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람은 살아야지
지난 4월1일 만우절, 나에게 뇌졸증이라는 위급 상황을 빌생했다. 그리곤 의식없이 누워있던 내가 3일 뒤 눈이 번쩍 떠지며 병원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런 위기를 넘기고 나서는 내겐 재활이 필요했다. 하지만 대학병원의 재활 병동은 대기인원이 많아서 입원조차 힘들었다. 그래도 담당 주치의의 도움으로 큰 대기 없이 입원할 수 있었다. 병원 입원을 원체 싫어하지만 하늘에 별따기인 곳에 들어간다니 나름 선택받은 자처럼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입원기간은 중증 환자든 경증환자든 정책 상 무조건 3주였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막상 병원에 입원하고 재활에 돌입하고보니 정말 미안함이 가득했다. 그 이유는 재활병동에 중증환자들이 너무많았고 거동이 불편한 그들을 어쩔수없이 지켜보면서 과연 내가 여기 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맘이 힘들었다. 나 때문에 중증 환자 한분이 이곳에 오지 못하고 재활시간을 잃어 갈 것을 생각하니 더 가슴이 아팠던 거다. 그리곤 주치의에게 이런 속사정을 말하니 화를 낸다.
최호림 씨, 당신도 중증환자야. 그런 생각 말고 그렇게 미안하면 열심히 재활을 해
그말을 듣고 소뇌경색으로 어지러움증이 심해 이족보행도 어려웠는던 나인데 그 미안함에 병실 침대를 벗어나 어지러움을 극복하기 위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또 재활사 선생님들의 조언도 큰 힘이 되었다.
호림 씨, 다른 환자들에 비해 아직 젊으시니 최대한 움직이세요. 호림 씨 넘어지려고 하면 저희가 다 잡아드리니 걱정 마시고요.
그래서 그날 부터 러닝머신에 온몸을 칭칭 묶고 쓰러지지 않게 고정하고 걷기 시작했다. 중증 환자의 한 자리를 빼앗고 내가 여기있음에 또 그 미안함에 열심히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3주간 지난 후에는 안정적인 이족보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쉽지 않았지만 의료진의 위로와 더불어 또 한사람의 노래가 큰 힘이 되었다.
바로 가수 신해철.
난 뇌경색을 심하게 맞고 골든타임도 놓쳤음에도 좋은 의료진을 만난 나는 어떤 형태로든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있는데 그는 나쁜 의료인을 만나 죽지 말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9년 전 의료사고로 유명으로 달리하고 말았다. 또한 중증 환자의 한 사람으로 그에게 감사한건 그를 통해 기존 의료법을 개정한 일명 신해철법이 생겼다는 점이다. 어찌보면 그는 죽어서까지도 신해철이란 영향력을 펼치고있다는 생각을 하니 더 안타까움이든다.
오늘도 난 또 다른 재활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뇌졸증은 완치가 어렵다는 점 그리고 그로인해 시시각각 변하는 내 우울한 마음을 다 잡고 그가 살아생전 만든 희망에 대한 노래들을 들으며 힘을 얻어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있다. 뇌졸중 환자는 발병 평균 6개월 동안 가장 큰 재활의 효과를 본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곧 그가 떠난 10월이 되면 나도 6개월이 된다. 아직은 불편한 몸이지만 그래도 해철이 형이 살아생전 했던 말을 떠올리며 오늘도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며 재활치료를 받아본다.
야~ 산사람은 살아야지~ 새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