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 사단 본부의 영상제작병입니다.

2017년 3월의 언제

by 유범수

2016년도 말부터 2017년도까지

첫 외주를 시작으로 몇 가지의 영상편집 외주를 더 하게 되었고 생각보다 쏠쏠한 용돈을 벌고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일이 들어왔었는지 이제는 기억은 나지 않지만 조악한 편집실력으로 외주를 쳐내고 있었다.


요즘은 "크몽"이나 "숨고"같은 프리랜서들을 위한 플랫폼이 많아 작은 바이럴 광고들의 영상 외주를 받기 쉽지만 사실 그때는 그런 게 없어서 누군가의 영상을 만들어주면 또 누군가가 다른 회사에 소개를 해주고 그런 식으로 밖에 일을 받을 방법밖에 없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외주보다 공모전을 더 많이 참여해 볼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 생각으로는 불확실한 공모전 상금보다 미리 약속된 돈을 받는 외주라는 것이 더 좋아 보였다.

그렇게 알바와 영상공부를 병행하면서 지냈고,



군대를 가야 했다.

대학 동기들도 하나둘씩 군대에 가고 있었고, 당시 신문방송학과에 재학 중이던 나는 영상제작 특기병으로 지원을 할 수 있었다. 그때는 군복무 기간이 21개월이라서 3월에 입대를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이야기하는 때였고, 운이 좋게도 3월 군번으로 입대를 할 수 있었다.


논산훈련소를 거치고 배치받은 부대는 "52사단 본부근무대"라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뭐 하는 곳인지도 몰랐고 뭘 하게 될지도 몰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영상제작특기병으로 입대를 하더라도 자대배치가 하급부대로 가게 되면 해당 업무를 하게 될 일이 없어지고 삽질을 하게 된다고 들었다.


다행히도 나는 운 좋게 사령부 예하의 사단본부로 배치를 받았고 정훈사무실에서 전공을 살려서 군생활을 할 수 있었다.


주 업무는 행사나 훈련의 사진, 영상촬영 그리고 찍은 사진을 보정하고 영상을 제작하는 일이었다.

원래 하던 일인지라 적응이 빨랐고, 나한테 주어진 일만 잘하면 그 외에 다른 것들은 간부님들도 최대한 내 편의를 봐주셨다. 특히 부대에서 사단장(★★)님보다 선배였던 정훈참모님은 나를 아들처럼 대해주셨고 그 덕에 여러 가지로 덕을 많이 봤었다.


내 군생활을 지금 돌이켜보면

개꿀이었다.


물론 정훈업무 특성상 주말에도 출근할 일이 있었고, 행사가 있거나 영상제작이 힘들게 들어가는 시기면 야근을 하다가 새벽에 생활관으로 돌아가는 일도 있었지만, 누군가는 더운 날 뙤약볕에서 땀을 흘리고, 추운 날 추위에 떠는 것을 생각한다면 개꿀이 맞다.


심지어 큰 프로젝트가 하나 끝나면 참모님은 꼭 휴가를 챙겨주셨다. (물론 업무 특성상 휴가를 잘 쓰진 못했다. 이 쌓인 포상 휴가들은 말년에 54일 휴가로 원기옥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군대에서의 영상제작특기병은 내 개인적인 실력을 키우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군대에서 컴퓨터를 만져본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겠지만, 군대에서는 인터넷을 사용할 수가 없다.

정확히는 인터넷이 "내부망, 단독망, 인터넷망" 이 3가지 종류로 구분이 되어있는데,

대부분의 업무용 컴퓨터들은 내부망이거나 단독망이다.


이는 영상을 편집하거나 포토샵을 하는 컴퓨터도 예외가 없었는데,

이 말은 영상을 제작할 때 외부 소스가 필요하거나 플러그인이 필요해도 절대로 사용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냥 100% 수작업으로 내가 해내야 했다.


인터넷이 안 되는,

플러그인이나 프리셋이 하나도 깔려있지 않은

엄청 순결한 애프터이펙트와 프리미어로

참모(중령)님이 원하는 영상을 만들어야 했다.


사실 외부 인터넷망의 소스를 활용할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1. 인허가된 인터넷망에서 무슨 내부망 전송 프로그램으로 파일을 정보처에 보낸다.

2. 정보처에 전화를 해서 해당 파일의 검사를 거쳐 승인을 받는다. (승인가능한 확장자는 JPG, PNG 만된다.)

3. 승인이 되면 자동으로 내부망에서 파일을 내려받는다. 그리고 CD에 파일을 굽는다.

4. 구운 CD를 정보처에서 빨간 스티커를 받아서 붙인 뒤 편집용 단독망에 넣어서 파일을 옮긴다.

5. 왜 USB가 아니라 CD냐고 하면 군대 컴퓨터는 USB를 사용할 수 없다. 그냥 물리적으로 막혀있다. (CD는 쓰기가 안되기 때문에 가능하다 뭐 이렇게 들었던 것 같다.)


사실 대충 기억나는 절차로는 저랬던 것 같은데, 저것보다 훨씬 복잡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방법이 없었던 것 같다.


작은 그래픽이나 이펙트가 하나 필요하더라도 외부소스를 사용할 수 없기에, 애프터이펙트에서 손수 만들거나 그렸어야 했다. (덕분에 3D파티클을 많이 공부했었다.)


