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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Dec 01. 2017

물리학과 언어

<비고츠키, 생각과 말 쉽게 읽기>를 읽으며

"글말(글쓰기)는 대화자가 없는 담화이다. 그것은 흰 종이와의 대화이며 가상의 개념화된 대화자와의 대화이다. 글말은 어린이에게 이중의 추상화를 요구한다."

<비고츠키, 생각과 말 쉽게 읽기> 비고츠키연구회, 17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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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은 언어의 다른 양태라고 생각해 왔다. 즉, 말과 글은 소통방식이 다를 뿐 같은 언어형식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말하듯 글을 쓰라"라고 말하곤 했다. 내가 선생님들에게 그렇게 조언받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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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비고츠키는 말과 글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된다고 말한다. 위 인용글에서 보듯, 말은 생각의 추상화 과정이고, 그리고 글은 말의 추상화 과정이다. 즉 글은 생각의 이중 추상화인 셈이다. 물리학으로 치면, 위치변화를 미분하면 속도가 나온다. 속도를 다시 미분하면 가속도가 나온다. 뉴튼의 제2법칙 F=ma에서 'a'가 바로 가속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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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니츠와의 논란은 있지만) 뉴튼은 미분방정식을 발견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방정식의 핵심은 속도에 있다. 뉴튼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미분해 가속도라는 개념을 창출했다. 그렇게 만유인력의 법칙을 만들었다. 때문에 뉴튼의 위대함은 '가속도(a)'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후일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인 E=mc2에서 핵심은 '빛의 속도=c'에 있다. 아인슈타인은 뉴튼의 가속도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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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도를 다시 적분하면 속도가 되고, 속도를 적분하면 위치변화가 나온다. 이를 생각과 말, 글에 적용할 수 있다. 글을 해석하면 말이고, 말을 해석하면 생각이다. 가속도와 글, 속도와 말은 모두 시간변화이고, 위치와 생각은 모두 공간변화이다. 가속도를 통해 위치에 도달하는 과정과, 글을 통해 생각에 도달하는 과정은 시간과 공간적 측면에서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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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우리는 말과 글이 전혀 다른 맥락에서 존재한다는 점을 알게 된다. 말과 글은 언어의 다른 양태라기 보다는 추상화의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기에 글은 말을 추상적으로 상징적으로 집약하는 과정이기에 "말하듯 글을 쓰라"는 조언은 친절하지만 맞는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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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두가지 생각과제가 떠오른다. 첫번째는 말의 발음을 그대로 옮기는 표음문자(알파벳)과 말을 추상화시킨 표의문자(한자)의 차이점이다. 둘째는 가속도에서 한발 더 나아간 아이슈타인의 빛의속도를 적용해, 글에서 한발 더 나아간 소통 양식이 무엇이냐이다. 그걸 알면 빛의 속도로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그렇담, 소통의 힘(F)도 에너지(E)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혹시 영화 커넥트에서 보여준 외계인의 문자가 그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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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가지 생각과제가 엉키기 시작한다. 혹시 커넥트의 문자가, 빛의 속도와 같은 문자의 원시적 형태가 한자에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집트의 벽화과 문인화들의 서화가 서로 뒤엉켜 생각을 어지럽힌다. 그리고 좌절한다. 그것을 말로 글로 추상화하지 못하는 나의 능력부족과 한계를 절감하면서... 그냥 비고츠키의 유용한 조언을 하나 더 인용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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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역동적이 상황의 경로에 의해 규제된다. 반면 글의 경우 우리는 상황을 창조해 내야 하거나 또는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상황을 사고로 표현해야 한다. 글의 사용은 상황에 대한 근본적으로 다른 관계를 전제로 한다. 그것은 더 자유롭고 더 독립적이며 더욱 의지적이다"(같은 책, 1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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