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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거스냅 Jul 19. 2019

오랜만에 찾은 경주의 문화재들(2)

Cultural Heritages that lie in Gyeongju

모든 사진은 2019년 6월 경주여행 중에,

Contax G2, Contax T2와 다양한 필름으로 촬영하였습니다.

색감 및 조도가 일정치 않은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학창시절 수학여행의 꽃, 경주. 천년고도니, 문화재의 산실이니, 세계문화유산이 살아 숨 쉬는 보고니 경주하면 떠올리는 수식어가 적잖이 많아 진부하게도 들리지만, 실은 그 세월의 더께만큼 켜켜이 누적되어온 경주의 가치를 생각하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는 데에 동의한다.


그래서 몇 번이고 경주를 갔다 왔음에도 또 가고 싶고, 아직도 보지 못한 것이 많아 기대된다. 물론 보았던 것도, 알고 있던 것도 갈 때마다 또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오전 일찍 나온 경주 시내였지만, 첫째날과 같이 여전히 날은 흐렸다. 오히려 약하게나마 비까지 내렸다. 우산을 쓰기엔 2대의 카메라를 들어야해서 불편하고, 안쓰자니 렌즈에 빗방울이 튀어 성가신 그런 날씨. 평일인데다 좋지 않은 날씨까지 겹쳐서였는지 원래라면 깨나 붐볐을 경주 시내가 생각보단 한산했다.


보문단지쪽에 위치한 호스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간단하게 챙겨먹고 나왔지만, 아무래도 교동에서 유명세가 자자한 교리김밥이 너무 먹고 싶었던 나머지, 첫번째 코스를 월성지구로 잡고 약 10km 가량 떨어진 시내로 이동했다. 교리김밥이 줄을 서서 먹어야한다기에 곧장 내달릴 심산이었는데, 웬걸 운전하는 데 왼쪽으로 버젓이 서있는 첨성대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날이 안 좋아도 그렇지, 이렇게나 사람이 없다니. 나중에 오려고 했지만, 이왕 코앞까지 온 데다 갓길에 주차할 자리도 넉넉히 있어서 지나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스타벅스가 있는 곳 앞 노상주차장에 그냥 차를 댔다.


국보 제31호 첨성대


경주하면 떠오르는 대표주자, 첨성대. 불국사, 석굴암과 더불어 모르는 사람 없는 그것.


신라가 통일하기 이전인 선덕여왕 대에 건축된 천문관측대로 근대 이후엔 그 위치나 형태가 천문 관측 용도에 맞지 않는다하여 많은 설이 제기 되었지만, 아직까진 주류학계에선 상징적(?)인 역할을 겸하는 천문대로 인정받는다.


첨성대를 이루는 돌의 갯수(1년을 의미)나 천원지방을 의미하는 형태, 동서남북을 가리키는(현재는 다소 틀어져있지만) 정(井)자 형태의 머릿돌과 24절기에 따른 빛의 형태 등 정밀하게 구현된 과학적 구조와 그에 맞게 딱 맞아 떨어지는 상징성은 어느 문화재와 비교해도 손색 없다. 언뜻 예술품에 갖다 바치는 고답적인 헌사 같은 표현처럼 들릴지 모르겠으나, 사실은 사실.



현재의 첨성대는 눈으로 보는 것만큼 튼튼하지는 않다. 첨성대를 받치고 있는 약한 지반의 영향이 크다. 매일 같이 수천, 수만대의 차들도 지나다니니 좋을 턱이 없다. 벌써 2-3년 전의 이야기지만 경주 지진이 발생하고 많은 수의 문화재들이 손상을 입었고, 첨성대 역시 그 불운을 100%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래도 워낙 기단부터 튼튼하고 정(井)자석의 배치 등으로 짜임이 좋은 구조물이기에 이렇게나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당시엔 해체, 보수이야기까지 나왔지만, 1400년 가량을 해체 없이 자리해 온 첨성대를 어느 누가 쉽사리 건들 수나 있으리. 그 어느 문화재청장이라도 쉽사리 용단을 내리기는 어려울듯하다. 현재는 그 정도의 심각한 정도가 아니라는 판단 하에, 기울어짐을 계측하는 장치를 배치하고 상시 점검을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첨성대는 월성지구 내에 있고 더 작게는 인왕동 고분군과 가까이 위치하고 있다. 첨성대 주변을 둘러보면 이미 고분밖에 안보인다. 비가 와서 곧장 차로 돌아가려다가, 못내 아쉬워 고분군을 짦게 나마 걷기로 했다.


경주 인왕동 고분군


  대릉원 일대(노서리, 노동리, 황남리 고분군), 인왕동 고분군은 여러 릉, 묘, 총이 군집해있는 경주의 명소이다. 금관총, 천마총, 황남대총, 호우총 등 유명한 곳이 몰려있는 대릉원에 비해, 내가 잠깐 걷다온 인왕동 일대는 규모가 가장 작은 고분들이 주로 모여있다.


