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뜻하지 않게 대학원 면접을 보았다. 요즘은 대학원 진학이 드문편이라 예전처럼 크게 긴장하지 않는다. 결과 또한 대부분 긍정적이다. 그래도 형식과 절차는 필요한 터라 의례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내 경우 주로 "대학원에 진학하면 무엇을 공부하고 싶나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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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나온 책 <역사는 디자인된다>를 나의 학사논문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 말은 바로 석사 과정을 연상시킨다. 지난해 일년을 쉬었으니 이제 나 또한 석사에 진학해야 한다. 때문에 위 질문은 사실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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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학사도 석사도 진짜 대학과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냥 내 마음속 가상 대학일 뿐이다. 나는 대학시절 거의 놀았기때문에 공부를 좀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그 결심이 선 것이 5년전이다. 당시 나는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를 쓰면서 엄청난 벽에 부딪쳤다. 디자인은 대충 알겠는데, 디자인을 둘러싼 세상, 그 세상이 돌아가는 맥락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량한 지식으로 디자인을 포장하는 행위는 그만두고, 모든 것을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부 계획을 짜서 주로 철학과 역사, 구체적으로는 정치-경제-사회-과학 분야의 고전 등 주요 서적들을 읽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역사 분야 독서가 많아졌다. 결국 내가 선택한 전공이 '역사철학'이란 사실을 깨달았고, 결국 나만의 독특한 역사적 관점을 획득했다. 그 보고서가 <역사는 디자인된다>이다. 어설픈 공부가 출판까지 이어진 것은 정말 천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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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석사과정으로 무슨 전공을 선택할까 고민하고 있다. 인류학과 미술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최근에는 미술사로 마음이 굳어진다. 이상하게도 최근 미술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고, 학사과정에서 획득한 역사철학과도 연결지점이 보인다. 무엇보다도 미술은 내 업인 디자인과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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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미술을 둘러싼 여러 개념들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 개념을 가시적으로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할듯 싶다. 이 작업은 지난 5년의 지난한 읽고쓰기의 과정, 각종 분야의 개념을 내 언어로 바꾸는 각고의 과정보다는 훨씬 재밌을듯 싶다. 일단 텍스트가 아닌 그림이라는 점에서 부담도 덜하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미술이 디자인과 인접분야라는 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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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장점이기도 하면서 큰단점인데, 장점은 뭔가 익숙하다는 점이고 단점은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다. 역사철학은 나와 전혀 다른 분야라 관점의 제약이 거의 없었는데 미술사는 아무래도 선입견이 있는터라 많은 제약을 받을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석사 과정은 이 제약의 틀을 깨는 것이 목적이 될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