고퀄리티의 작업물을 하게 되거나 물량적으로 엄청난 영상을 제작해서라기보단 의외로 다른 방면(노가다)에서 실력을 향상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군대에서의 기간 동안 오히려 기본기를 더욱 탄탄히 할 수밖에 없는 환경 덕분에 지금도 덕을 많이 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영상제작병으로 있는 동안 영상만 제작하고 촬영만 하진 않았다. 기본적인 정훈업무들이 있었고, 그 업무들도 나름대로 재미를 찾아갔었다.


예를 들면 국방일보나 정훈도서가 사단에 들어오게 되면 가장 먼저 우리 사무실에 와서 내가 각 부대별로 분류하게 되는데, 우리 생활관에는 항상 내가 가장 빨리 갖다 줄 수 있었다.

또 우리 사단은 장병들을 위해서 개인정비나 주말에 사단 전체에 대중가요를 틀어주었고, 보통 그 음악을 들으며 운동을 하거나 축구를 했었다. (사단 본청의 야외 스피커 성능이 대북확성기만큼 컸다..)

그리고 그 음악리스트는 정훈실에서 정했었다.

보통은 Top100 차트를 따라가지만 곡 사이사이마다 내가 좋아하는 곡을 추가했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 나는 '청하'의 '롤러코스터'를 좋아했고, 그 선호는 부대원 모두에게 강요되었다.

물론 그 기간 동안에 우리 생활관인원들이 나한테 제발 청하노래 좀 그만 넣으라고 호소했지만 어림도 없다.


우리 생활관에 나랑 가장 친한 선임이 "나도 청하를 좋아했는데 너 때문에 이제 싫어졌어"라고 했다.


물론, 우리 생활관 사람들의 신청곡도 잘 틀어주고 있었고, 곡을 신청하는 입장에서 운동을 하다가 자신이 신청한 곡이 사단 전체에 나오면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껴했었다.

(라디오에 사연을 신청하는 기분이랬나..)



가장 기억에 남는 정훈업무는 증명사진 촬영이었다.


이게 사실 정훈실의 공식적인 업무는 아니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가장 중요한 업무였다.

왜냐하면 정훈병이 여러 간부나 병사들에게 존중과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모든 권력의 원천이었다.


간부들이나 병사들은 입대를 하고 나서 기초훈련이 끝나면 훈련부대에서 전산망에 등록하기 위한 증명사진을 찍는다. 보통 그 증명사진들은 갓 훈련을 마친 삭발머리에, 제대로 사진을 찍는 환경도 아닌, 죄수들 머그샷 찍는 듯이 대충대충 찍어 넘기기에 그 사진을 모든 군인들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진은 일반 병사들은 그대로 전역할 때 전역증에 들어가거나,

특히 초급간부들은 패찰과 인트라넷 들어가게 된다.


대부분의 병사나 간부들은 그래서 정훈병한테 부탁해서 인트라넷의 본인 사진을 전역하기 전에 새로 찍어서 교체를 부탁한다.

하지만 일개 병사가 고작 전역증에 들어가는 사진을 위해서 정훈실에 요청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랬다간 우리 보좌관님이나 문화장교님이 무슨 샤우팅을 하실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등병 때는 몰랐다.
왜 정훈병이라고 하니 선임들 모두가 나에게 그렇게 호의적이었는지.


물론 참모님이 부대 내에서 힘이 있으신 덕도 있지만 그건 참모님이신 거고

정훈병은 병사 나부랭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살길을 찾아야 했다.


인물사진 보정기술이나 조명에 대한 이해도 이때 참 많이 늘었다.


덕분에 나는 거의 사단 전체인원들의 증명사진을 찍어주고, 포토샵을 해줬다.

(군생활 기간 동안 2~300명은 해준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사건도 하나 있었는데,

내가 한창 일병 때 정비대의 한 중사가 거의 막무가내로 나에게 증명사진 새로 찍어달라고 강요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한창 바쁜 시즌이기도 했지만 그 중사는 내가 개인정비 시간에 자신의 증명사진을 찍어주는 것을 당연한 일을 하는 것처럼 부탁을 했었고, 막무가내의 강요가 너무 싫었다.


어떻게 골탕 먹일지는 생각보다 쉽다.

보통 간부들은 사진을 찍는 스튜디오로 오라고 하거나 아니면 내 개인정비 시간을 활용한다.

정훈실에 들어왔다간 정훈 보좌관(◆◆◆)님을 만나게 되면 탈탈 털리기 때문이다.

(소령 이상은 애초에 참모님이나 보좌관님께 직접 부탁한다.)

중사님에게는 "꼭 절대 정훈실로 오지 말고 몇 시까지 그 옆에 스튜디오에서 기다려주십시오."라는 말을 쏙 빼놓았고, 당연히 이 중사는 당당하게 정훈사무실을 들어왔다.

그리고 정훈보좌관님에게 증명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말했다.


야이 X끼야!!! 정훈공보실이 니 증명사진 찍어주는 사진관이야?!


쩌렁쩌렁 울리는 샤우팅은 당연히 예견된 일이었다.

그 중사님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울 것 같은 표정이었고, 사실 엄밀히 따지면 부대원의 증명사진을 찍어주는 건 정훈실의 공식 업무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보좌관님도 그 간부가 그냥 싫었던 것 같다.)



영상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하는데, 추억에 잠기다 보니 군대이야기가 너무 많아졌네요.
다사다난했던 정훈공보실이었지만, 제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DJI 오즈모액션은 중계송출에 사용하지 못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