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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Feb 08. 2018

표절의 원인

한국의 주입식 교육과 객관식 시험을 통해서는 자아와 타자를 구별하는 법을 배울 수 없다. 왜냐하면 학생이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하는 최선의 것은 누군가에 의해 외부로부터 억지로 머릿속에 쑤셔 넣어진 무수한 지식과 정보를 반복적으로 외움으로써, 다시 말하자면 남에 의해 강제로 주어진 것을 완전히 체화함으로써 나와 남 그리고 나의 것과 남의 것을 완전히 하나로 만드는 일이다. 그것은 자아와 타자의 통합이자 합일다. 만약 자아가 타자로부터 분리되면 그만큼 시험에서 불리해진다. 이처럼 자아와 타자의 구별을 불가능케 하는, 그러니까 근대성이 결여된 교육과 시험이 한국 사회에 만연한 표절의 원인(遠因)이다. 근새성의 관점에서 보면, 나의 지적 생산물과 지적 소유물은 나의 인격이 표현된 것이고, 나의 인격이 연장된 것이다. 남의 지적 생산물과 지적 소유물 역시 마찬가지다. 나의 인격도 남의 인격도 신성불가침의 것이다. 그러므로 인격의 일부분인 나와 남의 지적 생산물과 지적 소유물은 신성불가침의 것이다. 그것은 무단으로 빼앗거나 사용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성이 결여된 한국의 교육에서는 어려서부터 남에게서 주어진 지식을 반복해서 외우도록 가르치고, 그 결과를 시험에서 정답을 고르는 정도를 가지고 측정한다. 이는 결국 남의 것을 베끼도록, 그것도 가능하면 많이 그리고 충실하게 베끼도록 가르치는 것이나 진배없다. <환원근대> 김덕영, 169-170p


***

오전에 주체성에 대한 글을 썼는데, 오늘 읽는 책에서 비슷한 구절을 발견한다. 왜 우리가 주체성을 갖지 못했는지, 아니 왜곡된 주체성을 갖게 되었는지를. 주체성이 나와 나의 구분이 아닌 나와 남의 구분이고, 주체성에 의한 동일성이 나와 나의 통일이 아닌, 나와 남의 통일로 착각하고 있는지를. 주체성의 주인이 나에 대한 나의 주인이 아니라, 남에 대한 주인으로 착각하는지. 그럼으로서 자꾸 남을 자신의 수단으로 삼고, 남을 자신의 노예로 생각하게 되는지. 자신을 남보다 우위에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는 것이 평등을 구현하는 참된 길이라는 것을 결코 알지 못하도록 조장하는 교육이다. 각자가 자기 자신의 주인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주인이 되려하는 세상을 한탄하게 된다. 인간이 아닌 동물이 되기를 장려하는 교육, 참으로 교육이 문제다. 보스의 그림이 내 마음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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