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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Feb 04. 2018

구술과 문자

에릭 해블록, 사사키 아타루, 닐 포스트먼, 비고츠키, 월터 옹으로 이어진 독서가 이제야 끝났다. 아직은 애매모호하지만 구술성과 문자성에 대한 어느정도 감은 잡은듯 싶다. 아쉬운 점은 레비 스트로스와 말리노프키 같은 저자의 책을 아직 못읽은 점인데, 이언 모리스와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책 몇권을 본 것으로 어느정도 만족한다. 부족한 독서는 나중에 채우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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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어느정도의 관점을 획득한 것에 만족한다. 부수적으로 텍스트와 구조주의의 관련성, 나아가 탈구조주의가 추구한 방향성에 대한 어떤 느낌이 생겼다. 텍스트의 근본주의+절대권위를 한풀 벗기는 엄청난 노고였음을. 다만 아쉬운 점은 이들의 이론들이 인쇄적 관점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논의 자체가 전자시대에서 전개되었음에도 이미지와 동영상 기술, 네트워크 기술발전의 영향을 거의 의식하지 않은듯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해체를 재생(Re)이 아니라 탈(De)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전자시대의 어떤 급격한 전환을 감지한듯 싶다. 거꾸로 사사키 아타루의 텍스트 집착은 다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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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의 큰 흐름은 '구술-문자-필사-인쇄-전자'이다. 이 흐름은 나의 디자인역사모형의 800년단위 패턴과 다소 일치하는데,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의 전환은 기원전 6세기 축의 시대, 필사문화는 3세기이다. 이 시기 서양에는 신플라톤주의가 동양은 현학이 등장한다. 난 필사는 번역의 과정이라는 생각에서 번역문화로의 전환이란 생각이다. 필사 문화가 꽃을 피웠던 중세에는 인쇄문화가 등장한다. 약 11세기로 당시 중국에는 목판인쇄가 활발했고 활자도 등장했다. 서양에는 이 즈음 종이가 도입된다. 여전히 필사 문화였지만 몇백년 늦은 인쇄기술은 르네상스 금속인쇄의 등장으로 대역전된다. 인쇄가 화려한 꽃을 피운 19세기에 서양이 세계 패권을 차지한다. 동시에 전자기술과 모르스 기술이 발명되는데, 그것은 채 150년도 안되어 인터넷이란 거대 네트워크를, 나아가 인공지능과 P2P 블록체인 기술을 등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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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문사에 있어서 잘 안다. 텍스트가 얼마나 큰 위기에 처해있는지. 기호 운운하며 텍스트가 엄청난 소통수단이라고 칭송하던 시절이 불과 100년도 안되었는데, 이제 온갖 이미지와 화려한 말빨과 영상에 밀리고 있는지도. 어쩌면 우리 시대에 텍스트는 엄청난 위기에 처해있는지도 모른다. 요한 하우징아의 책 제목 <중세의 가을>에 빗대면, 지난 20세기는 화려한 '텍스트의 가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많이 떨어진 요즘의 문해력을 생각하면 역전은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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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는 무수한 0과 1이 조합된 이항대립의 시대다. 이항대립은 구술문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항대립은 결론이 열려있다. 상황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항이 삼항이 되면 삼각형이 된다. 새롭게 추가된 초월적 항목은 일종의 왕이다. 정신적으론 대타자이고, 사회적으론 규범이다. 생명과학에서 삼각형은 자기조직이 완성된 형태다. 삼항은 이항과 달리 이미 결론이 결정되어 있다. 나는 이 삼각형을 '인간문화=텍스트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인간 개인으로 치면 문자에 의해 내면화가 완성된 상태다. 완성된 상태라 함은 고정된 상태, 나쁘게 말하면 편견이라는 함정에 빠진 상태다. 그게 바로 20세기 기호로 지어진 구조의 집, 즉 구조주의다. 여기에 반발한 사람들이 포스트구조주의다. 흔히들 포스트모던이라 말한다. 포스트구조주의는 탈구조주의다. 도식적으로 설명하면 이 삼항에 타자가 등장해 텍스트 자체를 메타비판하는 상황이다. 즉 삼항이 4항 도식이 된다. 그러면 이항도식처럼 결론이 변할 가능성이 커진다. 각 항목들이 메타의 인과관계가 형성되어 이야기는 계속 순환한다. 이 4항적 선순환이 데리다가 상상한 해체가 아닐까 싶다. 즉 4항적 조건인 우리 시대는 구술문화2.0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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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도식들은 그 느낌을 시각화 시킨 것이다. 남은 과제는 이 도식을 남북 문명의 역동성, 미술사와의 연결이다. 벌써부터 숨이 턱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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