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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Jan 28. 2018

2018, 윌리엄 모리스

내년 2019년은 여러의미가 있는 해이다. 민족적으로는 3.1운동이 일어난 해이자, 국제적으로는 3.1운동의 영향을 받은 중국 5.4운동이 일어난 해로 동북아 식민지 민중운동의 봉기가 시작된 해이다. 이 민중운동의 흐름은 서풍의 영향이지만 정작 서양은 민중혁명보다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챙취하는 성격이 강했다. 반면 노동자 개념이 없는 동양은 혁명의 바람이 거셌다. 러시아의 볼세비키 혁명(1917년)은 민중이라는 다이나마이트에 불씨를 댕겼다. 그러나 그 흐름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부분의 운동은 이벤트에 그쳤고, 민중혁명의 원조 소련조차 70년밖에 버티지 못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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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혁명의 바람은 정치만이 아니라 생활에도 불어왔다. 전통적 삶의 양식에도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바로 공예혁명이다. 소련의 볼세비키 혁명이 있다면 공예에는 1919년의 바우하우스가 있었다. 그렇다. 2019년은 바우하우스 100주년이다. 바우하우스는 근대 모던디자인의 원조격이니 디자인 분야로서는 모던디자인 100주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바우하우스는 현대 디자인대학의 원형이라는 점에서 근대디자인교육 100주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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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지난주 경향신문에 게제된 [최범의 한국 디자인 뒤집어 보기](6) "조선 공예, 보존에서 판매로…일제강점기 관광기념품으로 전락"은 곱씹어 읽어볼만한 글이다. 이 글은 한국디자인 100년을 압축해서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글을 몇차례 읽으며 필기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과 무엇이 달랐기에 이렇게 되었는지 며칠간 곱씹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1172100005&code=960202&utm_campaign=share_btn_click&utm_source=facebook&utm_medium=social_share&utm_content=khan_view#csidx7c5bc0526395707aeac773b284904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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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을 요약한 글을 다시 요약하면 이렇다. 근대에 미술공예운동이 있었다. 이 운동은 양면성을 띈다. 한면은 미술이 공예가 되는 길이고, 다른 한면은 공예가 미술이 되는 길이다. 이 운동을 이끈 윌리엄 모리스는 미술이 공예가 되는 길을 강조했다. 그의 영향을 받은 북유럽 정부는 적극적으로 공예에 미술을 접목시키는 노력을 했다. 그렇게 현재의 북유럽 디자인이 탄생했다. 모리스를 비판적으로 수용한 야나기 무네요시는 일본에서 민예운동을 벌였다. 야니기의 운동과 이론은 현대 일본 디자인의 모태이자 경전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바우하우스를 시작한 일군의 표현주의 미술가들도 모리스의 의지를 앞세웠다. 모두 미술의 공예화를 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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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식민지 국가가 그랬듯이 한국은 전혀 반대의 길을 갔다. 공예의 미술화를 꾀한 것이다. 일상의 공예가 생활과 단절되고 미술이 되었다. 공예의 미술화가 진행된 것이다. 그 흐름은 현대 공예교육 나아가 디자인교육에 이어졌고, 현재에 이르러 정신적 공황을 낳고 있다. 많은 공예가와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역할에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이유도 이런 흐름탓이다. 역설적으로 이 혼란은 현대 한국디자인의 역동적 '힙'함을 낳고 있다. 많은 세계적 디자이너들이 한국 디자이너를 주목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동적, 역설적 흐름도 100년을 지나니 나름의 가치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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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어떻해야 하나. 내년은 여러모로 민중+디자인+교육 100주년인데 2018년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거꾸로 된 상황을 어떻게 다시 선순환 구조로 바꿀 수 있을까. 비록 잘못된 길을 걸었지만 이제야 비로소 나름의 가치를 발휘하기 시작한 장점들을 어떻게 살려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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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 계절이 순환하듯 어떤 극단에 이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현대 디자인분야 양면은 모두 극단에 이르렀다. 미술의 공예화를 완성한 디자이너들은 미술화된 한국디자인을 주목하고, 공예의 미술화를 꾀한 한국 디자이너들은 공예화된 외쿡디자인을 부러워한다. 이런 반전적 상황은 모두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바로 미술공예운동이 시작된 그 점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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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떤 제안을 하고 싶어졌다. 바로 '윌리엄 모리스'이다. 그러니까 2019년 바우하우스를 돌아보기 앞서, 2018년 윌리엄 모리스와 그의 시대를 주목하고 공부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는 윌리엄 모리스 관련 작품이 많다. 희안하게도 윌리엄 모리스 관련 연구와 책은 가장 빈약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세계적으로 많은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바로 한길사 윌리엄 모리스 미술관에. 나는 이런 상황도 반전시키도 싶다는 생각이다. 사상에서 작품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 사상으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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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모리스! 먼로 비어슬리는 <미학사>에서 그가 '예술의 사회적 책임'을 인류 최초로 주장했다고 말한다. 나는 미술공예든 바우하우스든 이런 역사적 사건보다 21세기 예술과 디자인에 있어 그의 사상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때문에 이 시점에 있어 윌리엄 모리스를 말하는 것은 아주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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