답사가서 왕릉 같은 곳가면 항상 교수님으로부터 듣게 되는 단골 질문이 있다.


"릉, 묘, 총의 차이를 아는 사람?"


이미 두어번 이상 답사를 다닌 선배들이나, 입학 전부터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역덕후들은 단번에 콧방귀를 뀌는 수준의 질문이지만, 대부분의 신입생들은 어리둥절하거나 알 듯 말 듯한 표정부터 짓게 만드는 질문이다.



차이는 생각 외로 간단하다.


 : 왕이나 왕비의 무덤 ex) 내물왕릉, 선/정릉(성종과 비) 등

 : 왕이나 왕비의 무덤으로 추정되지만, 대상이 확실치 않고 특기할만한 유물이 출토된 무덤 ex) 장군총, 무용총 등

 : 왕족이 아닌 이의 일반적인 무덤 ex) 김유신 묘, 이순신장군 묘 등

( +  : 왕이나 왕비의 무덤으로 추정되지만, 발굴을 하지 않았거나 특기할만한 유물이 없는 무덤 ex)안악1호분 )

( + 조선시대에는  : 왕세자와 왕세자비, 공주 등 왕족의 무덤 도 있다.)



조선시대만 해도 왕족의 무덤은 풍수지리 조건에 부합하는 곳에 정해지거나 그에 맞지 않으면 천장까지도 불사하는 정도였는데, 경주의 무덤은 이렇게 경주의 도처에 밀집되어 있다는 게 큰 특징이다. 당시 신라의 서라벌도 월성(왕궁)이 있던 곳이 가장 중심부였을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서울 종로 인근에 해당했으므로 소위 노른자땅(?)으로 불리는 굉장히 중요한 입지였을 텐데 이렇게나 많은 고분들이 가득하다는 것도 의문 아닌 의문.




날이 좀 좋았더라면 많이 걸으며 대릉원 일대를 다 둘러봤을 텐데. 언젠가 또 올 테니까 아쉬움이 크진 않다.




  매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날씨도 예측하지 못하는데(기상청...) 하물며 우리 인생은 어떻게 계획대로만 살 수 있을까. 내 경주여행도 이렇게 중구난방은 아니었는데, 이미 꼬일대로 꼬인 코스 때문에 그냥 될 대로 되라며 네비 없이 드라이브를 했다. 스윽 지나가다가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주변에 차를 세우고 잠깐씩 둘러보고 이동할 요량이었다. 그렇게 지나가다보니 어쩌다 간판을 둘러보니 황룡사지, 분황사 인근. 애초에 갈 생각은 없었는데 이왕 지나치는 거 잠깐 내리기로 했다.


황룡사지에 위치한 경북유형문화재 제192호 경주 구황동 당간지주


  아마 불상, 탑, 부도 등 여러 석조 문화재를 통틀어, 보통 사람들에겐 가장 생소한 대상이 아닐까 싶다. 내가 다녔던 대학교 사학과 첫 답사 때, 강릉의 굴산사지에서 당간지주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거대한 석조물을 영영 모르고 살았던 게 당시로써도 신기했다. 생소한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에 따른 양식 변화나 역사적 의미도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불상과 탑은 아직도 직접적인 종교적 예배의 대상이지만, 당간은 그러하지 않다는 점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도 국가기관이나 학교, 대형 호텔이나 기업 본사엔 깃발을 다는 게양대가 있듯, 옛날 사찰에도 깃발(당)을 다는 깃대(간)이 있었다. 그 시절에도 사찰 입구에 세워져 멀리서도 사찰이 보이도록 하는 기능을 했다. 절에 내부에 세워져 행사가 있을 때, 다양한 깃발이나 괘불을 거는 용도로 사용된 괘불지주와는 조금은 다르다. 보통은 철을 주조해 만든 큰 기둥이었으나, 간혹 돌로 제작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한 기둥만으로는 오랜기간 버티고 서 있는 게 어려우니, 그 기둥을 지탱해주기 위해 양쪽으로 세우게 된 것이 '당간지주'이다. 아쉽게도 당간과 당간지주가 함께 남아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사진 속 경주 구황동 당간지주 역시 당간이 없이 기둥받침인 당간지주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분황사 근처에 있어 분황사 소속의 문화재였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넓은 황룡사지 내 갈대에 둘러싸여있으니 괜히 쓸쓸해 보이는 것은 기분탓이리라.


  아무리 생각해도 대학교 3학년 때 2007년에 쓰인 523p 짜리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를 거금 30,000원 주고 사서 공부했다는 게 지금도 소름이다.




