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에 서야 하는지…

효도와 침묵 사이에서 무너진 한 가족의 기록

by 최호림

아이들이 자라면서 집은 점점 작아졌다.

벽이 움직인 것도 아닌데, 발을 옮길 때마다 부딪히는 게 늘어났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두 아이가 한 방을 쓰는 일은 흔했고, 작은 책상 두 개를 나란히 붙여놓으면 그럭저럭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졌다.

서랍은 반으로 나뉘었고, 그때까진 다툼도 반씩 나뉘었다.


아이들은 빠르게 커 갔다.

책상 위엔 언제부터인가 책과 노트가 쌓여 내려앉았고, 연필 하나가 서로의 신경을 건드렸다.

방 안의 공기는 점점 눅눅해졌다.

거실에서는 말소리가 사라졌다.

할머니가 있는 자리에서 아이들은 목소리를 낮췄고, 낮아진 목소리는 결국 방 안으로 숨어들었다.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녁상을 차려놓고 아이들 방 앞에 서서 잠시 멈췄다.

한숨이 길어질수록, 집 안 어딘가가 조금씩 꺼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괜히 짜증을 냈다.

말을 막으면, 생각도 함께 멈출 거라 믿은 듯이.


어느 주말 오후, 부엌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네 시아버지 병수발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지.

그러니 집안일은 내 방식대로 하거라.”


아내는 고개를 숙였다.

말이 아니라,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선택은 끝난 일이라 여긴 사람처럼.


새벽, 어머니는 성경을 펼쳐놓고 있었다.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했다.


“어머니… 아이들이 이제 방이 너무 좁습니다.”


말을 끝내자 공기가 멎었다.

어머니는 성경을 덮고 나를 보았다.


그래서?”

짧은 말이었다.

“나더러 나가라는 거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더 편히 지내실 수 있게, 따로 집을—”


“예전엔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살았다.”

어머니의 말이 먼저 닿았다.

“그걸 벌써 잊었니?”


그날 이후 식탁 위의 음식은 식어갔고, 말은 오르지 않았다.

어머니의 눈빛엔 고마움 대신 서운함이,

서운함 대신 의심이 자리 잡았다.

나는 그 사이에 서 있었다.

몸을 조금만 기울여도 누군가는 넘어질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 방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네 남편은 결국 내 말을 들을 거야.”


그 말엔 사랑이 없었다.

확신만 있었다.


잠시 뒤, 방에서 나온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울지 않았지만, 이미 많이 울어버린 얼굴이었다.

그 눈빛 앞에서 나는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 말했다.


“이제… 그만하십시오.”


짧은 말이었다.

어머니의 얼굴엔 분노가 번졌고,

아내의 눈에서는 오래 참아온 것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그날, 집은 여전히 좁았다.

하지만 나는 처음으로

어디에 서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작품은 작가의 기억이 배경이 되었지만 모든 인물, 사건, 지명은 저자의 창작적 산물이며 현실과의 유사성은 우연일 뿐입니다. - 최호림-



작가의 이전글신해철11주기, 공개 청원의 끝에서 내가 얻은 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