을 힘들게 넘은 후 오랜만에 산토도밍고에서 벨로라도까지 하루 23km를 걸어 발이 무거운 날(?)이다.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하루 1구간 25~35km 걷는다.)


20240920%EF%BC%BF102636.jpg?type=w773 끝없는 밀밭 평원 자갈길


농사가 끝나 쓸쓸한 밀밭 평원의 자갈길을 몇 시간 계속 걷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뜨거운 햇살에 바람마저 없으면 걷기 힘들다. 그러다 그늘을 찾아 쉬려면 냉기에 패딩을 입어야 하는 날씨이다.


20240920%EF%BC%BF091839.jpg?type=w773 그라뇽 마을의 벽화와 푸드트럭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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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트럭의 긴 줄 한국말 잘하는 사장



20240920%EF%BC%BF103751.jpg?type=w773 지역의 경계표지


어느 사이 지역의 경계를 넘고 보니 그렇게 많이 보이던 포도밭과 무화과, 오디나무들이 보이지 않는다. 말라가는 해바라기 평원과 푸릇푸릇한 콩밭이 저 넓은 땅의 경계를 만들 뿐이다.


20240920%EF%BC%BF172148.jpg?type=w773 벨도라도 광장


산티아고 순례길은 마을을 통과하여 성당을 들리게 되어있다. 반가운 마음에 들리는 조용한 시골마을의 회색빛 돌집들은 이제 노인들만 사는 낡은 집이 되어 지나는 순례자들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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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쁜 창문들


비록 오래된 집이라도 창문마다 예쁘게 치장하고 있는 집들이 많다. 테라스에 앉아, 지친 순례자들에게 부엔 카미노를 외치는 노인들을 마주한다.

목소리나 표정이 활발하면 따라서 경쾌해진다. 그러다 무표정한 노인들을 보면 가슴이 내려앉는 듯 슬퍼진다.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낮에는 두 발로 걷고,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이 사람'


이제는 걸을 힘조차 없는 힘없는 노인들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나고 앞으로 나의 모습 같다. 꺼져가는 촛불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라 할지라도.


시간은 나의 걸음처럼 천천히 지나는 것 같은데 9월 2일 서울을 출발하여 벌써 오늘이 9월 20일 금요일이 되었다.


프랑스 생장에서 시작하여 스페인 벨도라도까지 233.9km 걸어왔다. 많이 걸은 것 같아 대견하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아주 느린 편이다.


2구간을 3일 정도로 나누어 하루 15~20km 정도 걷고, 팜플로니아와 로그로뇨 같은 도시에서 연박을 하며 여유를 즐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래 계획과 달리 브루고스에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투어 2박 3일을 추가하고, 대도시 레온에서 연박을 하며 축제를 예정이다.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하고 싶은 거 즐기며 걷자!'

Screenshot%EF%BC%BF20240920%EF%BC%BF225018%EF%BC%BFNAVER.jpg?type=w773 드디어 세계적인 구겐하임 미술관에


이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남은 544km를 걸어야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길 800km를 완주할 수 있다.

나와 같은 날 생장에 도착하여 다음날 바로 출발한 사람들은 오늘 테라 디오스 데 로스템플라디오까지 421.2km를 걷고 있다.(블로그 pitturu 님)


'아휴!'


정말 많은 차이가 있다. 오죽하면 모두의 반대에 머뭇거리던 나에게 용기를 주었던 순례길 경험자 지인이


"두 달 동안 세월아 네월아 걷느냐고 이야기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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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완주의 기쁨을 누리며 연박한 후 아쉬움 없이 땅끝 묵시아와 피스테라까지 119.6km를 추가로 걷기로 했다.

그리고 10월 30일 아침, 파리에서 헬싱키 환승 인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이번 산티아고 순례길 두 달은 빨리 걸어 완주를 인정받은 후 바르셀로나, 파리 여행을 할 계획이었으나 온전히 걷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이제 도전과 완주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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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나 바르셀로나와 같은 멋진 도시들은 다음에 다시 갈 수 있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 지금이 가장 젊은 체력이고 인생 후반전 건강을 장담할 수 없다.


초반부터 무리하지 않아 물집도 안 생기고 무릎도 아직은 괜찮다. 발바닥이 문제만 없다면 이제부터는 조금씩 더 많이 걸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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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사람 뒷모습만 보고 걷는데 집중하기보다 지금처럼 열심히 멈추어 뒤돌아 볼 것이다.

대평원의 섭리와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들을 마음에 담고 사진으로 찍어 오래 간직할 것이다.



자연과 사람들에게
기운을 얻는
산티아고 순례길
힘들지만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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