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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림 Sep 06. 2021

내가 공공배달앱 최초 개발자였다(상)

자영업은 아무나 하나

난 로망이 생기면 꼭 해봐야 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런 열정이나 꿈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지만 그들과 나의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 실행력에 있다는 점이다.


우리 집 아파트 상가에는 치킨 냄새가 아주 맛있게 풍기는 치킨집이 딱 하나 있었다. 나는 항상 그곳을 지나면서 500cc 맥주 한 쪼기를 시원하게 들이켜는 상상을 하며 닭다리를 뜯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그래서 항시 나도 모르게 그 매력적인 치킨 냄새에 홀려 그 앞을 지나곤 했는데 어느 날 그 가게 문 앞에 '임대'란 푯말이 붙어 있다.


 어랏~ 이게 뭐지...

 

나는 곧장 가게로 들어가서 치킨 한 마리를 시키며 사장님께 물었다. 가게 내놓으셨어요? 그러자 사장님 왈, 3년 전 여기 치킨집 인수할 때 권리금만 3000만 원을 주고 들어 왔는데 이제는 너무 힘이 들어서 치킨 가게를 내놓은 거라 말했다.


그날부터 나는 이 가게가 얼마나 장사가 되고 있는 지를 살폈다. 꼭 가게를 인수라도 해 볼 사람처럼 말이지…  모니터링 결과 치킨 배달은 상당했고 매장 방문 손님도 꽤 있어 보였다.


그리곤 너무 쉽게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치킨집은 배달 위주니까 나는 닭을 튀기기만 하면 될 거야. 나는 이미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주말에는 교통방송에서 라디오 진행도 하지 않는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이제는 써먹는 거야. 보상받는 거지. 치킨집이 프랜차이즈이긴 하지만 부제를 부쳐서 장사를 하면 대박 아닌가!! "라디오 디제이가 운영하는 XX치킨" 


이런 생각에 마냥 들떠서 아내도 모르게 치킨집을 덜컥 계약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시드 머니 일부와 친구의 돈 일부까지 투자받아 일을 친 거였다.


드디어 오픈 3일을 남기고 아내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곤 절대 당신에게는 도움을 청하지 않고 아르바이트생과 둘이 열심히 해보겠다면서 큰소리까지 쳤다. 아내의 불안한 눈빛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나는 실행력 빼면 시체가 아니던가?


 하지만 순탄할 줄 알았던 치킨집은 오픈 첫날부터 문제가 생겼다. 배달 사원을 뽑아 놨는데 이 녀석이 전화가 되질 않는다. 참고로 나는 오토바이를 탈지 모른다.


거기다 다급한 마음에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어 보니 시동아 걸리지가 않는다. 오토바이 역시 거금을 들여 전 주인에게 인수를 했는데 오토바이 서비스센터에서 사람을 불러 물어보니 엔진이 다 눌어붙었다고 한다. 고치는데만 해도 상당한 금액이 든다고 말했다.


젠장... 일이 꼬이네. 치킨 배달을 어찌하면 좋을까?


이런 고민으로 짜증이 폭발할 즈음 어제 하루 종일 전화가 불통이었던 배달 사원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사장님. 어제 술을 너무 먹어서 연락을 못했어요. 죄송해요.


괘씸해서 당장 잘라버리고 싶었지만 오늘의 영업을 위해 어쩌지도 못하고 그냥 좋은 말로 괜찮다면서 그 아이를 가게로 불렀다.


비 오는 토요일. 정말 비가 오는 주말의 치킨 장사는 대박이다. 장사가 너무 잘된다. 이 날은 심지어 단체 주문까지 들어와서 주문을 감당할 수 조차 없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더욱 남들은 가게를 오픈하면 오픈 발로 장사가 잘된 다고들 하지만 나는 가게가 성업 중인 곳을 인수했기 때문에 이 매출은 오픈발이 아닌 영원할 거란 기대감에 사로 잡혔다.


역시 대박이야. 내 판단이 옳았어.


아내도 내가 가지고 들어간 현금 뭉치를 보고 깜짝 놀랐고 그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서 미안하다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밥까지 차려주는 아내가 고마웠고 난 소주 한잔에 피로를 녹이면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나는 정오가 될 때까지 일어날 수가 없었다. 몸은 천근만근이었고 편도선은 부어서 열이 펄펄 끓고 있었다. 오후 치킨 장사는커녕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요일은 자동으로 쉬게 되었다.


다음날 배달 사원이 또 결근을 했다. 진짜 화딱지가 났다. 결국, 배달이 안정적으로 해결돼야 치킨장사를 할 수가 있었기에 난 큰 결단을 내렸다. 배달은 내가 하고 미안하지만 아내에게 치킨을 튀기도록 부탁을 하자.


