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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Nov 22. 2017

대화 4

아즈마 히로키의 <약한 연결>을 읽고

4.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중시하는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대화'다. 약한 연결에 있어서도 그렇다. 공동체에 있어서도 그렇다. 약한 공동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대화'다. 왜냐면 강한 공동체는 '대화' 자체가 필요 없으니까. 사실 연애할때 나는 와이프와 몇시간씩 대화를 했다. 결혼 후에는 거의 대화가 없다. 내 옆에 있는 직장 동료와도 그렇다. 난 그들에게 매일 마추치는 과묵한 선배일뿐이다. 그런 것이다. 익숙해지면 대화가 사라진다. 역설적으로 익숙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물론 잘 안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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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에서 친구와도 2박3일간 있었지만 대화는 별로 없었다. 끊임없이 수다를 떨 뿐이었다. 수다는 감각소재가 바뀌면 언제든 가능하다. 좋다. 나쁘다. 이상하다. 병신같다. 닥쳐. 집어쳐. 저리가. 뭐할까. 등등 이런 말들이 오가는 것이 바로 수다다. 서브컬처로 규정되어버린 과거의 친구들과도 비슷하다. 이미 익숙하고 수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기에 그닥 대화가 필요없다. 그냥 수다를 떨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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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는 일종의 소개팅이다. 어떤 설레임이 있다. 그 설레임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먼저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 사람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메타적으로 정직하게 스스로를 평가하게 된다. 그리고 존중이다. 호감가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최대한 경청하고, 거기에 반응한다. 소재도 다양한데... 소개팅을 잘 안해봐서 뭐가 다양하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다양할 것 같긴한데, 소개팅을 많이 해본 사람들은 다양하지 않다고 하는 것을 보니, 이 또한 소개팅이란 개념과 너무 강한 연결을 갖고 있는 탓일 아닐까 싶다. 이런 점에서 능수능란한 소개팅 상대보다 차라리 나처럼 경험이 없고 수줍어 하는 사람이 대화의 상대로 더 나을 수 있다. 사실 처음 만나면 다 그렇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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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참여하는 세미나의 주제가 바로 '대화'다. 세미나에서 나오는 내용을 듣다보면 우리에게 대화는 불가능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갖게 된다. 왜냐면 인류는 지금까지 대화를 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대화를 시도한 사람이 소크라테스이고 살롱의 마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최후는 씁쓸하다. 소크라테스는 독살당했고, 살롱의 마담들은 자랑쟁이가 되었다. 더욱 씁쓸한 것은 살롱과 마담이 천박한 주점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17세기 살롱 문화를 주도한 랑부이에 부인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저승에서조차 이불킥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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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키를 읽어서 수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며 관광이라는 단어를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관광가서 검색어를 찾지 말고, 관광가서 대화를 한다면... 어떨까. 샴쌍둥이처럼 붙어다니는 친구나 가족이 아닌 전혀 생각지 못했던 다른 분야의 사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일상과 완전히 다른 공간에서 친숙하게 동행한다면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까. 과연 대화가 가능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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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대화를 위한 매뉴얼, 메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매뉴얼과 메뉴를 들고 관광객을 모집해서 삼삼오오 관광을 다녀오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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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에서 읽는 역사학자 시어도어 젤딘은 대화의 화신이다. 그의 역사연구 자체가 대화이다. 사실 대화보다는 고백성사에 가깝지만. 심지어 옥스포드 뮤즈라는 대화 중심의 교육의 장을 만들었다. 알랭드 보통이 이 학교를 벤치마킹해서 인생학교를 시작했는데 잘 못한듯 싶다. 아무튼 젤딘의 뮤즈에는 매뉴얼과 메뉴가 있다고 한다. 나는 영어를 못해 그것을 찾지도 못하고, 정작 봐도 잘 모를 것이다. 누군가 빨리 그것을 찾아 소개해 주었으면 좋겠다. 대화다운 대화를 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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