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선택 앞에서 갈라진 가족
아들의 입에서
“어머니, 이제 그만하시죠”
라는 말이 흘러나왔을 때, 순간 귀를 의심했다.
나를 향한 아들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고, 그 단호함은 오히려 칼처럼 날카로워 유방암 수술까지 했던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컥 치밀어 오른 말은 끝내 목구멍을 넘지 못했다. 대신 서늘한 공기 속으로 아득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과거, 아들이 방황하다 고교를 중퇴하고 감옥에까지 들어갔을 때.
남편과 나는 아들을 수렁에서 건져내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 쳤던가.
“제발, 이 녀석만은 사람 만들게 해 달라.”
수없이 되뇌며 기도했던 밤들.
내 인생을 전부 갈아 넣어 겨우 다시 세워 놓았는데, 이제 이 아이에게 나는 치워야 할 짐이 된 걸까.
억울함이 목을 죄어 왔고, 외로움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믿었던 아들이 나를 밀어내는 순간, 세상에서 마지막 남은 의지처마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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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에 먼저 들어간 남편을 뒤로하고, 나는 거실 불이 꺼진 소파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시어머니의 날 선 말들, 그리고 결국 효자인 남편이 어머니 편에 설 거라 예상했던 내 생각과 달리, 남편이 어머니에게 내뱉은 그 한마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난 13년 동안 아픈 시부모를 모셨지만, 단 한 번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던 사람.
나는 그가 나를 그저 부모 간병인 정도로만 여긴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날 만큼 고마우면서도 동시에 마음 한구석이 무너져 내렸다.
‘이제 시작이겠구나…’
남편의 결심은 분명했지만, 그 결심이 불러올 파장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오랜 세월 한 몸처럼 붙어 살아온 모자(母子)의 관계를 건드린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것도.
침실에 들어가니, 등을 돌린 채 누워 있는 남편이 보였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어깨를 보며 그 역시 잠들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고맙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대신 가슴 깊은 곳에서 미묘한 죄책감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원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갈등을 만드는 일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설령 그것이 나를 지키는 일이었을지라도.
결국 내가, 그 견고한 성벽과도 같았던 모자 관계에 돌을 던져 균열을 만든 장본인이라는 사실이 나를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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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의 마음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출렁였고, 집 안의 공기는 고요하다 못해 삭막했다.
이 균열은 쉽게 봉합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이제 그 균열 위에서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는 시간이 지나서야 드러날 터였다.
그날 밤,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시계 초침 소리마저 유난히 날카롭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곤히 자고 있었지만, 어른들 각자의 가슴속에서는 치열한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요동치고 있었다.
모두 알고 있었다.
이 고요 뒤에는,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는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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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시어머니는
당신이 가장 아끼시던 외출복을 입고 우리 앞에 나타나셨다.
평소엔 집 안에서도 편한 옷만 입으시던 분이었다.
다림질이 각 잡힌 회색 재킷, 오래됐지만 유행을 타지 않는 치마, 그리고 진주 브로치까지.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사람처럼, 아니 어쩌면 마지막 인사를 준비하는 사람처럼 단정했다.
“어디 가세요…?”
남편이 조심스럽게 묻자, 어머니는 신발을 고쳐 신으며 한 박자 늦게 말했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담담한 말투였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선이 그어져 있었다.
더 묻지 말라는 선, 더 다가오지 말라는 선.
남편은 부엌 문간에 서서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젯밤 그렇게 단호하던 사람과 달리, 그의 어깨는 이상하리만치 작아 보였다.
“어머니, 어디 가시는지는 말씀하고 가셔야죠.”
남편의 목소리는 낮았고, 애써 평정을 유지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머니는 그제야 돌아섰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분노도, 눈물도 없었다.
대신 오래도록 쌓여온 체념과 서운함이 겹겹이 배어 있었다.
“너희가 편한 쪽으로 해.
나도 더는 짐 되고 싶지 않다.”
그 말은 나를 향한 것이었고, 동시에 아들을 향한 말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붙잡으면 더 잔인해질 것 같았고, 놓아버리면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았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는 생각보다 컸다. 그 안에 수십 년의 모자 관계와 그 사이에 끼어 있던 내 시간이 함께 잠겨 들어가는 듯했다.
문이 닫힌 뒤, 집 안에는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번 침묵은 전날 밤과는 달랐다.
무언가가 이미 시작된 뒤의 침묵이었다.
남편은 한참 동안 현관을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어머니의 외출복 자락이 아직도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듯했다.
이 작품은 작가의 기억이 배경이 되었지만 모든 인물, 사건, 지명은 저자의 창작적 산물이며 현실과의 유사성은 우연일 뿐입니다. - 최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