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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Feb 18. 2018

주체성 1

얼마전 한 선생님과 자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본질적 자아가 있는가 없는가'에서 의견이 갈라졌다. 나는 있다, 그분은 없다. 나는 자아가 없다면 인간은 기계가 된다고 말했다. 그분은 아무리 살펴봐도 본질적 자아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도덕적 기준을 이유로 '있다'가 아니라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점은 그분도 동의했지만 영 마뜩치 않은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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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방금 이지원 선생의 특강을 들으며, '우리'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가 '우리'라고 쓰고 '교육 주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교육 주체란 학생과 선생이다. 둘 모두 교육 주체다. 그렇담 둘 중에 본질적 교육 주체는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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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서 뭔가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 들었다. 아! 선생은 학생이 있어야 존재하고, 학생은 선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둘 중에 하나면 없으면 다른 하나도 없다는 것을... 나는 이런 양립 프레임을 엄청나게 말해왔고, 최근에 그것의 열린 효용성을 깨달았는데... 그것이 주체의 본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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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보자. 주체성은 나의 다양한 구성요소를 상대적으로 바라볼수 있는 태도다. 즉 자기 자신을 메타적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메타적으로 볼 지점이 있어야 한다. 그 지점이 뭔가 참다운 나, 본질적인 나다. 이 나가 바로 주체성이다. 이것이 앞선 논쟁에서 본질적 자아가 있어야 한다는 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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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만약 다른 선생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즉 본질적 자아가 없어도 도덕적 상황이 가능해 진다면 어떨까? 가령 선생과 학생이 있다고 치자. 선생은 학생에게 뭔가를 가르칠때 참고할 사람이 누구일까? 바로 자신의 선생이 아닐까. 학생은 또 선생에게 뭔가 배울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까? 바로 자기 학생을 기준으로 삼을 것이다. 그렇다. 서로가 서로를 가치 기준으로 삼음으로서 도덕적 기준을 마련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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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선생과 학생은 꼭 다른 사람일 필요는 없다. 한 사람이 선생과 학생이 동시에 될수 있다. 부모와 자녀가 동시에 될수 있듯이. 그렇다면 자기 안에서의 다양한 정체성이 서로 양립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역지사지를 통해 도덕적 주체성을 찾을 수도 있다. 학생이 없으면 선생이 없고, 선생이 없으면 학생이 없는 양립되어야 하는 상황에선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본질적 자아가 없어도 메타 자기 인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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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점에서 우리가 도덕적 주체성이 형성되지 못하는 상황을 생각해볼 여지가 생긴다. 양립해야만 존재할수 있는 관계의 사람들이 서로의 위치를 경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체적 관계가 형성되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절박한 상황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개인이 없고, 주체성이 없는 우리 사회의 한계는 경험이 비좁고, 그 비좁을을 인식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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