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여러 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여경 Feb 01. 2018

이데아

이데아. 참 아리송한 말이다. 그 의미는 아주 복잡하다. 극도로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플라톤 철학을 연구하는 이들이라면 관련 서적만 해도 방한칸을 채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진작이 이 말을 깊숙히 이해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저 내 방식대로 쉽게 이해하는 정도로 만족한다. 

-

나에게 이데아는 그냥 시각적인 것이다. 에릭 해블록의 <플라톤 서설>은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의 전환에 대해 잘 서술하는데, 이데아 개념이 등장할 당시 문자문화가 내면화 되었다는 생각이다. 나는 이 책을 수년전에 읽었는데, 최근 월터 옹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을 읽으며 어느정도 확신하게 되었다. 월터 옹 또한 해블록을 많이 인용한다.

-

이데아는 영어로 form이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할때 형태의 영어적 표현이 form이다. 본래 해석은 형태보다는 형상이다. 이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론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그냥 상식적으로 '보이는 것, 즉 시각적인 것을 상상하면 된다. 보이지 않은 말이 문자가 되면서 보이게 되듯, 보이지 않는 기능이 형상이 되어 나타난다.

-

기능의 최고봉은 역시 우주창조다. 우주를 창조하신 분의 말씀(로고스)를 형상으로 표현할수 있을까? 이런 생각에 도전한 이가 플라톤이다. 물론 그는 피타고라스를 통해, 피타고라스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동방 문명에서 어느정도 영향을 받았겠지만. 어쨌든 플라톤은 그의 말년 저작 <티마이오스>에서 이데아의 형상화에 도전하는데, 정말 알쏭달쏭하다. 한가지는 분명한데 그의 머리속의 형상은 '삼각형'이라는 사실이다. 그 책을 펼쳐서 대충 훑어도 그정도는 알수 있을 것이다. 

-

나는 그 책을 읽고... 그래서 뭐? 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삼각형이 뭐가 그리 대단한지 알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변증론을 알게 되면서 무릎을 탁 쳤고, 삼위일체를 알게 되면서 이마를 탁 쳤다. 그렇다. 삼각형은 그들의 인식형상, 사고체계이자 우주창조의 시각적 현현인 것이다. 그 흐름은 지금까지 이어지는데, 비코의 <새로운 학문>의 신의 이미지이고, 코흐 곡선과 만델브로 법칙의 기본형이고, 루만의 기능분화 체계이다. 삼각형적 사고는 그렇게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다. 

-

아 삼각형이 이데아=형상이구나... 하면서 감탄을 하다가 어느날 뒤통수를 맞게 되는데... 어쩌구니 없게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다가이다. 민족중흥의 정신이 나를 새롭게 깨운 것이다. 나는 태극기의 태극형상을 보면서 참으로 오묘하다 생각했다. 궁금한 마음에 한자 공부를 시작했고 차츰 음양과 오행의 원리를 자연스럽게 알게되었는데... 엄청난 이데아가 여기에 숨어 있었다. 즉 태극의 둥근형상은 삼각형처럼 동양의 인식형상, 사고체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더 엄청난 것은 태극은 일종의 우주창조원리인데, 아무말이 없는 삼각형과 달리 태극은 그 원리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데, 어쩌면 삼각형보다는 다소 복잡한 형상이지만 훨씬 체계적이단 생각이 들었다. 이후 나는 지금까지의 모든 나의 도식을 태극으로 전환했는데, 무려 2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

정리하면 이데아는 사실 그냥 생각의 시각화이다. 그 궁극은 삼각형 혹은 원형이다. 전자는 변증론으로 후자는 음양오행론으로 분화된다. 이는 구술적 청각문화에서 문자적 시각문화로 전환이며, 결론적으로 기호란 시각적인 것이란 의미다.

매거진의 이전글 적폐청산과 근대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