하지만 이때부터가 불행 끝 행복 시작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불행의 시작이 되었다. 이때 정말 이혼당할 뻔했는데 그 이유를 보자면 치킨을 시키는 고객들은 배달이 조금만 늦어도 난리가 났는데 내가 기동성이 없는 자동차로 치킨 배달을 하다 보니 항시 가게의

전화통에는 언제 치킨이 배달되냐는 전화로 불이 났다.


거기다 3 잡, 즉 평일 낮에는 회사를 운영하고 주말엔 공중파 라디오 진행을 하고 거기다 평일 오후엔 치킨 배달까지 해야 해서 라디오 DJ까지 그만두고 치킨집에 올인을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올인을 하면 할수록 점 점 손님을 줄어들었다.


왜? 처음보다 더 열심히 하는데 주문이 안 들어오는 거지?


매출이 떨어지는 이유가 궁금해서 선배 가게의 사장님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알고 보니 오프라인 광고 책자'쿠폰북'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게 뭐냐면 치킨을 시키면 안에 함께 들어가 있는 광고 책자를 말한다. 아파트 입구나 현관문에 걸어 놓거나 자석으로 붙여 놓는 책자를 한 번쯤은 보셨을 거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그 책자에 광고를 내야지만 매상이 오른단다. 그간 우리 집이 장사가 잘 된 이유도 그 책자를 전 사장님이 엄청 뿌려 놔서 그런 거라 했다.


뭐야... 배달앱도 하고 있는데 이걸 또 해야 해? 하지만 매상이 더욱더 떨어지자 울며 겨자 먹기로 광고 책자 즉 쿠폰북 업자를 불러야 했다. 근데 여기서 놀랐던 것은 한 개 책자만 해서는 안되고 여러 가지 광고 책자를 해야지만 매출이 올라간가는 사실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배달의 민족에 깃발 꽂기랑 비슷한다고 보면 된다. 배달앱은 3사를 다해도 한 달에 21만 원이면 광고가 가능했는데 오히려 이건 책 한 권당 30만 원씩을 달라고 하더라... 거기다가 5개 이상은 해야 광고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이걸 안 하면 매출이 나오질 않는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신청을 했다.


광고 책자를 총 5곳, 금액으론 한 달 150만 원 정도를 들였다. 그러자 정말 그들 말대로 잠잠했던 가게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신이 나서 이길 저길 골목을 다니면서 배달 오토바이 못지않은 실력으로 배달을 했다. 또 바빠지자 배달사원들 까지 충원을 했다. 욕심이 생기니 신호까지 위반까지 하고 달렸고 심지어 오토바이로 배달하는 사원과도 경쟁이 붙어서 네가 빠른지 내가 빠른지 내기를 하고 다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또 다른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당시에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의 지침대로 라면 점주들은 할당된 지역에서만 장사를 해야 했다. 하지만 몇몇 점주들은 배달 영역을 모호하게 해서 우리 지역까지 넘어와서 배달을 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가게의 매출은 감소했고 심지어 단골까지 빼가는 상황이 연출이 되었다. 특히나 배달앱을 이용해서 이런 편법을 저지르는 점주들이 있었다. 물론 지금이야 당연시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이를 지켜보자니 부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곤 본사에 이야기를 했지만 이는 본사의 문제가 아니라 배달앱의 문제라고만 했다.


지역이 나누어져 영업을 해야 정상인 것을 배달앱들은 같은 프랜차이즈라도 무한 경쟁을 시키려고 하는 듯했다. 그러니 여기저기 같은 브랜드들이 우리 지역까지 치고 들어왔고 서비스까지 뿌리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아주 당당하게 옆동네 점장이 우리 동네로 배달을 왔더라. 거기다가 우리 동네에서 배달을 하다가 딱 걸렸음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인사까지 건넨다. 이야...


정말 먹고살기 힘들구나…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다가 같은 아파트에 사는 프로그램 개발자를 알게 되었다. 나라의 지원사업을 주로 한다는 그와 가끔 가게에서 술 한잔씩을 하면서 우정 아닌 우정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술 만마시면 내가 치킨집을 하면서 느낀 문제점에 대해 열변을 토하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럼 자기가 프로그램 개발자니 아이디어가 있으면 한번 의뢰를 해 달라고 한다.


그러던 중 내가 병원에 실려 가는 일이 생겼다. 그 이유는 너무도 극심한 허리 통증으로 인해서였다.

나는 그 고통으로 신장에 쇄석술을 20차례 이상을 진행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고 결국 등 뒤를 뚫어서 신장에 1cm가량의 구멍을 만들어 플라스틱 관을 집어넣고 돌을 빼는 수술을 진행했다. 당시엔 치킨집도하기 싫었고 더 이상 이렇게 살기도 너무 싫었기에 그냥 수술을 하다 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수술을 했다.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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