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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Dec 01. 2017

혼잣말과 대화

비고츠키 <생각과 말>에서 '생각'은 개인적이고, '말'은 사회적이다. 즉 생각이 일종의 혼잣말이라면, 말은 일종의 대화에 해당된다. 비고츠키는 피아제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데, 그의 비판은 피아제가 사태를 거꾸로 놓고 분석했다는 점에 집중된다. 가령 피아제는 인간의 언어 발달이 자아중심적인 생각=혼잣말에서 사회중심정인 말=대화로 발달한다고 결론 지었다. 반면 비고츠키는 거꾸로 인간의 언어는 말에서 생각으로 발달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이를 검증했다. 때문에 비고츠키의 의견에 더 힘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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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의 말이 대화에서 혼잣말로 발달한다는 그의 주장에서 중요한 포인트를 하나 발견했다. 바로 성인들이 대화가 안되는 이유다. 더불어 50대가 넘으면 어린시절 동창을 즐겨 만나는 이유도. 자아중심적 혼잣말에 빠진 성인들은 다시 대화 중심으로 돌아가길 원하는데, 대화가 가장 활발했던 시절은 바로 초등학교때가 아닐까 싶다. 정확히 말하면 7-12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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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는 비고츠크가 주장하는 소리내어 말하는 자아중심적 말이 소멸되어 가면서 혼잣말로 전환되는 시기다. 이 시기 아동들은 성인에게 또 또래들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언어를 배우고 익힌다. 그 학습의 과정 대부분 대화로 진행된다. 어쩌면 우리가 그 시절이 그리워 하는 이유는 바로 대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언어 학습으로서의 대화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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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나는 위 단락을 쓰면서 떠오른 이가 한명 있는데, 바로 공자다. 그는 '학습'으로 논어의 첫 구절을 시작하는데, 놀랍게도 그 책은 몽땅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 공자 뿐만 아니라 붓다도 플라톤도 모두 대화로 학습을 진행한다. 플라톤은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대화에 깊은 인상을 받은 듯 싶다. 비록 그의 사상은 소크라테스와 엇나갔니만. 이 말인 즉 대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바로 '학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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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는 도서관 강의를 다니고 있다. 요즘 도서관은 거대한 학습 공간이 되었다. 취업 목적의 대학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대부분 학구열 넘치는 중장년층이 중심이 된다. 도서관 사서분들 왈 오전은 어린이, 오후는 중장년의 학습터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런 탓에 도서관에 들어설때마다 과거 조선의 서당과 서원이 이랬을까 상상한다. 거대한 학습 공간이 되어가는 이 시대의 도서관, 어쩌면 거기야 말로 대화의 로도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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