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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Jan 21. 2018

시와 이미지

어제 함께 책을 읽었던 벗들과 뜻깊은 자리를 가졌다. 벗들 중 한명은 시인이다. 나는 그가 참여한 시낭독회 팜플렛을 보았는데, 생각보다 디자인이 뛰어났다. 물론 전문디자이너로서 지적하고 싶은 점도 있었지만, 그 지적을 침묵시킬만큼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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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플렛에는 다양한 시가 쓰여져 있었다. 그런데 시마다 문장의 나열 방식들이 각기 달랐고, 그것을 의식해서 편집되어 있었다. 흥미로워서 질문했다. "시의 쓸때 이것이 편집되는 이미지를 의식하나요?" 그런데 이런 나의 질문은 굴절되었고, 논의는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가령 시인은 이미지를 의식하면 안되나? 하는 이상한 반문도 있었다. 물론 그런건 없다. 그건 시인 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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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궁금했을 뿐이다. 시인은 노래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쓰는 사람인지. 물론 문자가 읽기와 보기 모두를 포괄하기에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는 다르고 그것은 보통 별개로 인식되니까. 가령 음악의 가사를 작곡한다고 할때 그 작사가는 운율을 따지지 가사가 나열되는 이미지를 의식하지 않는다. 혹은 편집자가 글줄을 나열할때 의미를 의식하고 전체적 방향을 구상하지만 일일이 내용을 음미하고 의식하며 글줄 이미지를 만들지 않는다. 좀 다른 경우긴 하지만 사람은 글을 읽을때는 글꼴이 보이지 않는다. 반면 글꼴을 볼때는 글이 읽히지 않는다. 여기서 읽히지 않는다함은 추상-논리적 사고보다 느낀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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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시인은 어떨까. 여러 해석이 있지만, 그 유명한 이상의 시는 읽기보다는 쓰기에 가깝다. 아니 엄밀하게 짓기이다. 이상은 일본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그는 시를 쓰기 보다는 문자를 가지고 지었다는 느낌이다. 문자가 의미이기 보다는 자재라는 느낌이 있다. 이런 접근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건축적 관점으로 그의 시를 보면 좀 이해가 간다. 그래서 늘 불만이 있는데, 편집자들이 그의 설계를 이해하지 못해 제대로 편집=시공되지 못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해는 간다. 그들은 습관적으로 문자의 의미를 찾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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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접근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08년 이탈리아 미래파는 시인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들은 시를 음성이 아닌 시각으로 보았고 그렇게 편집했다. 그들에게 시는 읽기 보다는 보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우리는 알다시피 본래 시는 보기 보다는 읽는 것이다. 한줄한줄 읽으며 음미한다. 마치 커피나 차를 홀짝이듯. 커피와 차는 향이 중요하듯, 시도 소리가 중요할듯 싶다. 그래서 좋은 목소리를 가진 분이 시를 낭독하면 훨씬 좋겠다는 느낌이다. 혹은 시를 쓴 시인이 낭독하는 것도 흥미롭다. 어쨌든 그의 몸에서 나온 작품이니 저작자가 가장 느낌을 잘 살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긴다. 일종의 원본 같은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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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 같은 이는 생전 보지도듣지도 못한 '시낭독회'의 팜플렛이 흥미로웠다. 시가 가진 양면, 읽기와 보기에 호기심이 생긴건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 자리에서는 이렇게 장황하게 나의 의견을 말한 상황이 아니라, 오해가 있었고. 나는 결국 의문을 해소하지 못했다. 그냥 요즘 시인들은 이미지를 의식한다는 대답을 듣는 것이 만족했다. 하긴 우리 시대는 이미지가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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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월터 옹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를 읽고 있다. 저자는 언어 문화를 구술-문자-활자-전자로 구분한다. 나는 패턴상의 문제로 문자와 활자 사이에 분명 뭔가 있을듯 한데 아직 딱히 모르겠다. 이럴땐 그냥 괄호를 친다. 구술-문자-( )-활자-전자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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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5세기 즈음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 전환은 정말 격변이다. 그래서 축의 시대일까... 아무튼 이 변화를 읽는 것은 너무 흥미롭다. 다만 안타까운건 문자를 이미지로 볼 수 밖에 없는 한계이다. 이미지를 다루는 입장에서 '이미지문화'도 있으면 좋을텐데... 이런 점에서 닐 포스트먼이 참 좋았다. 그는 현대를 '이미지 시대'라고 말하기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이지만. 아무튼 나는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는 생각이다. 불러주어야 의미가 생기니까. 그래야 존재하니까. 꽃이든 똥이든. 이런 점에서 저 괄호 안에 '이미지문화'를 넣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들지만 꾸욱 참는다. 확신이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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