  우리나라에 소나무가 참 많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절개나 굳은 의지를 상징하는 상록수로서 큰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나무이다. 예로부터는 시, 시조 및 수필과 그림의 대상이 되었고, 현재에 이르러서도 많은 사진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기도 하다.


  경주 배동 삼릉은 그 역사적 가치도 있지만 경주 남산 기슭에 위치하여, 소나무를 필두로 한 주변 경관 덕택에 유명해진 명소이다. 2018년에 불거진 미투운동에서 가해자로 지목되어 명성에 금이 간 그 사진작가가 남겼던 사진들 덕택에, 시내에서 제법 떨어진 거리임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의 발길을 불러 모은다.


사적 제219호 경주 배동 삼릉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으로 알려져있으나 아무래도 무덤의 주인 사이의 연도 차가 과하게 큰 바, 신뢰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견해이다.


  사실 이런 문화재는 역사적 가치 때문에만 오진 않는다. 우리나라에 그 많은 고분들을 두고 배동 삼릉에 올 만큼 삼릉 자체가 내게 주는 임팩트는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포기는 했지만, 소나무 사이사이로 비춰내려오는 빛줄기를 마음으로라도 그려보고자 왔던 곳.



  당연하게도 사진에서 보던 것처럼 나무 사이사이가 내어준 공간공간마다 강렬히 내리쬐는 햇빛이 만들어내는 콘트라스트 따위는 없었다. 다만 촉촉히 젖은 솔잎과 진한 흙이 풍기는 자연 내음의 조화, 진하디 진한 초록의 이파리들과 굽이치듯 자유분방하게 휘어진 적갈색의 나무기둥 그리고 흙이 이루는 보색의 강렬함은 새벽녘의 노오란 햇빛이 주는 멋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경주에도 바다가 있다. 문무대왕릉이 위치한 곳도 바다이니까. 무려 43km의 해안선과 20군데가 넘는 항구가 있으며, 나름의 동해안 해수욕장까지(유명한지는 모르겠다) 갖춘 해양도시이다. 아쉽게도 역사, 문화재 등의 키워드에 밀려 빛을 발하지 못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물론 경주에 바다도 있고 문화재까지 갖춘 곳도 있으니, 바로 경주양남주상절리군이다.


  아무래도 해안선을 따라 있다보니 경주 시내에서는 그리 가깝지는 않다. 이왕이면 감은사지와 문무대왕릉을 갈 때 한번의 코스로 가는 것이 동선상으로는 훨씬 효율적이다. 이러나 저러나 내가 갔을 당시는 이틀 내내 흐렸으니 더 좋은 선택이랄 것은 딱히 없었다.


  주상절리군이 수 km에 걸쳐 해안선을 따라 쭈욱 이어져있으므로, 차를 어디에 세워도 무방하다. 중간에 카페에 들러 차를 세우고 가도 되고, 공영주차장을 이용해도 좋다. 내가 차를 대고 걷기 시작했던 곳은 어느 작은 선착장. 그냥 해수욕장의 바다 냄새와 배가 정박하고 드나드는 선착장의 냄새는 확연히 다른 감이 있다. 여기서부터 해안선을 따라 '파도소리길'이 나있다. 안전을 위해 펜스가 설치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서 12-13군데의 다양한 모습을 한 주상절리를 만날 수 있다. 나는 날씨도 덥고 우중충해서 조금 걷다 돌아왔지만.


천연기념물 제536호 경주 양남 주상절리군


  천연기념물은 문화재의 범주에 속한다. 자연문화재이다. 고로 엄연히 문화재보호법의 적용 대상이다. 동물도 있고, 식물도 있지만 이렇게 지질광물도 대상이 된다. 폭포나 동굴, 해안구조, 공룡발자국(!) 등이 주요 지정 대상이다. 태초부터 이어져 온 자연의 신비야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만, 희귀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고 그래서 더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대상들이다. 심지어 주상절리는 그 이름 자체도 특이하고 예쁘다. 주상절리. 주상절리.



  길다란 블럭을 쌓아올린 것 같기도 하고, 필통에 각진 연필이 차곡차곡 놓여져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각형 기둥 모양의 성냥개비가 포개어져 있는 모양새처럼 보이기도 하고. 주상절리는 지각변동이 활발하던 시기에 화산활동의 결과로 이렇게 생겼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야 이렇게 멋진 모습으로 남아있으니 망정이지 얼마나 무시무시했을지 상상이 안 간다.


  사실 더 멋있는(가장 유명하기도 한) 주상절리는 부채꼴 모양을 하고 있다. 주변에 바위 틈으로 난 작은 향나무(소나무?)도 있고. 그땐 힘들어서 그냥 발길을 돌렸는데, 글을 적다보니 더 갔다올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파도소리길 한 가운데에 이 모든 광경을 편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도 갖춰놓았으니, 포항이나 경주, 울산 인근에 갈 일이 있다면 한 번쯤 둘러보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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