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길 23, 세월아 네월아 산티아고 순례길 23.

부르고스에서 빌바오까지

by 지구 소풍 이정희


KakaoTalk_20241228_220903318.jpg 빌바오 버스 터미널


직행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를 부르고스에서 잠시 쉬고 아침 일찍 시외버스를 타고 빌바오에 갔다. 버스를 타면 2시간 정도 걸리는데 여기에서도 한국인들 몇 명을 만났다. 모두 나처럼 브루고스에서 연박을 하며 빌바오 미술관 관람을 간다고 했다.

또 오지랖이 발동하여 한국인들에게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입장권을 예약하면 12유로이고 현장 결제는 더 비싸다며 얼른 하라고 가르쳐 주었다. 모두들 몰랐다며 고맙다고 인사한다.

오랜만에 버스를 탔더니 버스 천장 넓은 유리창에 밝게 비추던 구름 구경도 잠깐인 채 이내 곤한 잠에 들어 버렸다.


KakaoTalk_20241228_220556734.jpg

1991년 스페인 바스크 지방정부는 쇠락하는 철강도시 빌바오가 다시 활기를 되찾을 방법으로 문화산업을 떠올렸다고 한다.

미술관을 유치하기 위해 스페인정부와 지방 정부가 미술관 건설 비용을 지원하는 대신, 미국 철강 거물 구겐하임 재단의 미술관 운영과 소장품 기증을 약속받아 약 9,100만 유로(한화 약 1,241억 원)를 투입하여 7년간의 공사 끝에 1997년 개관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개장 후 3년 만에 약 4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면서 지역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미술관을 설립하는데 든 비용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다.

이런 경제적 효과를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 또는 '구겐하임 효과'(Guggenheim Effect)라고 부른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영향으로 파이낸셜 타임스는 빌바오를 매력적인 유럽 도시 4위로 선정했을 정도이다. 빌바오에 미술관이 생긴 이유를 알게 되면서 정치의 중요성을 새삼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에 모든 것이 집중하고 지방은 급격히 작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방정부들은 현실 비관만 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빌바오 효과를 노려보면 어떨까?

KakaoTalk_20241228_220518511.jpg

해가 질 때까지 미술관 건너 강변에 앉아 빌바오의 멋스러운 시가지와 구겐하임 미술관을 바라보았다. 은색 티타늄 건물이 석양빛에 제각각 다르게 물들고 있었다.

강 건너 남쪽 미술관 광장에는 달리기를 하는 건강한 젊은이들과 많은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내가 본 스페인의 어느 곳보다 희망이 있고 친절하면서 자부심이 넘치는 밝은 곳이었다.


북쪽 주택가 산책로에는 쇠락하는 빌바오를 지혜롭게 지켜낸 동시에, 격을 높인 현명한 노인들이 그들이 만든 아름다운 미술관을 바라보며 산책을 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노을빛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이 편안해 보였다.

노인 복지를 이유로 EU를 탈퇴하여 젊은이들이 조국 탈출을 하게 만든 영국의 어른들 결정과 비교되며 우리나라 불안한 현실이 엄습했다.

세대가 공존하기 위한 어른들의 선견지명과 희생이 우선이고 매우 중요한데 우리의 정치나 경제가 점점 걱정되기 때문이다.


오늘 본 빌바오는 대단한 미술관과 함께 사람들의 편안함과 현명함이 녹아든 예술의 도시였다.


KakaoTalk_20241228_220732448.jpg
KakaoTalk_20241228_220806286.jpg
사계절 변하는 퍼피와 늘 그 자리 마망

빌바오 미술관의 마스코트 퍼피가 건물 앞에서 반겨준다. 실제로 계절별로 수천 개의 화분으로 꾸며 엄청 크다.

항공기 몸체로 쓰이는 3만여 장의 티타늄 패널을 0.3mm의 얇은 판을 만들어 생선 비늘처럼 미술관을 덮고 있다. 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물고기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초안을 그렸다고 한다.

사방팔방 어느 곳에서 사진을 찍어도 새로운 모습이라고 한다. 날씨에 따라, 햇살이 비치는 방향과 각도, 시간에 따라 건물의 빛깔이 다르다고 한다.


"보는 사람 마음에 따라!"


그리고 그 유명한 거대 거미 조형물인 마망도 보았다. 우리나라 리움 미술관에서 볼 때는 예술감이 대단했는데 대단한 미술관 건물에 가려 빛을 못 보는 것 같았다. 오늘은 주황색 청소하는 배까지 있어 실망스러웠다.


KakaoTalk_20241228_215703978.jpg
KakaoTalk_20241228_215953244.jpg
시간의 문제

1층 전시물인 리처드 세라의 '시간의 문제'는 정말 인상적이다. 철강의 도시 빌바오에 철강 재벌 구겐하임의 소장품이 미술관의 존재감을 확연히 보여주었다.

단단한 철들의 곡선과 직선의 어울림, 기울기와 균형의 배합을 보고 만지며 예술을 잘 모르는 데도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미켈란 젤로처럼 천재들의 위대함이 돋보였다.


3층 기획 전시실의 설치작품들도 충격적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일본 작가 요시토모 나라의 소녀 감성의 작품들인데 젊은 세대의 감정들이 적나라하고 충격적으로 표현되어 울컥거릴 정도로 감정 동요가 되었다.

KakaoTalk_20241228_220339019.jpg
KakaoTalk_20241228_220820524.jpg
요시토모 나라의 소녀 감성의 작품들


과거와 현재가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평안하고 품위 있는
사람 사는 아름다운 도시

빌. 바. 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가을길 22, 세월아 네월아 산티아고 순례길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