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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

담담한 죽음

by 최호림

예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미리 유언을 작성하는 코너가 있었다. MBC에서 방영했던 '부엉이'였나? 지금은 그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PD와 절친이 되었지만, 그때를 떠올리며 나도 한번 유언을 남겨보려 한다.


사실 어제 왼쪽 가슴에 심한 압박감과 통증이 느껴졌다.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 식은땀까지 동반했다. 아마 지병이 있어서 더욱 심리적인 압박이 컸던 것 같다. 그래서 아내에게 혹시 내가 정신을 잃으면 119를 불러달라고 말했다.


자, 그럼 이제부터… 뭐… 거창한 유언이랄 건 없고, 그저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여 줬으면 한다. 너무 슬퍼하지도, 너무 기뻐하지도 말고 그저 담담하게 내 죽음을 인정해 주었으면 한다. 바람이 있다면, 나에 대한 나쁜 기억은 잊고 좋은 기억만 추억해 주면 좋겠다.


물론 인간적인 슬픔에 눈물이 날 수도 있겠지만, 내 경험상 그 눈물은 오래가지 않더라. 길어야 일주일? 그러니 가족들과 몇 안 되는 친구들 모두 내 죽음에 충격받기보다는, 나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추모해 주면 좋겠다.

특히 당신들은 아직 젊으니, 내 죽음을 자신들의 건강 문제에 빗대어 혀를 차며 '쯧쯧'거리지도, 일어나지도 않은 건강 문제를 미리 걱정하지도 말아라. 나는 내가 건강 관리를 못 해서 이렇게 된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신자로서, 또한 독실한 아버지의 신앙을 따라서라도 살아생전 미운 사람을 다 용서하고 가야겠지만, 절대 그렇게는 못 하겠다.


마지막으로, 내 두 아들이 있어서 행복하게 살다 간다. 내가 못다 한 것들은 너희가 이뤄주기를 바라고, 술과 담배는 절대 하지 마라. 나처럼 될까 두렵다. 이것은 내 아버지의 유언이기도 했는데, 나는 그걸 지키지 못해 이 사달이 났다. 그래도 담배는 너희가 아주 어렸을 때 이미 끊었다. 이런 이야기들 하지? "술은 마셔도 담배는 피우지 마라." 아니, 웃기지 마라. 둘 다 해로우니 다 하지 말거라. 살아보니 이 말은 애주가들이 자신들이 편히 술을 마시기 위해 만들어낸 말인 듯하다. 하지만 그 선택 역시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하는 것이니 너무 부담 갖지는 말고.


하지만 이것만은 강요다. 교회를 가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진심으로 믿고 의지하며, 잘한 일이 있으면 감사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회개하는 기도를 드려라. 이게 진심으로 내 유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짧은 생을 너무 치열하게 살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면 용서를 구하고 싶다. 하지만 끝내 용서하지 못하겠다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내가 먼저 사과를 건넨다.

특히 나를 믿고 따라줬던 직원들과 내 외로움을 함께 해준 친구들, 정작 너희가 외로울 때 내가 곁에 있어 주지 못해 미안했다.


그리고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아내에게 미안함과 감사함을 전한다. 크리스천이라 자부했지만, 아주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당신은 야생마 같은 나를 만나지 말고 편안하고 배려심 깊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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