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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Nov 22. 2017

대화 1

아즈마 히로키의 <약한 연결>을 읽고

1.

십여년전 졸업을 앞두고 적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친구와 함께 동해안에 다녀왔다. 삼척에서 속초까지 2박3일의 일정이었는데, 둘 모두 본래 수다스런 유형이라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특히 첫날 밤샘 기차를 탄 탓에 12시간 동안 수다를 떠들어야했다. 이미 수다의 소재가 거의 고갈되었음에도 우리는 남은 기간동안 끊임없이 떠들었다. 서울에 와서 다정하게 삼겹살까지 먹고 헤어졌다. 집에 오는 길에 문자를 주고 받았다. "다신 둘이 가지 말자!" 서로 크게 동의했다. 그런 젊은 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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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인디밴드에 있었다. 인디밴드라고 하면 상당히 묘한 뉘앙스가 느껴진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머리를 기르고, 샤기컷을 하고, 염색을 했다. 귀를 뚫으면 엄마에게 혼날까봐 귀찌를 몇개씩 주머니에 넣고 다녔고, 엄마 외투를 훔쳐 입었다. 점심부터 퀘퀘한 냄새가 나는 지하 공연장에 모여 콜라와 소주를 양주병에 섞어서 마셨다. 음악소리가 너무 커서 대화가 어려웠지만, 마음만은 편안했다. 하긴 굳이 얘기를 나눌 필요가 없었다. 지루해지면 피씨방에 가서 스타를 하고, 그 조차 지루하면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있었다. 특이한 점은 혼자가 아니라 늘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 모여서 딱히 무언가를 한 것은 아니지만... 늘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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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참 특이한 젊은 날이다. 우리가 누렸던 문화코드는 다른 친구들에게 참 이상하게 보였을듯 싶었다. 어쩌면 그런 '다름'의 느낌이 좋았을지도. 요즘 말하는 서브컬처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개념적 규정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서브컬처'라는 말이 왠지 어색하다. 왜냐면 난 그때 우리의 문화를 '서브'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오버컬처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사실이 그랬다. 지금 돌이켜보면 일종의 미국 문화를 선취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나의 문화를 누군가에게 알리고 공유할 생각도 없었다. 그냥 좋으면 서로 통하고 함께할 뿐이다. 확산되는 것 자체가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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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도 할수 없다. 시대가 그러니. 그냥 이름도 '서브컬처'라고 하자. 요즘의 서브컬처는 도무지 서브컬처인지 잘 모르겠다. 너무 세련되다. 때론 '서브컬처' 자체가 선택 가능한 문화 코드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그런 측면이 있다. 과거 우리 시절에도 인디밴드문화가 주목받으면서 어떤 밴드가 테레비 음악 방송에 출현했다. 그런데 그 미친놈들이 생방송 중에 바지를 내렸다. 결국 그 미친놈들 때문에 우리 모두가 미친놈이 되었다. 그래서 '서브컬처'가 된 것일까... 강한 의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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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젊은 시절 즐기던 문화도 취미는 아니었다. 딱히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도 친구들도 그렇게 있는게 곧 삶 그 자체였다. 다시 돌아와보니 지금도 그렇다. 여전히 딱히 취미가 없다. 때문에 별로 즐기는 문화도 없다. 그냥 주어진 상황을 살아갈 뿐이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상황이란 가정과 직장 그리고 디자인이다. 이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나중에 이 상황에 또 어떻게 개념지워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도 나는 지금처럼 개념화된 상황을 의아해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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