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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Feb 18. 2018

디자인학교 개교 특강을 마치며

주체성 2탄


디자인학교 아카데미아 개교 릴레이 특강이 어제로 마무리 되었다. 뭔가 시원섭섭하다. 하지만 공간이 생긴 덕분에 '섭섭'보다는 '시원'함이 조금 앞선다. 앞으로 이 공간에서 더 즐거운 일이 벌어질것 같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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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선 선생의 디자인 저작권 강의는 처음 들었다. 나름 법철학과 정치경제학을 들춰보았고, 예술과 디자인의 저작권 및 특허권을 일별하는 글도 몇번 써보았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나는 2시간 동안 꼼짝도 않고 강의에 몰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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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내용이 흥미진진했지만, 가장 큰 인상은 저작권-특허권은 단순히 법의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저작권과 특허권은 디자인을 가지고 사업을 벌리는 분들에게 첨예한 문제다. 그래서 엄청나게 치열한 시장이기도 하다. 저작권과 특허권을 공부하면 시대의 트랜드, 가령 어떤 제품과 아이디어가 요즘의 관점인지, 어떤 시장이 핫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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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저작권-특허권을 알면 이를 피하기 위해 새로운 관점을 획득할 수 있도 있다. 만약 내가 어떤 디자인을 하려고 하는데 저작권과 특허권 여부를 리서치하는 과정에서 어떤 한계를 갖게 된다. 이 한계를 긍정적으로 피하는 과정에서 더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있다. 어쩌면 디자이너가 저작권과 특허권을 배우는 것은 자신의 디자인이 침해당할까 걱정해서가 아니라, 디자인을 더 잘하기 위해서, 즉 디자인 방법론으로서 아주 효율적인 접근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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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 강의는 아주 재밌는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두개의 표절작품을 놓고, 저작권과 특허권을 따져가면서 예술과 디자인의 개념 논쟁이 가능하다. 혹은 소송하는 법정상황, 논쟁하는 토론상황을 수업의 방식으로 가져올 수 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수업 참여자들은 디자인을 이해하고, 접근하고, 생산하는데 있어 아주 유용한 능력을 기르고, 통찰을 고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특강을 들으며 얻은 가장 큰 성과는 저작권-특허권에 대한 부정적 관점에서 긍정적 관점으로 전환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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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수업이 특강이 아니라 수업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학교에서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디자인학교에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유치해서 더 많은 분들이 저작권과 특허권을 통해 디자인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전혜선 선생님 강의는 완전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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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오후 특강은 이지원 교수였다. 사실 이지원 선생과 오랜시간 활동을 공유했기에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내가 첨언할 수 있는 문제는 첨언해야 겠다는 생각에서 참여했다. 그런데 강의를 들으며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때문에 강의내내 강의 들으랴, 생각을 기록하고 정리하느라, 또 첨언을 요청받아 말하느라 정신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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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가지 얻은 바 중 하나는 어제 페북에 게시한 '상호주체성'에 대한 글이다. 양립해야만 가능한 관계에서 서로는 상호적으로 주체성을 정립할 수 있다는 관점이었다. 다른 하나는 역시나 페미니즘 문제였다. 이지원 선생과 나는 이 문제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상황이다. 늘 마음 한켠에 이 문제가 있다. 그는 이 문제를 항상 염두해 두고, 자신을 돌아보며 살아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은 결코 앞설 수 없는 상황이라고 양해를 구했다. 사실 그 이유는 너무 타당하기에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굳이 그 사실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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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소 중립적이었다. 나설수도 있고, 나서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직 그럴 상황을 만나지 않았을 뿐 언젠간 누군가 앞장설수도 있겠단 생각이었다. 물론 이지원 선생이 생각하는, 가령 가정과 직장을 모두 버려야만 하는 상황이 아닌 훨씬 덜 극단적인 상황에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어제 강의를 듣고, 메모한 것을 꼽씹으며 나설 문제와 나서지 못할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근대와 사회, 개인을 설명하는 책을 읽으며, 이 문제를 '자율성' 입장에서 다시한번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페미니즘 문제는 자율적인가 아닌가? 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자율성은 역시 앞선 주제, 주체성과 떼서 생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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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페미니즘 문제는 '양립해야만 가능한 관계'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양립해야만 가능한 관계 즉 선생과 학생, 아버지와 아들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난 남성이다. 그래서 여성이 될 수 없다. 물론 난 강자이자 약자라는 점에서 이 문제와 결부되지만, 페미니즘 문제가 여성의 문제라면 난 결코 그 관점을 경험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여성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앞장서서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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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미녀디자이너' 글의 가장 큰 문제가 여기에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여성의 문제를 간과한 것이 아니라 여성의 문제를 앞장서서 말했다는 그 태도 말이다. 이 순간 나는 나의 가장 큰 문제를 깨달았다. 혹은 우리의 가장 큰 문제를. 그건 바로, 나서야 할 것과 나서지 말아야 할 것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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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이지원 선생의 주요 주제였던 교육 문제는 앞서서 나서야 할 문제다. 왜냐면 그와 나는 학생이자 선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디자인에 있어 학생을 경험한 시간과 선생을 경험한 시간이 거의 비슷하다. 그렇기에 두 교육 주체의 입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디자인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이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반드시 앞장서서 뭔가 실천하고 발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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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페미니즘 문제는 나서지 말아야할 문제다. 우리는 그 문제에 대부분 동감하지만 앞장서기 보다는 그녀들의 자율성에 맡겨야 한다. 외면하자는 말이 아니다. 뒤에 섬으로서 경청하고 지지해야 한다. 역할이 있다면 마다해서도 안된다. 이는 평등을 지향하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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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사람들은 평등이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움직이는 인간은 어떤 고정된 상태가 불가능하다. 이런 인간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평등은 어깨를 나란히 맞추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어깨보다 나를 낮추는 것이다. 그런 노력을 함으로서 상대에게 편안함을 주고, 상대도 어깨를 낮추도록 이끄는 것이다. 서로 어깨를 낮추는 관계가 형성되면 그때 비로소 평등이 실현된다. 여기서 어깨를 낮추는 과정은 반드시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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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은 앞서고 이기고, 평가하고 폄하하는 태도가 아니라 뒷서고, 지고, 겸허하고 포용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어쩌면 남성으로서 페미니즘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함으로서 그 이념이 주장하는 근본적인 목적, 바로 '평등'에 한발짝 다가설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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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설 문제와 나서지 않을 문제를 잘 따져서 움직여야 한다. 이를 간과하고 혼란스럽게 참여함으로서 계속 자리 잡기에 실패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 글에서 한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바로 양립가능한 상황에서 양쪽을 모두 평등하게 경험했느냐 아니냐. 경험한 상황이라면 문제가 있으면 앞장서야 한다. 반대로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라면 뒤에서 배우고 지지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자신의 올바른 자리를 찾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공자님이 그토록 강조했던 '정명(正名)'을 실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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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쓴 말을 이지원 선생에게 말하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형은 이제 알았어? 난 옛날부터 알고 있었는데" 라면서... 그래서 글로 쓴다. -_-;; 아무튼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신 두분께 고개숙여 감사드린다. 아울러 특강을 준비하고 추진한 디자인학교의 선생이자 학생, 게다가 관료역할까지 떠맡은 김의래 선생과 김송이 매니저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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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교육 #디자인학교 #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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