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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Jan 16. 2018

북방과 남방의 예술

언젠가부터 북방은 이미지(감각)에 예민하고, 남방은 문자(개념)에 집착한다는 선입견을 갖기 시작했다. 이 선입견을 가지고 미술을 보면 참으로 새로운 느낌들을 갖게 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의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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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네스크는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서 잉글랜드로 이어지는 11-12세기의 대표적인 건축-미술 양식이다. 이름에서 짐작하다시피 로마의 양식을 차용한 것이다. 이 지역은 로마의 변방으로 딱히 로마라 말하기 어려운 지역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로마의 양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로마네스크 양식을 만들었다. 로마네스크는 상당히 개념적이고 엄격한 양식이다. 이미지에 익숙한 이들이 개념적인 로마 양식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미적 양식을 구축했다는 점은 참으로 대견한 일이다. 자신과 다른 외부의 다양성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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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개버릇 남 못준다. 채 100년도 되지 않아, 이 지역에는 고딕 양식이 등장한다. 고딕은 로마네스크의 기술적 발전이다. 화려한 스테인글라스은 과거 로마의 모자이크 기법을 닮았다. 인물과 닮은 조각도 로마의 조각 방식이다. 이렇듯 고딕양식 또한 화려했던 로마의 전성기 시절처럼 이미지를 전면으로 내세운다. 로마네스크는 로마의 기술만 차용했을뿐 화려함은 배제했다. 다소 개념적인 로마네스크는 빠르게 이미지적인 고딕으로 재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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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의 고딕 양식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조각이다. 로마시대와 같은 닮은꼴 조각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3D의 닮은꼴 조각을 2D의 회화로 재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어려운 작업을 관철시킨 이가 있는데, 바로 그 유명한 피렌체의 자랑 조토 디 본도네이다. 피렌체는 베네치아랑 가깝고 베네치아는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 현재는 이스탄불)과 가깝다. 그리스어를 쓰는 동로마의 비잔틴 사람들은 오랜시간 남방의 전통, 즉 그리스-로마의 헬라스 전통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전통을 섭렵한 조토는 닮은 꼴 조각을 회화적 기법으로 재현해 냈다. 이 시기가 바로 14세기 초입으로 그 유명한 르네상스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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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다시 르네상스로 이어지는 미술사적 흐름을 놓고 보면 사실상 르네상스는 11세기 북방의 로마네스크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고딕을 거쳐 남방까지 내려오는데 200-300년이 걸렸다. 14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15세기에 걸쳐 이탈리아에 안착하고, 다시 북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방으로 올라간 르네상스 미술은 더욱 화려해진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바로크이다. 뵐플린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프랑스의 바로크의 차이를 조명해 '미술사의 기초 개념'을 정초했다. 즉 그는 로마 양식을 수용한 북방과 남방의 미묘한 차이를 인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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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바로크에 중국풍이 더해진 것이 로코코가 아닐까 싶다. 이 흐름은 동서양의 교류이니 북남 문명의 교류와는 느낌이 좀 다르다. 동서 문명의 교류는 좀 싱겁다고 할까. 약간 동종교배같은 느낌이다. 뭔가 새로운 것이 태어나기 보다는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북남의 교류는 역동적이다. 아니 열정적이다. 확실한 이종교배 같은 느낌이다. 무엇이 어떻게 튀어나올지 전혀 파악하기 어렵다. 마치 우리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내가 태어났듯이. 때문에 선입견이란 것을 알면서도 북방과 남방의 미술적 교류에 자꾸 집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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